증산법종교
▼ 구글로 검색
수정 삭제
대순전경 초판-제 4 장 문도의 추종과 훈회

대순전경 초판-제 4 장 문도의 추종과 훈회

경전 및 도서  화송 화송님의 글모음 쪽지 2015-06-03 02:19 8,949
도강님께서 주신자료 입니다.

제 4 장 문도의 추종과 훈회 (第四章. 門道의 從遊와 訓誨)
1. 임인(1902)년 사월에 김 형렬의 집에 머무르시며 공사를 행하시니 김 형 렬과 김 자현, 김 갑칠, 김 보경, 한 공숙등이 차례로 선생을 따르니라. 原文: 壬寅 四月에 金 亨烈의 집에 머무르사 公事를 行하시니 亨烈과 金 自賢, 金 甲七, 金 甫京, 韓 公淑 等이 次第로 從遊하니라.
2. 계묘(1903)년 정월에 전주부로 가셔서 서 원규의 약방에 머무르시니 서 원규와 김 병욱, 장 흥해, 김 윤찬등이 선생을 따르니라.原文: 癸卯 正月에 全州府에 巡遊하사 徐 元圭 藥局에 머무르시니 元圭와 金 秉旭, 張 興海, 金 允贊등이 從遊하니라.
3. 장 흥해가 그의 어린 자식을 매우 사랑하니 선생께서 장 흥해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복은 위로부터 내려오는 것이요, 아래로부터 치받아 올라 오는 것이 아니니 자식된 도리로서 먼저 부모를 잘 공경하고 사랑하라." 하시니라.原文: 張 興海가 그 幼子를 甚히 사랑하거늘 先生이 興海다려 일너 가라 사대 福은 우으로부터 나리는 것이오, 아래에서 치올으지 아니하는 것이니 父母를 잘 敬愛하라 하시니라.
4. 갑진(1904)년 6월에 김 형렬의 집에 이르시어 형렬에게 명하시기를 전주 부에 가서 "김 병욱에게 만날 날을 약속하여 정하고 오라." 하시니 형렬 이 명을 받들고 전주부에 가서 병욱을 만나 그 다음날 밤에 만나기로 약 속하고 돌아오는 길에 장 효순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으니라. 형렬이 선생께 다녀온 일을 말씀드리고 이어서 효순의 죽음을 전하며 말하기를 "이 사람은 우리 손에 죽어야 할 것인데 저절로 병들어 죽었으니 한스러 운 일이로소이다." 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그것이 무슨 말이냐, 죽 은 사람은 불쌍하니라." 하시니라.原文: 甲辰 六月에 金 亨烈의 집에 이르사 亨烈다려 全州府에 가서 金 秉旭에게 만날 期會를 約定하고 오라 命하시니 亨烈이 領命하고 全 州에 가서 秉旭을 만나 그 翌日 夜半에 만나기로 約定하고 도라오 는 길에 張 孝淳의 死亡한 消息을 들은 지라. 亨烈이 先生? 復命 하고 이어서 孝淳의 死亡을 報하야 가로대 이 사람은 우리 손에 죽 어야 할 것인대 절로 病死하엿스니 恨스러운 일이로소이다. 先生이 가라사대 그것이 무슨 말이뇨 죽은 사람은 불상하니라 하시니라.
5. 선생께서는 비록 지극히 미천(微賤)한 사람을 대하더라도 반드시 존대를 하시더니 형렬이 부리는 머슴 지 남식(池南植)을 대할 때에도 항상 존대를 쓰시거늘 형렬이 여쭈어 말씀드리기를 "이 사람은 저의 머슴이오니 말씀을 낮추소서." 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사람이 그대의 머슴이라는 것 과 나와는 아무 관계가 없나니라." 하시며 또 일러 말씀하시기를 "이 마을 에서는 어릴 적부터 습관이 되어 갑자기 말을 고치기 어려울 것이로되 다 른 곳에 가면 어떤 사람을 대하던지 다 존경하라. 이 후로는 본처 후처의 자식이란 명분과 양반 상놈 따지는 구별이 없어지느니라." 하시니라.原文: 先生이 비록 至賤한 사람을 對할지라도 반다시 尊敬하시더니 亨烈 의 奴子 池 南植에게도 恒常 尊敬하시거늘 亨烈이 엿주어 가로대 이 사람은 곳 나의 奴子오니 尊敬치 말으소서. 先生이 가라사대 이 사람이 그대의 奴子이니 내게는 아모 關係가 업나니라하시며 ? 일 너 가라사대 이 마을에는 兒少로부터 熟習이 되여 倉猝間에 말을 고치기 어려울지나 다른곳에 가면 엇든 사람을 對하든지 다 尊敬하 라. 이 後로는 嫡庶의 名分과 班常의 區別이 업나니라.
6. 하루는 김 형렬이 어떤 친척이 하는 행동이 자기 뜻에 맞지 않아서 모질 게 나무라는 것을 보시고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아직 그대의 말과 행동 에 독한 기운이 덜 풀려서 남아 있도다." 하시고 "모진 장수가 미워하는 마음으로 베어 없을 때 보니 모두 다 풀로 보이더니, 그 집에 장가들어 다시 보니 모두 꽃이더라." 했느니 "말은 마음의 소리요, 행동은 마음의 자취라. 남에게 말을 선하게 하면 복이 되어 점점 큰 복을 이루어 내 몸 에 이르고, 남에게 말을 악하게 하면 화가 되어 점점 큰 화를 이루어 다 시 내 몸에 이르나니라." 하시니라.原文: 하로는 亨烈이 엇든 親族에게 不合意한 일이 잇서서 모질게 叱責하 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아즉 言行이 덜 풀녀서 毒氣가 남어 잇도다. "惡將除去無非草, 好取看來總是花" 니라. 말은 마음의 소리오, 行事 는 마음의 자최라. 말을 善하게 하면 福이 되여 점점 큰 福을 일우 어 내 몸에 이르고 말을 惡하게 하면 禍가 되여 점점 큰 禍를 일우 어 내 몸에 이르나니라.
7. 을사(1905)년 8월에 함열 회선동 김 보경의 집에 이르사 수개월간 머무르 실 때 보경이 함열읍에 사는 김 광찬을 천거하여 광찬이 선생을 따르게 되고 또 소 진섭과 임피 군둔리에 사는 김 성화 등이 이어서 선생을 따르 게 되니라.原文: 乙巳 八月에 咸悅 會仙洞 金 甫京의 집에 이르사 累月間 滯留하실 새 甫京이 咸悅邑人 金 光贊을 薦擧하야 從遊케 하고 ? 蘇 鎭?과 臨陂郡 屯里 金 性化 等이 相繼 從遊하니라.
8. 하루는 선생께서 종도 들을 모아 어릴 적에 지은 글을 외어 주시니 "후천 운수가 어느 먼 산의 무거운 돌 옮겨오듯 더디게 오니, 열 마디 자(尺)같 고 스무네마디 등뼈(脊椎)같은 오래된 나무가 곱게 단장하고 가을걸음 하 더라." 하신 후 "선생문명 아닐런가." 라고 마음속으로 심고(心告)하며 받 으라 하시고 "서리 내리는 속에 상제께서 강림하시니 국화 홀로 떨며 있 고, 푸르던 산도 속을 다 드러내니 모든 것들이 말라 떨어지는 가을이구 나." 하고 외어 주시며 "선령들의 문명 아닐런가." 라고 심고(心告)하며 받으라 하시고 "천리나 되는 저 물길에 외로운 돛대 멀어져 가고, 온 세 상의 봄기운이 한 광주리에 가득하구나." 를 외어 주시며 "선왕의 문명이 아닐런가." 하고 심고(心告)하며 받으라 하시고 "철 맞추어 피는 꽃이 삼 월 달 단비에 피어나니, 풍류와 술로 선천 백년동안의 먼지를 씻는구나." 를 외어 주시며 "선생과 선령들과 선왕의 덕이 합쳐진 문명 아닐런가." 하고 심고(心告)하며 받으라 하시고 "이 세상 모든 고난 다 겪은 나를 누 가 알리오, 넓은 세상 두루 다니며 우리 자신의 바른 모습을 잃지 않고 살더니, 정을 온 세상에 두니 산과 강이 벗이 되고 덕을 천지에 베푸니 해와 달이 짝이 되는구나." 를 외어 주시며 "우리가 가을에 뜻을 얻은 것 과 같지 아니하냐." 라고 심고(心告)하며 받으라 하신 후에 "세상 돌아가 는 것을 짐작하건대 대인(大人)이 나라 위해 일함에 몸가짐을 바로 하고 묵은 하늘(先天)의 낡은 기운 갈고 씻어 내니 기운이 새롭구나. 마음 깊 이 살펴보니 남은 한(恨)은 성스러운 뜻을 못 다 이룸이라. 한칼로 몸을 가르니 천하사람의 마음이 그와 함께 있구나." 라는 만가(輓歌)를 부르시 면서 말씀하시기를 "이 글은 민 영환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이니 한 칼로 몸을 갈라 모든 사람의 마음이 그와 함께 있게 한 그 마음으로 하여 세상 일을 알게 되리라." 하시고 (이 뒤에 민 영환이 순절하였다.) 또 말씀하시 기를 "사오 대를 지나도록 관직에 나아가지 못하였으니 선령(先靈)들이 살아서는 선비요, 죽어서는 학생이라. 나이가 이삼십세가 넘도록 널리 이 름을 못 얻었으니 자손들이 서당에 들어가서 다시 벼슬 없는 선비로 나오 는구나." 하시니라.原文: 하로는 先生이 少時에 지으신 글이라 하사 "運來重石 何山遠, 粧得 尺椎古木秋"를 從徒들에게 외워 주시며 "先生文明이 아닐넌가"라고 心告하고 바드라 하시고 "霜心玄圃 淸寒菊, 石骨靑山 瘦落秋"를 외 워주시며 "先靈文明이 아닐넌가"라고 心告하고 바드라 하시고 "千 里湖程孤棹遠,萬方春氣 一筐圓"을 외워주시며 "先王문명이 아닐넌 가"라고 心告하고 바드라 하시고 "時節花明 三月雨, 風流酒洗 百年 塵"을 외워주시며 "先生 先靈 先王合德文明이 아닐넌가"라고 心告 하고 바드라하시고 "風霜閱歷 誰知己, 湖海浮遊 我得顔, 驅情萬里 山河友, 供德千門 日月妻"를 외워주시며 "우리의 得意秋가 아닐넌 가"라고 心告하고 바드라 하신 후에 "時勢를 斟酌컨대 大人輔國 正 知身, 磨洗塵天 運氣新, 遺恨警深 終聖意, 一刀分在 萬方心"이라 唱하시며 가라사대 이 글은 閔泳煥의 挽章이니 "一刀分在萬方心"으 로하야 世事 알게되리라" 하시고 ? 가라사대 "四五世 無顯官 先靈 生儒學 死學生, 二三十 不功名 子孫入書房 出碩士"라 하시니라.
9. 병오(1906)년 10월에 예수교당에 가시어 모든 의식과 교의를 친히 보고 들으신 후에 종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별로 보태어 취할 것이 없 다." 하시니라.原文: 丙午 十月에 耶蘇敎堂에 가사 모든 儀式과 敎義를 聞見하신 後에 從徒다려 일너 가라사대 足히 取할 것이 업다 하시니라.
10. 하루는 종도 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이 세상에 학교를 널리 세워 사 람을 가르침은 앞으로 천하를 크게 문명케하고 이 문명을 바탕으로 하늘 과 땅의 일에 인간을 참여시켜 힘써 일하게 함으로써 천지의 모든 신과 인간이 다같이 해원(解寃)을 하려고 하는 것인데 요즈음 학교 교육은 배 우는 자로 하여금 아주 작고 사소한 이익이나 공(功)을 다투는 일에만 빠 지게 하니 그러므로 판 밖에서 도를 이루게 되었느니라." 하시니라.原文: 하로는 從徒다려 일너 가라사대 이 世上에 學校를 넓이 세워 사람 을 가라침은 將次 天下를 크게 文明케하야 써 天地의 役事를 식히 려 함인대 現下의 學校敎育이 學人으로 하여금 卑劣한 功利에 ?지 게 하니 그러므로 판 밧게서 成道하게 되엿노라.
11. 정미(1907)년 4월에 신 원일을 데리고 태인 관왕묘에 제사지내는 회원중 한 사람인 신 경언의 집에 가서 머무르실 때 경언과 신 경원, 김 경학,최 창조,최 내경,최 덕겸등이 선생을 따르게 되니라. 原文: 丁未 四月에 辛 元一을 다리고 泰仁 關王廟 祭員 辛 敬彦의 집에 가서 머무르실 새 敬彦과 辛 京元, 金 京學, 崔 昌祚, 崔 乃敬, 崔 德兼이 從遊하니라.
12. 정미(1907)년 오월에 (형렬의 집을 떠나시며 말씀하시기를 이 길이 길행(吉行) 이라. 한 사람을 만나려 함이니 장차 네게 알리리라 하시고) 용암리 물방앗간에 서 머무르실 때 그 앞 주막에서 정읍사람 차 경석을 만나시니라. 경석이 전주로 가는 길에 이 주점에서 점심을 먹고 떠나려 할 때 선생께서 대삿 갓에 푸른 대님으로 김 자현등 여러 사람을 데리고 오시니 경석이 그 소 탈한 가운데 씩씩한 기운을 띄신 차림새와 순진한 가운데 꾸밈이 없으신 말씀과 행동을 보고 비범하게 여겨 말씀을 청하니 선생께서 따뜻하게 대 답하시는지라. (선생께서 온화하게 대답하시고 술을 마시실 때 닭국 한 그릇을 경석에게 권하시니 경석이 받음에 문득 벌 한 마리가 국에 빠지거늘 경석이 수저 를 멈추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벌은 규모있는 벌레니라." 하시더라.) 경석이 선생께 예를 차린 후 여쭈기를 "실례인줄 아오나 무슨 업을 하시나이까." 하니 선생께서 웃으시며 말씀하시기를 "사람을 치료하는 업을 행하노라." 하시니 경석이 또 물어 여쭈기를 "어느 곳에 머무르시나이까." 하니 선생 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동쪽으로 가도 손님(客)이요, 서쪽으로 가도 손 님(客)이요, 하늘과 땅사이에 집없는 손님(客)이로다." 하시니라. 경석은 원래 동학신도로서 손 병희를 따르다가 모든 것이 마음에 맞지 아니하여 다시 길을 바꾸려고 하던 참이라. 이 날 선생을 뵈오니 하시는 모든 행동 이 보통사람과 다름에 이상히 여겨 짐짓 떠나지 않고 저물기를 기다려서 선생께서 돌아가시는 곳을 따라가니 곧 용암리 물방앗간 이더라. 그 식사 와 범절이 너무 간략하고 초졸하여 잠시라도 견디기 어렵더라. 선생께서 경석의 떠나지 아니함을 괴로워 하사 물러가기를 독촉하되 경석이 떠나지 아니하고 자기의 집으로 가시기를 간청하니 선생께서 때로는 노하시기도 하시고 때로는 욕을 보이시기도 하시고 때로는 쫓아내시기도 하셨으나 경 석이 보기에는 모든 일이 더욱 범상치 아니할 뿐 아니라 동학가사에 "미 친듯하고 취한 듯한 저 양반을 가는 곳마다 따라가서 지질한 그 고생을 누구에게 말 할 것이며" 라는 구절이 떠올라서 떠나지 아니하고 열흘간을 머무르면서 선생께 배우기를 고집하여 청하거늘 선생께서 경석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네가 나를 따르려면 모든 일을 그만두고 내가 가르치는 바 에 한 마음을 두어야 할 것이니 이제 돌아가서 모든 일을 정리하고 다시 이곳으로 찾아오라." 하시므로 경석이 이에 하직하고 집에 돌아와서 모든 일을 정리하고 유월 초하룻날에 용암리에 다시와서 선생을 뵈옵고 정읍으 로 가시기를 간청하니 선생께서 다시 거절하시다가 삼일이 지난 뒤에야 허락하여 말씀하시기를 "내가 깊은 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다가 겨우 벗 어나서 이제 발목이 닿는 물에 이르렀는데 이제 네가 다시 나를 깊은 물 로 끌어 들이려 하는구나." 하시니라.原文: 五月에 龍巖里 水砧幕에서 머무르실 새 그 압 酒店에서 井邑人 車 京石을 만나시니라. 京石이 全州로 가는 길에 이 酒店에서 午飯을 먹고 ?나려 할 새 先生이 대 삿갓에 푸단님으로 金 自賢等 數人을 다리고 오시니 京石이 그 소탈한 가운대 씩씩한 긔운을 ?신 儀表 와 純眞한 가운대 巧飾이 업스신 言語動止를 보고 非凡히 녁여 말 삼을 請하니 先生이 溫和하게 對答하신 지라. 京石이 禮畢에 무러 가로대 失禮이오나 무슨 業을 하시나잇가. 先生이 웃으시며 가라사 대 醫業을 行하노라. ? 무러 가로대 어느 곳에 머무르시나잇가. 가라사대 나는 東亦客 西亦客 天地無 家客이로라 하시더라. 京石은 元來 東學信徒로서 孫 秉熙를 조치다가 모든 것이 마음에 合하지 아니하야 다시 길을 고치려 하든 차이라. 이날 先生을 뵈임에 모든 行儀가 凡俗과 다름에 異常히 녁여 짐짓 ?나지 아니하고 저몰기를 기다려서 先生의 도라 가시는 곳을 ?라가니 곳 龍巖里 水砧幕이 라. 그 食事와 凡節이 너무 粗率하야 一時라도 견대기 어렵더라. 先生이 京石의 ?나지 아니함을 괴로워하사 물너가기를 督促하되 京石이 ?나지 아니하고 自己의 집으로 가시기를 懇請하니 先生이 或 震怒도 하시며 或 凌辱도 하시며 或 驅逐도 하시되 京石의 觀察 에는 모든 일이 더욱 凡常치 아니할 ? 아니라 東學歌詞에 "如狂如 醉 저 냥반을 간 곳마다 ?라가서 지질한 그 고생을 누구다려 한말 이며" 라는 句節에 感悟하야 드디어 ?나지 아니하고 十日間을 머 무르면서 師事하기를 固請하거늘 先生이 일너 가라사대 네가 나를 ?으려면 모든 일을 全廢하고 나의 가르치는 바에 一心하여야 할지 니 이졔 도라가서 모든 일을 整理하고 다시 이곳으로 차자오라. 京 石이 이에 하직하고 집에 도라가서 모든 일을 整理하고 六月 一 日에 다시 龍巖里에 와서 先生? 뵈입고 井邑으로 가시기를 懇乞하 니 先生이 다시 拒絶하시다가 三日後에야 許諾하여 가라사대 내가 깁흔 목물에 ?져서 허덕거리다가 겨우 벗어나서 발목 물에 當하엿 는대 이졔 네가 다시 깁흔 물로 ?어들인다 하시니라.
13. 용암리 물방앗간을 떠나 원평에 이르사 사람들을 불러 술을 주시며 말씀 하시기를 "이 길은 남조선 뱃길이니 짐을 채워 떠나니라." 하시니 모든 사람은 그 뜻을 알지 못하니라. 다시 떠나시며 말씀 하시기를 "군대가 움 직일 때 대진(大陣)은 하루에 삼십리를 가느니라." 하시니 경석이 그 말 씀을 듣고 가시는 길을 헤아려서 고부 솔안(松內)에 이르러 친한 친구인 박 공우의 집으로 선생을 모시니 공우도 또한 동학신도로서 마침 사십 구 일간 하늘에 기도를 모시며 수도하던 때이더라.原文: 水砧幕을 ?나 院坪에 이르사 群衆을 불너 술을 주시며 가라사대 이 길은 南朝鮮 배질이니 짐을 채워야 ?나리라 하시니 모든 사람 은 그 意味를 알지 못하니라. 다시 ?나시며 가라사대 大陣은 日行 三十里라 하시니 京石이 聞命하고 里程을 헤아려서 古阜 松內에 이 르러 知友 朴 公又의 집으로 先生을 모시니 公又도 또한 東學信徒 로서 마참 四十九日間 禱天 하든 ?러라.
14. 선생께서 차 경석, 박 공우에게 일러 말씀 하시기를 "이제 만날 사람 만 났으니 통정신(通情神)이 나오느니라. 나의 일은 비록 부모형제 그리고 처와 자식이라도 서로 모르는 일이니 나는 서양 대법국 천계탑 천하 대순 의 신이라." 하시고 "동학주문에 하느님을 모시고 조화의 근본자리에 머 문다(侍天主 造化定) 하였으니 나의 일을 말함이라. 내가 천지를 개벽하 고 조화정부를 열어서 혼란된 인간계와 하늘을 안정케 하려하여 천지인 삼계를 다니며 바라보다가 너희들의 이 동쪽 땅에 그쳐 참혹한 고통에서 헤메이는 민중을 먼저 건지려 함이니 나를 믿는 자는 영원토록 끝없는 복 을 얻어 신선세계의 즐거움을 누리리니 이것이 참 동학이라. 궁을가에 "조선 강산 명산이라 도통군자 다시 난다 하였으니 이것은 나의 일을 말 함이니라. 동학신도들 중에 대선생(大先生)인 수운 최 제우가 다시 살아 나리라 전하나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 오지 못하는 것이요. 내가 곧 최 수운을 대신 할 대선생(代先生) 이니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예로 부터 계룡산(鷄龍山)의 정(鄭)씨 왕국(王國)과 가야(伽倻山)의 조(趙)씨 왕국과 칠산(七山)의 범(范)씨 왕국을 일러오나 이 뒤로는 모든 말이 영자(影子)를 나타 내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정씨를 찾아 운수를 구하려 하지 말지어다 하시니라.原文: 先生이 京石, 公又다려 일너 가라사대 이졔 만날 사람 만낫스니 通 情神이 나온다. 나의 일은 비록 父母兄弟妻子라도 모르는 일이니 나는 西洋 大法國 天啓塔 天下 大巡이라. 東學呪에 "侍天主 造化 定"이라 하엿스니 내가 天地를 開闢하고 造化政府를 열어서 人天의 混亂을 安定케 하려하야 三界를 周視하다가 너의 東土에 그처 殘疲 에 헤매인 民衆을 몬저 건지려 함이니 나를 밋는者는 無窮한 寧福 을 어더 仙境의 樂을 누리리니 이것이 참 東學이라. 弓乙歌에 "朝 鮮江山名山이라 道通君子 다시난다." 하엿스니 이 일을 일음이니 라. 東學信徒間에 崔 水雲이 更生하리라고 傳하나 죽은 者가 다시 사라오지 못하는 것이오. 내가 곳 代先生이로다.
15. 다음날 솔안를 떠나 정읍 대흥리로 향하실 때 박 공우를 돌아보시며 말씀 하시기를 "만났을 적에" 하시니 공우가 문득 동학가사에 "만나기만 만나 보면 너의 집안 운수로다." 라는 구절을 떠 올려 깨달아서 드디어 따라 나서니라.原文: 翌日에 松內를 ?나 井邑 大興里로 向하실 새 公又를 도라보시며 가라사대 만낫 슬적에 하시니 公又가 문듯 東學歌辭에 "만나기만 만나보면 너의 집안 운수로다." 라는 句節이 感悟되야 드대여 ?라 나서니라.
16. 이 날 대흥리 경석의 집에 이르사 (말씀하시기를 나의 이르는 곳을 천지에 알려야 하리라 하시고) 글을 써서 서쪽벽에 붙이시니 문득 천둥소리가 크게 일어나거늘 선생께서 "빠르다." 하시고 그 글을 떼어 무릎 밑에 넣으시니 천둥소리가 곧 그치는지라. 공우가 크게 놀라 감복하고 마을사람들은 뜻 밖에 일어나는 맑은 날 천둥소리를 이상히 여기더라.原文: 이 날 大興里 京石의 집에 이르사 글을 써서 西壁에 붓치시니 문듯 雷聲이 大作하거늘 先生이 速하다 하시고 그 글을 ?여 무릅 밋헤 너으시니 雷聲이 곳 그치는지라. 公又는 크게 驚服하고 村人은 ? 밧게 일어나는 白日 雷聲을 異常히 녁이니라.
17. 17. 이 뒤로 동학신도 안 내성, 문 공신, 황 응종, 신 경수, 박 장근 등이 서 로 이어서 선생을 따르니라.原文: 이 後에 東學信徒 安 乃成, 文 公信, 黃 應鍾, 申 京守, 朴 壯根 等 이 相繼從遊하니라.
18. 이 때에 김 광찬이 구릿골에 있으면서 차 경석이 선생을 모시고 따르는 것을 아주 싫어하여 말하기를 "경석은 본래 동학의 잔당(殘黨)으로 일진 회에 참가하여 의롭지 못한 일을 많이 행하였거늘 이제 선생께서 도문(道 門)에 들이는 것은 선생께서 바르지 못하심이라. 우리가 힘써 마음을 딱 아 온 모든 것이 다 쓸데없이 되리라." 하고 날마다 선생을 원망하거늘 형렬이 민망하여 (광찬과 같이) 선생께 와서 뵙고 (두사람 모두 늦도록 말씀을 드리지 못하고 그냥 있으니 선생께서 광찬을 구릿골에 가서 있게 하시고 형렬을 조용히 따로 부르시니) 광찬의 불평 품은 일을 말씀드리며 "어찌 이런 성격을 가진 사람을 문하에 두셨나이까." 하니 선생께서 말씀 하시기를 "용이 물을 구할 때에는 비록 가시밭길이 닥친다 하여도 피하지 아니하나니 돌아가서 잘 설득하라." 하시니라.原文: 이?에 金 光贊은 東谷에 잇서 車京石의 從遊함을 厭惡하여 가로 대 京石은 本來 東學餘黨으로 一進會에 參加하야 不義를 만히 行하 엿거늘 이졔 道門에 들임은 先生의 不正大하심이라. 우리가 힘써 마음을 닥거 온 것이 다 쓸대업게 된다하고 날마다 先生을 원망하 거늘 亨烈이 민망하야 先生? 와 뵈입고 光贊의 不平가진 일을 告 하며 가로대 엇지 이런 性格가진 者를 門下에 두셧나이가. 先生이 가라사대 龍이 물을 求할 ?에 비록 荊棘이 當道할 지라도 避치 아 니하나니 도라가서 잘 撫諭하라 하시니라. (형렬이 돌아와서 광찬 을 타이르며 말하기를 "옛 사람이 남과 관계를 끓을 때(絶交)에는 나쁘게 말하는 것(不出惡聲)이 아니라 하였으니 이후로는 불평을 잘 풀어 버리라." 하니라.)
19. 하루는 차 경석에게 옛시를 외어 주시니 이러 하니라. "공자가 가르침을 편 사수(泗水)는 무이산(武夷山) 봉우리가 빼어난 까닭이라. 가슴속 품은 뜻은 비개인 후 밝은 달 비추듯하고 정겹게 나누는 대화는 거친 물결을 멈추게 하는데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수습하니 경서(經書) 천권에 몸 둘 집 몇 칸이라. 오늘 우리가 온 것은 도(道)를 듣고자 함이오. 한가로이 반 나절의 해를 보내려 함이 아니니라." 하시고 그 후 경석을 데리고 순 창 농바우에 사는 박 장근의 집으로 가시어 (말씀하시기를 이제 천하대세를 회문산(回文山) 오선위기형(五仙圍碁形)의 형세(形勢)에 붙여 돌리려 하노니 네 게 한 기운을 붙이노라 하시고) 장근의 머슴을 불러 물으시기를 "어젯밤에 무슨 일을 본 것이 있었더냐." 하시니 머슴이 대답하여 선생께 말씀드리 기를 "어젯밤 꿈에 한 노인이 농바우를 열고 갑옷과 큰 칼을 내어주며 이 것을 가져다가 주인을 찾아 전하라 하므로 제가 받아다가 이 방에 두었는 데 그 곳이 차 경석이 앉아 있는 자리입니다." 하니라. 대저 그 지방에서 는 농바우속에 갑옷과 큰 칼이 들어 있는데 장군이 나면 내어 가리라는 전설이 전하여 오느니라.原文: 하로는 京石에게 "溪分洙泗派, 峯秀武夷山, 襟懷開霽月, 談笑止狂 瀾, 活計經千卷, 行裝屋數間, 小臣求楣,非倫半日閑"의 古詩를 외 워 주시고 京石을 다리고 淳昌 籠巖 朴 壯根의 집에 가사 그 머슴 을 불너 무르사대 昨夜에 무슨 본 일이 잇섯나냐. 머슴이 對하여 가로대 어제밤 ?에 한 老人이 籠岩을 열고 甲胄와 長劍을 내여주 며 이것을 가저다가 主人을 차저 傳하라 함으로 내가 바더다가 이 房에 두엇는대 곳 車 京石의 안즌 자리니이다 하니라. 大抵 그 地 方에서는 籠岩속에 甲胄와 長劍이 드러 잇는대 將軍이 나면 내어 가리라는 俗言이 傳하여 오니라.
20. 그 후에 순창으로 부터 돌아 오실 때 태인 고현리 행단에 이르사 차 경석 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공자가 행단 아래서 도를 가르쳤다하니 이제 여 기서 너에게 글 하나를 전하여 주리라." 하시고 옛 글 하나를 외어주시며 잘 받아 마음에 깊이 간직하라 하시니 이러하니라. "무릇 사람을 쓰는 법 은 일하는 사람들이 큰 마음을 먹게 하는데 힘쓰며 공이 있는 자에게는 상과 녹(祿)을 바르게 주어 여러 사람들이 다 함께 뜻을 통하는데 있느니 라. 그러므로 여러 사람들이 더불어 좋아하여 일하면 이루지 못 할 일이 없고, 여러 사람들이 서로 싫어하여 일하지 않는다면 기울어 지지 않는 일이 없으니, 집안을 편안하게 하고 나라를 잘 다스리는 것도 다 사람을 얻는데 달려 있고, 집안을 망치고 나라가 망하게 하는 것도 다 사람을 잃 은데 그 원인이 있느니라. 하늘과 땅 아래 기운을 품고 살아있는 모든 것 들은 뜻을 얻어 함께 그 뜻을 펼치기를 원하느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내 일은 수부(首婦)가 들어야 되는 일이니 네가 일을 하려거든 수부를 들여 세우라 하시니 경석이 선생을 모시고 돌아와서 그 이종매 고부인(姨從妹 高夫人)을 천거 (薦擧)하니라.)原文: 그 後에 淳昌으로부터 도라오실 새 泰仁 古縣里 杏壇에 이르사 京 石다려 일너 가라사대 孔子가 杏壇에서 講道하엿나니 이졔 여긔서 네게 한 글을 專하리라 하시고 古書一章을 외워주시며 잘 服膺하라 하시니 이러하니라. "부주장지법(夫主將之法) 무람영웅지심(務攬英雄之 心) 상록유공(賞祿有功) 통지어중(通志於衆) 여중동호미불성(與衆同好靡不 成) 여중동오미불경(與衆同惡靡不傾) 치국안가(治國安家) 득인야(得人也) 망국패가(亡國敗家) 실인야(失人也) 함기지류(含氣之類) 함원득기지(咸願 得其志)"
21. 그 후에 정읍에 계실 때 경석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경석아 너는 접주 (接主)가 되라. 나는 접사(接使)가 되리라" 하시고) "너는 지금 이후로 출입을 그만두고 집을 지키라. 이것은 자신을 스스로 옥에 가두는 자옥도 수(自獄度數)니라." 하시니라原文: 그 後에 井邑에 계실 새 京石다려 일너 가라사대 너는 今後로 出入 을 廢하고 집을 직히라. 이것이 自獄度數니라.
22. 정미(1907)년 11월에 구릿골에 이르시어 공사를 행하시고 형렬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내가 머리를 깎으리니 너도 또한 머리를 깎으라." 하시니 형렬이 마음속으로는 달갑게 생각하지는 아니하나 그렇게 하겠다고 하였 더니 또 갑칠을 불러 말씀 하시기를 "내가 머리를 깍으리니 내일 대원사 에 가서 주지(住持) 금곡을 불러 오너라." 하시거늘 형렬이 크게 근심하 였더니 그 뒤로 다시 말씀하시지 아니하시니라.原文: 十一月에 東谷에 이르사 公事를 行하시고 亨烈다려 일너 가라사대 내가 머리를 ?그리니 너도 ?한 머리를 ?그라. 亨烈이 마음으로 는 즐겨하지 아니하나 强然히 應諾하엿더니 ? 甲七을 불러 가라사 대 내가 머리를 ?그리니 明日 大願寺에 가서 錦谷 住持를 불너오 라 하시거늘 亨烈이 크게 근심하엿더니 그 뒤에 다시 말삼치 아니 하시니라.
23. 하루는 형렬에게 옛 글 한 구절을 읽어 주시면서 잘 받아 마음에 깊이 새 기라 하시니 이러하니라. "무릇 일꾼을 쓰는 법은 예의를 중히 여기고 녹 줄을 고귀하게 여기는데 있으니 예의로 사람을 높이 대하면 의로운 일꾼 이 들어오고 녹줄을 고귀하게 붙여주면 뜻 있는 일꾼은 죽음도 가벼히 여 기느니라. 그러므로 현명한 사람은 일꾼에게 녹을 주되 재물을 아끼지 않 고 공을 세웠을 때 때를 놓치지 않고 상을 내려 큰 일꾼이나 작은 일꾼이 나 다 함께 원하는 일을 이루게 만드느니라."原文: 하로는 亨烈에게 古書一章을 외워주시며 잘 服膺하라 하시니 이러 하니라. "夫用兵之要, 在崇禮而重祿, 禮崇則義士至, 祿重則志士輕死, 故祿賢 不愛財, 賞功 不逾時, 則士卒竝, 敵國削"
24. 그 후에 또 형렬에게 옛 시를 외어주시며 잘 기억하라 하시니 이러하니 라. "세상을 살아 가는데는 부드러움을 고귀하게 여겨야 하느니 너무 강 직하고 굳센 것은 오히려 화(禍)를 부르는 기초가 되느니라. 언제나 말을 할 때는 신중하게 천천히 하며 모든 일을 당해서는 어리석은 사람 같이 행동하라. 위급한 곳에서도 당황하지 말고 항상 천천히 생각하며 편안할 때도 위태롭던 옛 일을 잊지 말라. 이렇게 한 세상을 살아간다면 진실로 좋은 사람이 아니겠느냐."原文: 그 後에 ? 亨烈에게 古詩를 외워주시며 잘 記憶하라 하시니 이러 하니라. "處世柔爲貴, 剛强是禍基, 發言常欲訥, 臨事當如癡, 急地尙 思緩, 安時不忘危, 一生從此計, 眞個好男兒"
25. 또 형렬에게 옛 시를 외어주시니 이러 하니라. "밝은 달은 이 세상의 모 든 강물을 다 같이 비추고 큰 바람은 여덟 방위에서 온 세상에 불어오나 한 가지 기운으로 몰아 오느니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너는 좌불 (坐佛)이 되어 처소(處所)를 잘 지키라, 나는 유불(遊佛)이 되리라 하시니라.)原文: ? 亨烈에게 古詩를 외워주시니 이러하니라."明月千江 心共照, 長風八隅 氣同驅"
26. 하루는 형렬에게 명하사 종이쪽지에 육십사괘를 점찍게 하시고 이십사방 위 글자를 빙 둘러 쓰게 하신후 해를 향해 불사르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나와 같이 더불어 영원히 지내자." 하시고 형렬을 돌아보시며 말씀하시 기를 "나를 잘 믿는 자에게 해인(海印)을 전하여 주리라." 하시니라原文: 하로는 亨烈을 命하사 紙片에 六十四卦를 點치고 二十四方位字를 둘너 쓰이사 太陽을 向하야 불살으시며 가라사대 與我同居하자 하 시고 亨烈을 도라보시며 가라사대 잘 밋는 者에게 海印을 傳하여 주리라 하시니라.
27. 또 말씀하시기를 "선비는 반드시 몸에 종이와 붓을 지녀야 하느니라." 하 시니라.原文: ? 가라사대 선배는 반다시 몸에 紙筆墨을 가저야 하나니라.
28. 또 형렬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선비는 대학경 일장 장아래를 잘 알아 두어야 하느니라." 하시고 외어주시니 이러하니라. "대개 공자의 말씀을 증자가 기술했고 그 나머지 열 대목은 증자의 뜻을 문인이 기록한 것이 다. 옛날 책에는 글이 섞이고 잘못된 것이 있어서 이제 정자가 정의하는 바에 따라 다시 경문의 뜻을 깊이 새겨 고쳐서 순서를 나누니 왼쪽과 같 다."原文: ? 亨烈다려 일너 가라사대 선배는 大學經 一章 章下를 알어두어야 하나니라 하시고 외워주시니 이러하니라. "右經一章 盖孔子之言而 曾子述之, 其餘十章則曾子之意 而門人記之也, 舊傳頗有錯簡 今因程 子所定 而更考經文 別有序次如左"
29. 또 형렬에게 서전(書傳)에 나오는 진(秦)나라 목공(穆公)이 실패를 뉘우 치며 말한 진서장(秦誓章)을 외어주시며 "잘 기억하라." 하시니 이러하니 라. "만일 한 신하가 있어 다른 재주는 없으나 오로지 마음이 굳고 한결 같기만 하고 그 마음이 너그럽고 착하여 다른 사람의 빼어남을 자기가 가 진 것처럼 아끼고 좋아하며, 다른 사람이 크게 어진 것을 그 마음속으로 좋아하고 남에게 칭찬하기도 한다면, 이런 신하는 능히 우리의 자손과 백 성을 보전케 할 만한 사람이며 오히려 이로움이 있다 할 것이오. 다른 사 람의 재능 있음을 질투로서 증오하며 다른 사람이 크게 어진 것을 어기어 흘겨보며 통하지 못하게 한다면 이는 능히 포용치 못할 사람이오. 능히 우리의 자손과 백성을 보전치 못하게 할 사람이니 역시 위태롭다 하겠 다."原文: ? 亨烈에게 秦誓章을 외워주시며 잘 記憶하라 하시니 이러하니라."如有一介臣 斷斷?, 無他技 其心休休焉, 其如有容, 人之有技 若己 有之, 人之彦聖, 其心好之, 不?如自其口出, 是能容之, 以保我子孫 黎民, 尙亦職有利哉, 人之有技, 冒疾以惡之, 人之彦聖而違之, ?不 達, 是不能容, 以不能保我子孫黎民, 亦曰殆哉"
30. 또 형렬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너는 모든 말을 할 때 묻는 사람이 듣고 실행이야 하던지 아니하던지 바른대로 일러주라." 하시니라.原文: ? 亨烈다려 일너 가라사대 너는 모든 말을 뭇는 者가 잇거든 듯고 實行이야 하든지 아니하든지 바른 대로 일너주라 하시니라.
31. 하루는 태인 백암리에 사는 김 경학이 와서 선생을 뵙거늘 선생께서 명하 시어 김 자선의 집에 머물러 자게 하시고 다음날 자선의 집에 오셔서 경 학에게 "어젯밤에 꿈속에서 본 것을 말하라." 하시니 경학이 여쭈어 말씀 드리기를 "꿈에 개 한 마리가 테두리 없는 우물에 빠지는 것을 보고 죽을 까 걱정이 되어서 쫓아가서 구해 내려고 하였더니 그 개가 다시 우물에서 뛰어나와 다른 곳으로 가더이다." 하므로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속말에 강씨 성 가진 사람을 강아지라 하나니 네가 꿈을 옳게 꾸었다." 하시니라.原文: 하로는 泰仁 白巖里 金 京學이 와 뵈입거늘 先生이 命하사 金 自善 의 집에 留宿케 하시고 翌日에 自善의 집에 이르사 京學다려 昨夜 에 ? 본 것을 말하라 하시니 京學이 엿주어 가로대 ?에 一匹狗가 테 ?지 아니한 우물에 ?지는 것을 보고 죽을가 念慮하야 ?차가 서 救해 내려 하엿더니 그 개가 다시 우물에서 ?여나와 다른 곳으 로 가더이다. 先生이 가라사대 俚言에 姜姓을 개라 하나니 네가 ? 을 올케 ?었다 하시니라.
32. 박 공우가 3년동안 선생을 모시고 따라다니며 천지공사를 많이 받들었는 데 항상 공사를 보신 후에는 "여러 곳에 있는 종도들에게 다니며 행한 것 을 알리라." 명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이 일이 곧 천지의 대순(大巡)이라." 하시니라原文: 朴 公又가 三年동안 先生을 侍從하며 天地公事에 만히 奉公하엿는 대 매양 公事後에는 各處 從徒에게 巡廻演布하라 命하시며 가라사 대 이 일은 곳 天地의 大巡이라 하시니라.
33. 무신(1908)년 6월에 선생께서 김 광찬에게 물어 말씀하시기를 "네가 평소 에 나를 어떠한 사람으로 부르느냐." 하시니 광찬이 대답하여 말씀드리기 를 "촌 양반이라고 부르나이다." 하니 또 물어 말씀하시기를 "촌 양반은 너를 어떤 사람이라고 부르겠느냐." 하시니 광찬이 다시 답하기를 "읍내 아전이라고 할 것입니다." 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촌 양반은 읍내 의 아전에게 아전놈이라고 하고 아전은 촌 양반에게 촌 양반놈이라 하나 니 이것이 다 불평줄이라. 이제 너와 내가 서로 화해하면 천하가 다 화평 해 지리라." 하시니라.原文: 戊申 六月에 先生이 光贊에게 무러 가라사대 네가 平居에 나를 엇 더한 사람으로 呼稱하엿나냐. 對하여 가로대 村兩班이라고 呼稱하 엿나이다. ? 무러 가라사대 村兩班은 너를 엇더한 사람이라고 呼 稱하겟나냐. 對하야 가로대 邑아전이라 할 것이외다. 先生이 가라 사대 村兩班은 邑아전다려 邑아전놈이라하고 邑吏는 村兩班다려 村兩班놈이라 하나니 이것이 다 不平줄이라. 이제 너와 내가 서로 和解하면 天下가 다 和平하리라 하시니라.
34. 하루는 김 형렬이 밖으로 나갔다가 예수교인에게 업신여겨 수많은 욕을 당하고 돌아와서 선생께 그 일을 아뢰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깨끗한 물 한 그릇을 떠 놓고 스스로 허물을 살펴 뉘우치라." 하시거늘 형렬이 명하신대로 하였더니 그 후에 그 사람이 병들어서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가 어렵게 살아났다 하거늘 형렬이 듣고 선생께 말씀드리자 선생께서 말 씀하시기를 "이 후로도 그런 일을 당하거든 조금도 그를 원망하지 말고 스스로 몸을 살피라. 만일 허물이 너에게 있을 때에는 그 허물이 다 풀릴 것이요. 허물이 너에게 없을 때에는 그 독한 기운이 원래 온 곳으로 돌아 가리라." 하시니라.原文: 하로는 金 亨烈이 出行하엿다가 耶蘇敎人에게 無數한 凌辱을 當하 고 도라와서 先生? 그 事由를 알외니 先生이 가라사대 淸水一器를 ?놋코 스사로 허물을 삷혀 뉘웃치라. 亨烈이 命하신 대로 하엿더 니 그 後에 그 사람이 病들어서 死境에 이르럿다가 어렵게 回春하 엿다 하거늘 亨烈이 듯고 알왼대 先生이 가라사대 이 後로는 그런 일을 當하거든 조금도 그를 원망치 말고 스사로 몸을 삷히라. 만일 허물이 네게 잇는 ? 에는 그 허물이 다 풀닐 것이오. 허물이 네게 업는 ?에는 그 毒氣가 근본으로 도라 가나니라.
35. 무신(1908)년 7월에 백암리에 계실 때 김 영학이 김 경학의 천거로 와서 뵙거늘 선생께서 일주일이 지나도록 더불어 말씀하시지 아니하시니 영학 이 크게 분하고 화나게 생각하는지라. 박 공우 신 원일이 영학에게 일러 말하기를 "뜻을 정성스럽게 하여 가르침을 주십사 청하면 분명히 가르치 시리라." 하니 영학이 그 말대로 선생의 모시고 가르침을 배우기를 청하 니 선생께서 허락하시더니 문득 크게 꾸짖어시거늘 영학이 한편으로는 두 렵고 민망하며 한편으로는 분하기도 하여 문밖으로 나가는지라. 이윽고 선생께서 영학을 다시 불러들여 말씀하시기를 "너를 꾸짖은 것은 네 몸안 에 있는 두 척신(神)을 물리치려 함이니 너는 그 일을 불편하게 생각하지 말라." 하시니 영학이 여쭈어 묻기를 "무슨 척신 이옵니까, 깨닫지 못하겠 나이다." 하니 말씀하시기를 "네가 열여덟 살에 사람을 죽이고 금년에도 사람을 죽였으니 잘 생각하여 보라." 하시니라. 영학이 생각하니 열여덟 살 때 남원에서 전주 아전(吏)과 말다툼하다가 그의 무례한 말에 격분하 여 화로를 던져 그의 머리에 상처를 입혔더니 그 아전이 그 일로 인하여 신음하다가 그 이듬해 이월에 죽었고 금년 봄에 장성 맥동(麥洞)에 사는 외숙 김 요선이 의병에게 약탈을 당하였으므로 장성 백양사에 머물던 의 병대장 김 영백을 찾아가서 만나 그 잘못된 행위를 꾸짖었더니 그 의병대 장이 사과하고 범인을 조사하여 총살한 일이 있음을 기억이 확실하지 않 다가 그제서야 비로소 깨달아 말씀드리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바로 그러하다." 하시니라原文: 七月에 白巖里에 계실 새 金 永學이 京學의 薦人으로 와 뵈이거늘 七日이 지나도록 더부러 말삼치 아니하시니 永學이 크게 憤?하는 지라. 公又,元一이 일너 가로대 誠意로써 師事하기를 請하면 밝히 가라치시리라. 永學이 그 말을 조차 先生? 師事하기를 請한대 先 生이 許諾하시더니 문듯 크게 ?지즈시거늘 永學이 한편으로는 恐 ▩하고 한편으로는 憤하야 門外로 나간지라. 이윽고 永學을 불너 가라사대 너를 ?지즌 것은 네 몸에 잇는 두 척神을 물니치려함이 니 너는 不平히 생각지 말라. 永學이 가로대 무슨 척神이닛가. ? 닷지 못하겟나이다. 가라사대 네가 十八歲에 殺人하고 今年에도 殺 人하엿나니 잘생각하여보라. 永學이 생각하니 十八歲에 南原에서 全州吏 金某와 交語하다가 그 無禮한 말에 怒하야 火爐를 던저 그 頭部를 打傷 하엿더니 일로부터 呻吟하다가 翌年 二月에 身死하엿 고 今年春에 長城 麥洞에 居住하는 外叔 金 堯善이 義兵에게 掠奪 을 當한 故로 義兵大將 金 永伯을 長城 白羊寺에서 차저보고 그 非 行을 ?지젓더니 永伯이 謝過하고 犯人을 調査하야 砲殺한 일이 잇 슴으로 비로소 恍然히 ?달아 알왼대 先生이 가라사대 正히 그러하 다 하시니라.
36. 대흥리에 계실 때 하루는 차 경석, 안 내성, 박 공우를 데리고 앞 냇가에 나가서 목욕하실 때 경석에게 명하시어 흰 소금을 두손 가득 가져다가 물 에 뿌리게 하시고 물에 들어 서시며 말씀하시기를 "고기잡이를 하리라." 하시더니 문득 경석의 다리를 잡고 말씀하시기를 "큰 고기를 잡았다." 하 시거늘 경석이 말하기를 "저의 다리이옵니다." 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 를 "그렇게 되었느냐." 하시고 놓으시더라.原文: 大興里에 계실 새 하로는 車 京石, 安 乃成, 朴 公又를 다리고 압 내에 나가 沐浴하실 새 京石을 命하사 白鹽一?을 가저다가 물우에 ?리게 하시고 물에 들어서시며 가라사대 고기잡이를 하리라 하시 더니 문듯 京石의 다리를 잡고 가라사대 큰고기를 잡엇다 하시거늘 京石이 가로대 내 다리로소이다하니 先生이 가라사대 그럿케 되엿 나냐하시고 노으시니라.
37. 선생께서 안 내성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너는 반드시 농사일을 부지런 히 하여 밖으로는 나라의 의무를 다하며 안으로는 선령의 제사와 집안을 보살피고 영재를 기르는 일에 힘써며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라." 하시니 라.原文: 安 乃成다려 일너 가라사대 너는 반다시 農事를 부즈런히하야 밧그 로 奉公의 義務를 다하며 안으로 先靈의 祭祀와 養老育英의 일을 힘써 나의 도라오기를 기다리라 하시니라.
38. 무신(1908)년 8월에 선생께서 구릿골에 계실 때 차 경석이 선생을 모시고 따른 후부터 집안 일을 전혀 돌보지 아니하니 경석의 집안 살림이 날로 줄어만 가는지라. 경석의 아우 윤칠이 불만을 품고 생각하기를 "선생을 따르면 복을 받는다 하더니 이제 복은 멀어지고 가난의 고통만 따라 들어 오니 이는 한갓 속임수에 불과함이라, 내가 선생께 가서 그 이유를 직접 물어보리라." 하고 구릿골로 오다가 도중에 비를 만나고 진흙길에 엎어져 서 옷을 다 망쳐가지고 들어오니 선생께서 놀란 빛으로 일러 말씀하시기 를 "이 부근에 의병이 출몰하므로 일본군이 사방으로 찾고 있는데 만일 네가 비 맞고 길을 걸어 온 모양을 보면 너를 의병으로 잘못 판단하여 네 가 큰 곤욕을 당할테니 조용한 곳에 숨어서 내가 부를 때까지 기다리라." 하시고 형렬로 하여금 잘 숨어 있도록 하셨다가 다음날 윤칠을 부르시어 돈 오십냥을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내가 몇 일 후에 정읍으로 가리니 돌 아가서 기다리라." 하시므로 윤칠은 염치없음을 느꼈을 뿐만 아니라 몇 일 후에 선생께서 정읍으로 오시겠다는 말씀을 듣고 마음이 좀 풀려서 물 어보는 것을 다음으로 미루고 돌아가니라. 原文: 八月에 銅谷에 계실 새 車 京石이 從遊함으로부터 家業을 不治하야 家産이 날로 零替 하는지라. 그 아우 輪七이 不平히 생각하되 先生 을 ?르면 福을 밧는다 하더니 이졔 福은 멀어지고 貧苦가 ?라드 니 이는 한갓 誣惑에 不過함이라. 내가 先生? 가서 質問하리라 하 고 銅谷으로 오다가 途中에서 비를 만나고 진흙에 업드러저서 衣服 을 망처 가지고 先生? 와 뵈이니 先生이 놀낸 빗으로 일너 가라사 대 이 附近에 義兵이 出沒함으로 官兵이 四方으로 偵察하니 만일 네가 冒雨行路한 모양을 보면 義兵으로 誤認하야 困辱을 줄 것이니 僻處에 隱居하야 내가 불을 ??지 기다리라하시고 亨烈로 하여금 잘 隱匿케 하엿다가 翌日에 輪七을 불으사 돈 五十兩을 주시며 가 라사대 내가 數日後에 井邑으로 가리니 도라가서 기다리라. 輪七은 무렴에 싸엿슬 ?아니라 數日後에 井邑으로 오시겟다는 말삼을 듯 고 마음이 좀 풀녀서 質問은 後日로 밀우고 도라가니라.
39. 몇 일 후에 선생께서 고부 와룡리에 가시어 경석에게 명을 전하시기를 "나를 보려거든 고부 학동으로 오라." 하시거늘 다음날 경석이 학동으로 와서 뵈이니 선생께서 돈 오십원을 주시면서 말씀 하시기를 "너를 부른 것은 이 일극(一極)을 주려고 함이니라. 내가 윤칠이 무서워서 너의 집에 가지 못하노라." 하시니라. 경석이 돈을 받고 송구스러워 여쭈어 묻기를 "무슨 일로 그리하시나이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얼마전에 윤칠이 살기 (殺氣)를 띄고 구릿골에 왔는데 돈이 아니면 풀기 어려워서 돈 삼원을 주 어서 돌려 보냈노라." 하시므로 경석이 황망히 돌아와서 윤칠을 불러 물 으니 과연 사실이 그러하더라.原文: 數日後에 先生이 古阜 臥龍里에 가사 京石에게 傳命하사대 나를 보 랴거든 古阜學洞으로 오라 하시거늘 翌日에 京石이 學洞으로 와서 뵈이니 先生이 돈 五十圓을 주시면서 가라사대 너를 불으기는 이 一極을 주려함이라. 내가 輪七을 두려워서 네 집에 가지 못하노라. 京石이 돈을 밧고 惶懼하야 엿주어 가로대 무슨 일로 그리하시나잇 가. 가라사대 日前에 輪七이 殺氣를 ?고 銅谷에 왓는대 돈이 아니 면 풀기 어렵기로 돈 三圓을 주어서 돌녀보냇노라. 京石이 慌忙히 도라와서 輪七을 불너 무르니 果然 事實을 自白하니라.
40. 다음 날 학동을 떠나실 때 공우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나의 이번 길은 한 사람의 절을 받기 위함이니 이번에 받은 절이 천하에 넓게 미치리라." 하시니라.原文: 翌日에 學洞을 ?나실 새 公又다려 일너 가라사대 나의 이번 길은 한 사람의 절을 밧기 爲함이니 이번에 바든 절이 천하에 넓이 밋치 리라 하시니라.
41. 기유(1909)년 설날에 경석이 그 조상들에게 차례를 지내려하자 선생께서 조상을 위해 마련한 제사음식을 가져오라 하시어 여러 종도들과 더불어 잡수시며 말씀하시기를 "이것이 곧 절사(節祀)니라." 하시니 그 후로는 항상 명절과 제사를 지낼 때 선생께 공양 하니라.原文: 己酉 節日에 京石이 그 祖先에 享祀하려 하거늘 先生이 그 供備한 饌需를 가저오라하사 여러 從徒들로 더부러 잡수시며 가라사대 이 것이 곳 節祀라 하시니 그 後로는 매양 節祀와 忌辰을 當하면 天師 ? 供享하니라.
42. 선생께서 개고기를 즐기시며 "이 고기는 상등 사람들의 음식이니라." 하시 니라. 종도들이 그 이유를 묻자 말씀하시기를 "이 고기를 농민들이 즐기 나니 이 세상에 상등사람은 곧 농민이라. 선천에는 도를 딱는 사람들이 이 개고기를 기피하였으므로 천지의 망량(??)이 응하지 아니하였느니 라." 하시니라.原文: 先生이 狗肉을 즐기사 가라사대 이 고기는 上等人의 飮食이니라. 從徒들이 그 理由를 무른대 가라사대 이 고기를 農民이 즐기나니 이 世上에 上等人은 곳 農民이라. 先天에는 道家에서 이 고기를 忌 하엿슴으로 ??이 應치 아니하엿느니라.
43. 하루는 김 자현이 그 조모(祖母)의 장례를 치르려고 운구하여 미리 정해 둔 장소로 향하여 가거늘 선생께서 동곡앞에 있는 금광터를 가리키면서 "이곳에 장례를 치르라." 하시니 자현이 듣지 않거늘 선생께서 말씀 하시 기를 "그림 속의 용 천년에 진짜 용이 이름을 모른다." 하시니라.原文: 하로는 金 自賢이 그 祖母의 葬禮를 行하려고 運柩하야 所定地로 向하거늘 先生이 銅谷압헤 金鑛터를 가라치시며 "이곳에 埋葬하 라." 하시니 自賢이 듯지 안커늘 先生이 가라사대 "畵龍千年에 眞 龍이 이름을 모른다." 하시니라.
44. 하루는 종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내가 고부에 있는 고향 땅에 가면 항렬이 높은 친인척들은 나를 대할 때 항렬에 따라 말을 낮추어 하게 되 나니 이것은 윤리상 전통이라 무슨 관계가 있으리오마는 모든 신명들이 (모르고 나에게 말을 낮추는 사람들에게) 그 불경함을 그르게 여겨 반드 시 벌을 주나니 그러므로 나는 이 일이 어려워서 친척과 왕래를 적게 하 노라." 하시니라.原文: 하로는 從徒다려 일너 가라사대 내가 古阜故里에 가면 모든 族屬의 高行者를 對할 ? 반다시 行列을 ?라서 말하게 되나니 이것은 倫 理上 傳統이라 무슨 關係가 잇tm리오마는 모든 神明은 그 不敬한 言辭를 글니녁여 반다시 罰을 주나니 그럼으로 나는 이 일을 어려 워서 親族과 交通을 稀少케 하노라.
45. 하루는 형렬에게 명하시어 김 광찬, 김 갑칠에게 "태을주를 많이 읽으라." 하시고 김 광찬의 조카인 김 병선에게 "도리원서(桃李園序)를 입으로 소 리내어 천 번을 읽으라." 하시고 차 경석, 안 내성에게 "시천주를 혀와 입 술을 움직이지말고 소리없이 많이 읽으라." 하시니라.原文: 하로는 亨烈을 命하사 光贊, 甲七에게 太乙呪를 만히 닑으라 하시 고 金 炳善(光贊의 姪)에게 桃李園序를 口誦千讀하라 하시고 京石, 乃成에게 侍天主呪를 脣舌不動하고 만히 默誦하라 하시니라.
46. 기유(1909)년 4월에 용머리고개에 머무르실 때 김 광찬에게 일러 말씀하 시기를 "네가 김 병욱의 집에 있으면서 내가 전하는 글을 일일이 깨끗이 적어 책을 만들어 가져오라." 하시고 형렬로 하여금 글을 전하시어 깨끗 이 적어 책으로 만들어 오게 하신 후에 광찬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이 글을 세상에 전하는 것이 좋으냐." 하시므로 광찬이 대답하기를 "뜻대로 하소서." 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정읍에 한 책을 두었으니 그 글이 나타나면 세상이 다 알리라." 하시고 그 책을 불사르신 후에 구릿골로 돌 아오시니라. 그 글은 다만 광찬이 일부 기억하는 대로 한 구절이 전하여 오니 이러하니라. "사농공상이라 하나 선비의 일 또한 상업이고 농사 일 또한 공업이니 후천에는 선비의 일과 상업이 합쳐지고 농사와 공업이 합 쳐져서 두가지 직업으로 통합되리라. (빠진 글이 있는 듯) 세상 만물이 각각 자기 나름대로의 바탕에서 태어나 부끄럼 없이 마구 자라서 무성해 졌다가 때가되면 자연의 섭리에 따라 통합되듯이 봄의 기운은 싹을 틔우 시는 것이요, 여름 기운은 크게 무성하게 자라게 하심이요, 가을의 기운 은 신(神)이 농사지은 것을 거둠이며, 겨울의 기운은 도(道)로 모든 것을 환원하여 다음 씨 뿌릴 때를 기다리심이라. 이런 기운으로 그 때 그 때 천지를 각각 주재하게 하나니 그것을 아는 마음이 대 도술이니라.무신 12월 24일(戊申 十二月 二十四日)왼쪽으로 선회하여 四 三 八 은 천지(天地) 망량(??) 주장(主張) 九 五 一 은 일월(日月) 조왕(?王) 주장(主張)二 七 六 은 성신(星辰) 칠성(七星) 주장(主張) (동서가 뒤 바뀌니 천지개벽이라.)運 至氣今至願爲大降 無男女老少兒童?而歌之 是故永世不忘萬事知 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운(運)은 (하느님의 크고) 지극한 기운이 지금 나에게 내려 오기를 원하 여 그 기운으로 모든 일이 이루어지도록 바라는데 있으니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지극히 하느님을 위하는 이 주문을 노래하라.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 萬事知 至氣今至願爲大降.함없이 천지의 조화를 주재하시는 하느님의 덕에 마음을 합하고 정하여 영원토록 잊지 않고 그 도를 알고 뜻을 받들고자 하오니 지극한 기운이 크게 내리기를 원하옵니다.原文: 四月에 龍頭峙에 머무르실 새 光贊다려 일너 가라사대 네가 金 秉 旭의 집에 잇스면서 내가 傳하는 글을 一一히 淨書하야 가저오라 하시고 亨烈로 하야금 글을 傳하야 淨書 하여 온 後에 光贊다려 일 너 가라사대 이 글을 世上에 傳함이 可하냐. 對하여 가로대 ? 대 로 하소서. 先生이 가라사대 井邑에 한 冊을 두엇스니 그 글이 낫 허나면 世上이 다 알리라 하시고 드대여 불살으신 後에 銅谷으로 도라오시니라. 그 글은 다만 光贊의 記憶된대로 一節을 傳하여 온 것이 이러하니라."士之商職也, 農之工業也, 士之商 農之工 職業也, 其外他商工.留所(疑有闕文) 萬物資生, 羞恥, 放, 蕩, 神, 道, 統春之氣放也, 夏之氣蕩也, 秋之氣神也, 冬之氣道也.統以氣之主張者也, 知心大道術, 戊申十二月二十四日左旋 四三八 天地??主張九五一 日月?王主張二七六 星辰七星主張運 至氣今至願爲大降無男女老少兒童?而歌之 是故永世不忘萬事知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
47. 하루는 김 덕찬에게 양지 한 장을 주시면서 칠성경을 쓰라 하시니 덕찬이 글자의 크기를 물은즉 말씀하시기를 "마음대로하여 쓰라." 하심으로 덕찬 이 마음대로 쓰니 지면이 꽉 차고 다만 글 석자 쓸 여백이 남았거늘 이에 그 여백에 "칠성경 세 글자를 쓰라." 하시고 불사르시니라.原文: 하로는 金 德贊에게 洋紙一枚를 주시며 七星經을 쓰라하시니 德贊 이 字樣의 大小를 무른대 가라사대 隨意하여 쓰라 하심으로 德贊이 ?대로 쓰니 紙面에 滿載하고 다만 三字쓸만한 餘白이 남엇거늘 이 에 그 餘白에 七星經 三字를 쓰라하사 불살으시니라.
48. 하루는 전주에 사는 김 준찬의 집에 계실 때 김 낙범에게 물어 말씀하시 기를 "요사이에 관운장의 묘에 치성을 하는 일이 있느냐." 하시니 대답하 여 말씀드리기를 "있나이다." 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신명이 이 지방에 있지 않고 멀리 서양에 가서 큰 난리를 일으키고 있나니 치성은 헛된 일이니라." 하시니라.原文: 하로는 全州 金 俊贊의 집에 계실 새 金 洛範에게 무러 가라사대 近日에 關廟에 致誠이 잇나냐 對하야 가로대 잇나이다. 가라사대 그 神明이 이 地方에 잇지 아니하고 멀니 西洋에 가서 大亂을 일으 키나니 致誠은 헛된 일이니라.
49. 하루는 차 경석, 김 광찬, 황 응종을 앞에 세우신 후에 공우에게 작은 단 단한 몽둥이를 들리고 윤경에게 칼을 들게 하시고 "너희들이 앞으로도 지 금 스승을 모시고 있듯이 마음을 바꾸어 변함이 없겠느냐. 후일에 만일 마음을 바꾸어 변함이 있으면 이 몽둥이로 더숙이를 칠 것이요, 이 칼로 배를 가르리라." 하시며 꾸짖어 타이르시며 다짐을 받으시니라. (다시 말 씀하시기를 "나를 따르는 자는 창성하고 나를 배반하는 자는 멸망하느니 라." 하시니라)原文: 하로는 車 京石, 金 光贊, 黃 應鍾을 압헤 셰우신 後에 公又에게 몽치를 들니고 輪京에게 칼을 들니사 하여금 너희들이 이 後에도 지금 스승을 모시고 잇듯이 變改함이 업겟나냐. 日後에 만일 마음 을 變改함이 잇스면 이 몽치로 더숙이를 칠 것이오, 이 칼로 割腹 을 하리라고 警告하여 써 屈服케 하시니라.
50. 항상 구릿골앞 큰 나무아래에 소풍하실 때면 금산안과 용화동을 가리키시 면서 말씀하시기를 "이곳이 내 묫자리라, 장차 꽃밭이 될 것이요. 이곳에 사람의 성이 쌓이리라." 하시고 또 "최초의 비롯됨인 천황시대 세상의 시 작인 지황시대 생업의 시작인 인황시대가 지난 후에 천하에서 금산사가 가장 크리라." 말씀 하시니라.原文: 매양 銅谷 압 大樹下에서 소풍하시며 金山안과 龍簧을 가라처 가 라사대 이곳이 내 墓址라. 將次 ?밧이 될 것이오. 이곳에 人城이 싸이리라 하시고 ? "天皇 地皇 人皇後에 天下之大金山寺"라고 말 삼하시니라.
51. 하루는 여러 종도들에게 일러 말씀 하시기를 "큰 운을 받으려는 자는 서 전서문을 많이 읽으라." 하시고 또 말씀 하시기를 "또 천년후에 태어나 천년전의 일을 밝혀 설명하려 하니 참으로 어려운 일 일 것이라." 의 이 한 구절은 깨끗한 물을 떠놓고 읽을 만한 구절이라 하시니라.原文: 하로는 여러 從徒들에게 일너 가라사대 大運을 바드려 하는 者는 書傳序文을 만히 誦讀하라하시고 ? 가라사대 "且生於數 千載之下 而欲講明於數千載之前 亦己難矣"의 一節은 淸水를 ?놋코 닑을만한 句節이라 하시니라.
52. 하루는 종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도통이 건감간진손이곤태에 있느 니라." 하시니 유 찬명이 선생을 모시고 앉아 있다가 큰소리로 "건감간진 손이곤태" 를 한 번 읽고 물러 나가니라.原文: 하로는 從徒들에게 일너 가라사대 道通이 乾坎艮震巽離坤兌에 잇 나니라 하시니 柳 贊明이 侍坐하엿다가 大聲으로 乾坎艮震巽離坤兌 를 닑고 나가니라.
53. 최 덕겸이 여쭈어 묻기를 "앞으로 세상의 일은 어떻게 되오리까." 하니 선 생께서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12지(支)를 쓰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이러 하리라." 하시므로 자현이 다시 묻기를 "그 뜻을 해석하기가 어렵습 니다." 하니 선생께서 다시 그 위에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10간(干)을 쓰시고 차 경석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이 두 줄은 베짜는 바디와 머리 빗는 빗과 같으니라." 하시니라. (다시 말씀하시기를 "先天의 판 안 공부 로는 알 수 없을 것이요, 나의 판 밖 공부라야 알게 되느니라" 하시니라.)原文: 崔 德兼이 엿주어 가로대 天下事는 엇더케 되오릿가. 先生이 "子丑 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 를 쓰시며 가라사대 이러하리라. 自賢이 가 로대 이것을 解釋하기 어려우니이다. 先生이 다시 그 우에 "甲乙丙 丁戊己庚辛壬癸"를 쓰시고 京石다려 일너 가라사대 이 두 줄은 뵈 ?는 바듸와 머리 빗는 빗과 갓흐니라 하시니라.
54. 또 말씀하시기를 "이십사 절후문이 좋은 글인데 세상사람들은 다 모르느 니라." 하시고 "속말에 절후를 철이라 하고 어린아이가 지각이 없어 깨닫 지 못하는 것을 철부지라 하나니 비록 아이라도 지각이 차린 자에게는 철 을 안다 하고 노인이라도 몰지각하면 철부지한 아이와 같으니라." 하시니 라.原文: ? 가라사대 二十四節候文이 조흔 글인대 世人은 다 모르나니라. 俚言에 節候를 철이라 하고 어린아해의 無知蒙然한 것을 철不知라 하야 少年도 知覺을 차린 者에게는 철을 안다 하고 老人도 沒知覺 하면 철不知한 兒孩와 갓다 하느니라.
55. 또 형렬에게 일러 말씀 하시기를 "대상(大祥)이란 상(祥)字는 상서(祥瑞) 러울 상(祥)字니라." 하시니라.原文: ? 亨烈다려 일너 가라사대 大祥이란 祥字는 祥瑞라는 祥字니라.
56. 하루는 공사를 행하시고 "대장부(大丈夫) 대장부(大丈婦)"라 써서 불사르 시니라.原文: 하로는 公事를 行하시고 "大丈夫,大丈婦"라 써서 불살으시니라.
57. 하루는 어느 곳에서 젊은 부인이 남편의 상(喪)을 당한 후에 따라 목숨을 끓었다 하거늘 선생께서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 "악독한 귀신이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구나." 하시고 글을 써서 불사르시니 이러하니라. "무릇 나 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고 지아비에 절개를 지키는 것은 나라의 큰 근본인데 잘못된 충성심으로 인하여 나라가 망하고 잘못된 효도로 인하여 집안이 망하며 잘못된 절개지킴이 한 여자의 일생을 망치느니라." 하시니 라.原文: 하로는 某處에서 少婦가 夫喪을 當한 後에 殉節하엿다하거늘 先生 이 들으시고 가라사대 惡毒한 鬼神이 無故히 人命을 殺害한다 하시 고 글을 써서 불살으시니 이러하니라."忠孝烈國家之大綱然 國亡於忠 家亡於孝 身亡於烈"
58. 하루는 김 송환에게 옛 시 하나를 외어 주시니 이러하니라. "소년 때의 재주기운으로 하늘의 이치까지 휘어잡고 헤아려서, 손에 쥔 용천검을 몇 해든지 저 돌들이 다 닳도록 갈다보니 어느듯 돌 밭위의 오동나무도 줄을 매어 퉁기니 소리를 낼 줄 알고, 말없이 음만을 써도 율려로서 넉넉히 화 답이 되네. 시와 글로 가르친 것이 삼대동안 입으로 전하니, 그 글이 나 타나면 후천 오만년을 도덕으로 물결치리. 값비싼 흰사슴 가죽에 글을 써 서 이루는 것이 어진 선비의 가치니 漢
댓글 쓰기
593 / 312 / 3,446 / 2,001,796 관리책임 : 증산법종교 미디어실 media@jsbeob.com
증산법종교.com / jsbeob.com
Copyright © 증산법종교 All rights reserved.
증산법종교의 공식 도메인은
jsbeob.com증산법종교.com 입니다.
현재 접속한 도메인 jsbeob.dothome.co.kr
사이트 초기 작업시 생성한 임시 도메인이며
향후 접속불가할 수도 있습니다.
이 알림창은 공식 도메인으로 재접속하면
사라집니다.
공식 도메인으로 재접속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