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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전경 초판-제 3 장. 선생의 성도와 기행이적

대순전경 초판-제 3 장. 선생의 성도와 기행이적

경전 및 도서  화송 화송님의 글모음 쪽지 2015-06-03 02:19 9,140
도강님께서 주신자료 입니다.

제 3 장. 선생의 성도와 기행이적 (第三章. 先生의 成道와 奇行異蹟)
1. 증산선생께서 여러 해 동안 객지를 다니시면서 많은 경험을 얻으신 후에 신축(1901)년 선생께서 31세 되시던 해에 비로소 모든 일을 자유자재로 하실 권능을 얻지 아니하시면 널리 세상을 구할 뜻을 이루지 못할 것 임 을 깨달으시고 드디어 전주 모악산 대원사에 들어가셔서 도를 딱으시니 이 해 7월에 상서러운 큰 비가 쏟아지고 큰 바람 일어나는 가운데 하늘과 땅의 무상없는 큰 도를 깨달으시고 탐음진치 사종마(四種魔)를 굴복시키 시니 이때에 대원사 주지승이던 박 금곡이 선생께서 공부하실 때 시중을 들었더라. 原文: 先生이 多年間 客地에 遊歷하사 만흔 經驗을 어드신 後에 辛丑에 이르사 비로소 모든 일을 自由自在로 하실 權能을 엇지 안코는 ? 을 일우지 못할 줄을 ?다르시고 드대여 全州 母岳山 大願寺에 드 러가 道를 닥그사 七月 大雨 五龍噓風에 天地大道를 ?다르시고 四 種魔를 降하시니 이?에 同寺 主持 朴 錦谷이 모든 便宜를 도앗더 라.
2. 임인(1902)년 4월에 금구군 수류면(현재 김제군 금산면) 원평장을 지나시 다가 우림면 하운동에 사는 김 형렬을 만나시니 형렬은 예전에 선생을 만 나 뵌 적이 있었는데 선생께서 도를 이루셨다는 소문을 듣고 다시 뵙기를 원하던 차 이므로 크게 기뻐하며 자기집으로 와주시기를 간청하였더니 4 월13일에 형렬의 집에 오셔서 곧 형렬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대의 집에 아이 낳을 기운이 보이니 빨리 안방에 들어가서 출산을 잘 도우라." 하시 거늘 형렬이 안방에 들어가보니 과연 아내가 형렬의 셋째 아들을 낳았더 라.原文: 壬寅 四月에 先生이 金溝郡(今金堤郡) 水流面 院坪場에 지나시다가 全州郡 雨林面 夏雲洞 金 亨烈을 만나시니 大抵 亨烈은 前者부터 先生께 知面이 잇셧는대 先生의 成道하신 所聞을 듯고 뵈입기를 願하든 次임으로 喜不自勝하야 自家에 顧臨하시기를 懇請하엿더니 同月 十三日에 亨烈의 집에 이르사 곳 亨烈다려 일너 가라사대 君 家에 産氣가 잇스니 ?니 內室에 드러가 잘 도우라 하시거늘 亨烈 이 內庭에 드러가니 果然 그 妻가 第三子를 分娩하엿더라.
3. 형렬의 아내가 예전부터 아이를 낳은 후에는 반드시 복통이 생겨서 몇 개 월씩 고생하고 하였는데 이번에도 그러하므로 형렬이 크게 근심하였더니 선생께서 위로하여 말씀하시기를 "앞으로는 모든 일에 나를 믿고 근심을 하지 말라." 하시므로 형렬이 선생께서 명하신대로 선생만을 믿고 근심을 놓았더니 과연 아내의 복통이 곧 그치고 그 밖에 기침과 해소같은 다른 잔병도 모두 나으니라. 原文: 亨烈의 妻가 自來로 産後에 반다시 腹痛이 發하야 累月을 苦痛하는 例症이 잇서서 ? 復發함으로 亨烈이 크게 근심하거늘 先生이 慰勞 하야 가라사대 今後로는 모든 일에 나를 信賴하고 근심을 노으라 하시거늘 亨烈이 命하신 대로 다만 天師만 밋고 근심을 노핫더니 果然 그 妻의 腹痛이 곳 그치고 그밧게 喘氣와 咳嗽 等 別症도 다 나으니라.
4. 선생께서 형렬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제 선천의 도가 어지러워지고 쇠퇴하 는 말세를 당하여 앞으로 끝없는 큰 운수가 열릴 것이니 모든 일을 조심 하여 남에게 척을 짓지 말고 죄를 멀리하여 순결한 마음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드는 모임에 참여하라. 나는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 삼계의 대 권을 주재하여 조화로써 천지를 개벽하고 늙지않고 죽지않는 신선세계를 열어 고통의 바다에 빠진 중생들을 건지려 하노라." 하시고 이로부터 형 렬의 집에 머무르시면서 천지공사를 행하실 때 형렬에게 신안(神眼)을 열 어주시어 신명들의 모임과 흩어짐 그리고 신명들이 선생의 명을 받드는 것을 곁에서 참관(參觀)하게 하시니라.原文: 先生이 亨烈다려 일너 가라사대 이졔 末世를 當하야 압흐로 無極大 運이 열니나니 모든 일에 조심하야 남에게 척을 짓지 말고 죄를 멀 니하야 純潔한 마음으로 天地公庭에 參與하라. 나는 三界大權을 主 宰하야 造化로써 天地를 開闢하여 不老不死의 仙境을 열어 苦海에 浸淪한 衆生을 건지리라 하시고 일로부터 亨烈의 집에 머무르사 天 地公事를 行하실새 亨烈에게 神眼을 열어주사 神明의 會散과 聽令 을 參觀케 하시니라.
5. 선생께서 김 형렬의 집에서 여름을 지내실 때 형렬의 집이 가난하여 선생 께 올리는 음식이 약소하고 또 채소밭이 메말라서 채소가 잘 자라지 않으 므로 형렬이 근심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산속에는 별미가 없으니 채소나 잘 자라게 하여주리라." 하시더니 이로부터는 약간 심어 두었던 채소가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잘 자라서 쓰임에 넉넉하게 되니라. 原文: 여름을 지내실 새 亨烈의 집이 貧寒하야 供?가 粗略하고 ? 圃園 이 瘠薄하여 蔬菜가 잘 자라지 안니함으로 亨烈이 근심하거늘 先生 이 일너 가라사대 山中에는 別味가 업나니 蔬寀나 잘 蕃殖케 하여 주리라 하시더니 일로부터 약간 심어 두엇든 악마듸 蔬寀가 人工을 加하지 아니하여도 졔절로 잘 蕃殖하야 採之不竭하니라.
6. 임인(1902)년 6월 어느날 선생께서 김 형렬에게 명하시기를 "예수교책 한 권을을 구해오라." 하시거늘 형렬이 이웃마을 오동정에 사는 김 경안에게 서 신약전서 한 권을 빌려서 올리니 선생이 받아서 그 책을 불사르시니 라. 그 후에 형렬이 선생을 모시고 오동정에 사는 차 윤필의 집에 가니 경안이 와서 빌려간 책을 돌려주기를 요청하므로 형렬이 대답하지 못하고 있으니 선생이 대신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곧 돌려주리라." 하시더니 마침 한 붓장사가 지나가거늘 선생이 불러들이시어 술과 음식을 많이 접 대한 후에 "그 붓상자를 열어보라." 하시니 붓장사가 상자를 열어 보이니 신약전서 한 권이 들어 있는지라.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는 반드시 예수를 믿지 아니하니 이 책은 그대에게 쓸모가 없을 터이니 나에게 줄 수 없겠느냐." 하시니 붓장사가 후한 대접을 받은터라 허락하거늘 선생께 서 그 책을 받아서 경안에게 주시니라. 原文: 六月 어느 날 亨烈을 命하사 耶蘇敎書 一冊을 求하여 오라 하시거 늘 亨烈이 隣里 梧桐亭 金 京安에게서 新約全書 一冊을 비러다 올 니니 先生이 바더서 불살으시니라. 그 後에 亨烈이 先生을 모시고 梧桐亭 車 允必의 집에 가니 京安이 와서 비러간 冊을 돌녀주기를 請함에 亨烈이 對答치 못하거늘 先生이 가름하야 對答하사대 곳 돌 녀주리라 하시더니 마참 한 筆商이 지나거늘 先生이 불너들이사 술 을 만히 주신 後에 그 筆箱을 열어 뵈이기를 請하신 대 筆箱이 곳 열어 뵈이니 新約全書 一冊이 잇는지라. 先生이 가라사대 그대는 반다시 耶蘇를 밋지 아니하니 이 冊은 無用이라. 나에게 傳함이 엇 더하뇨. 筆商이 許諾하거늘 先生이 그 冊을 바더서 京安에게 주시 니라.
7. 그 후에 불교책 천수경과 한자옥편과 사요와 해동명신록, 강절관매법, 대 학등 여러 책과 형렬의 채권부를 불사르시니라. 原文: 그 後에 佛書 千手經과 漢字玉篇과 史要와 海東名臣錄과 康節觀梅 法과 大學等 書를 불살으시니라.
8. 임인(1902)년 9월에 농부들이 부지런히 밭을 갈아서 보리를 심는 것을 보 시고 말씀하시기를 "저렇게 힘들여 일하나 수확을 얻지 못하리니 어찌 불 쌍하지 아니하리오." 하시거늘 형렬이 그 말씀을 듣고 그 해 보리농사를 짓지 아니하였더니 이듬해 봄 기후가 순조로워서 보리농사가 잘되어 풍년 의 징조가 보이는 지라. 김 보경등 모든 종도들과 이웃사람들이 모두 선 생의 말씀을 믿고 보리농사를 짓지 아니한 형렬을 비웃거늘 선생께서 말 씀하시기를 "이 일은 신명공사에서 결정 된 것이니 어찌 결실하기 전에 미리 풍작을 말할수 있으리오." 하시더니 과연 5월5일에 쏟아진 폭우로 인하여 보리이삭이 다 말라서 전혀 수확이 없게 되고 쌀값이 폭등하여 한 말에 일곱 냥(일원 사십전)이나 되니 이로부터 모든 사람이 선생의 말씀 을 깨달아 믿고 복종하니라.原文: 九月에 農家에서 麥耕으로 奔忙하거늘 先生이 ?然히 가라사대 이 럿케 辛苦하여 收穫을 엇지 못하리니 엇지 可惜지 아니하리요. 하 시거늘 亨烈이 이 말삼을 듯고 드대여 麥農을 廢하엿더니 癸卯春에 이르러 天候가 順調하야 豊登의 兆가 잇는지라. 金 甫京 等 모든 從徒들과 이웃사람들이 모다 亨烈을 嘲笑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이 일은 神明公事에서 決定된 것이니 아즉 結實期에 이르지 못하 야 엇지 豊作을 預斷하리요. 하시더니 果然 五月五日 大雨로 因하 야 麥穗가 다 말나서 收穫이 全無하게되고 米價가 高騰하여 一斗에 値 七兩(今金貨一圓四十錢)이 되니 일로부터 모든 사람이 先生? 信服하니라.
9. 한 사람이 선생께 묻기를 "금년에는 어떤 곡식을 심는 것이 좋겠습니까." 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일본사람이 녹줄을 가지고 왔으니 일본종자 를 심어라. 그리고 모든 일에 그들을 거슬리게 하지 않으면 녹줄이 따라 들어오리라." 하시니라. 原文: 한 사람이 무러 가로대 今年에는 엇든 穀種을 심음이 조흐릿가. 先生이 가라사대 日本人이 祿을 ?고 왓나니 日本種을 取하여 심 으라. ? 生計의 모든 일을 그들에게 順從하라. 祿줄이 ?라 들리 라. 하시니라.
10. 임인(1902)년 겨울에 김 형렬이 선생을 모시고 계실 때 마침 큰 눈이 내 리거늘 형렬이 "전설에 송 시열이 거주하는 집 지붕에는 눈이 쌓이지 못 하고 녹았다 하니 송 시열은 진실로 천지의 정기를 타고난 사람일 것 입 니다." 라고 말하자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그러하랴. 이제 내가 있는 곳을 살펴보라." 하시거늘 형렬이 밖으로 나가보니 날이 차고 눈이 많이 내려 쌓였는데 오직 선생이 거처하시는 형렬의 집 지붕 위에는 한 점의 눈도 없고 맑은 기운이 하늘에 뻗어 구름이 가리지 못하고 푸른하늘 이 보이는지라. 이날 이후로 형렬이 항상 유의해서 살피니 언제나 선생이 머무시는 곳에는 반드시 맑은 기운이 푸른하늘까지 통하여 구름이 가리지 못하고 비록 큰 비가 오는 때에도 그러하더라. 原文: 冬月에 亨烈이 先生을 모시더니 마참 大雪이 나리거늘 亨烈이 엿주 어 가로대 傳說에 宋 尤菴의 居住하는 집웅에는 눈이 싸이지 못하 고 녹는다하니 진실로 天地의 至靈之氣를 타고난 사람이로소이다. 先生이 가라사대 진실로 그러하랴. 이졔 나 잇는 곳을 삷혀보라. 亨烈이 밧게 나가보니 날이 차고 눈이 만히 나려 싸이되 오직 그 집웅에는 一點雪도 업고 맑은 긔운이 하눌에 ?치어 구름이 가리우 지 못하고 碧空이 通하여 보이더라. 일로부터 亨烈이 恒常 留意하 야 삷히니 언졔든지 그 머무시는 곳에는 반다시 맑은 긔운이 碧空 을 通하야 구름이 가리우지 못하고 비록 큰 비가 오는 ?에도 그러 하더라.
11. 항상 밖으로 나가실 때에는 종이에 치도령을 써서 불사르시니 신명들이 여름이면 바람을 불게 하여 길에 이슬을 떨어뜨리고 겨울에는 진 길을 얼 어 굳게 함으로 선생은 언제나 마른 신발로 다니시니라. 原文: 매양 出他하실 ?에는 神明에게 治道令을 써서 불살으사 여름이면 바람을 불녀 길에 이슬을 ?러트리시고 겨울이면 진 길을 얼어 굿 게 하신 後에 말은 신으로 다니시니라.
12. 하운동은 산 속이므로 길이 협소하고 숲이 우거져서 이슬이 많을뿐 아니 라 장마에는 길이 개울을 이루었으나 선생의 신발은 항상 깨끗하므로 사 람들이 모두 신기하고 이상하게 생각하더라. 原文: 夏雲洞은 山中임으로 길이 甚히 좁고 樹木이 길에 욱어저 얽히여서 이슬이 만흘? 아니라 ?霖이 질 ?에는 길에 물이 흘너 溪流를 일 우되 先生의 신발은 恒常 乾淨함으로 附近 村民들이 모다 神異히 역이더라.
13. 또 선생이 계신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실 때에는 언제나 동네 입구 양 편에 구름기둥이 깃대와 같이 높이 뻗쳐서 여덟 팔자 형태를 이루므로 종 도들이 그 이유를 묻자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신장(神將)들이 나를 호위하기 위하여 대기하니 만들어지는 문이니라." 하시니라. 原文: ? 出他하실 ?에는 반다시 洞口의 左右側에 雲柱가 놉히 ?치어 八字形을 일움으로 從徒들이 그 理由를 무른대 先生이 가라사대 이는 將門이라 하시니라.
14. 계묘(1903)년 7월에 쌀값이 크게 오르고 농작물에 해충피해가 심하여지므 로 민심이 불안해 지거늘 선생이 여러 종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신축 (1901)년 이후로는 일년삼백육십오일 일년의 일을 모두 내가 맡았으니 금 년농사를 잘 되게 하여 민중의 생계를 넉넉하게 하리라." 하시고 크게 우 뢰와 번개를 일으키시니 이로부터 해충피해가 줄어들고 농작물이 잘 자 라느니라. 原文: 癸卯 七月에 米價가 奔騰하고 農作物에 蟲災가 甚하야 人心이 極히 不安하거늘 先生이 여러 從徒들에게 일너 가라사대 辛丑 以後로는 年事를 내가 맛헛스니 今年의 農作을 豊登케 하야 民祿을 넉넉케 하리라. 하시고 크게 雷電을 이르키시니 일로부터 蟲災가 것치고 作物이 大登하니라.
15. 선생의 친동생 영학이 항상 도술을 통하기를 바라며 선생께 빌었더니 하 루는 선생께서 부채 한개에 학을 그려서 영학에게 주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집에 돌아가서 이 부채를 부치면서 칠성경을 무곡파군(武曲破軍)까지 읽 고 이어서 대학을 읽어라. 그러면 도술을 통하리라." 하시니라. 영학이 부 채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선생의 처남집인 정 남기의 집에 들리니 남기의 아들이 그 부채의 아름다움을 탐내어 부채를 빼앗고 돌려 주지 아 니하거늘 영학이 부득이 선생이 부채를 주신 사유를 말하고 돌려주기를 간청하니 남기의 아들은 더욱 탐내어 주지 않음으로 할 수없이 빼앗기고 돌아가니라. 原文: 先生의 親弟 永學이 恒常 道術을 通하기를 熱望하여 先生? 發願하 더니 하로는 先生이 한 부채에 鶴을 그려서 永學을 주시며 가라사 대 집에 도라가서 이 부채를 부치면서 七星經을 武曲破軍?지 닑 고 니어서 大學을 닑으라. 그러면 道術을 통하리라. 永學이 부채 를 가지고 집으로 도라가다가 鄭 南基(先生의 妻男)의 집에 들니니 南基의 아들이 그 부채의 美麗함을 貪내여 ?앗고 주지 아니하거늘 永學이 不得已하야 그 事由를 말하고 돌녀주기를 懇求하니 南基의 아들은 더욱 貪내여 주지 아니 함으로 할 일업시 ?앗기고 도라 가 니라.
16. 그 후에 남기의 아들이 그 부채를 부치면서 대학을 읽으니 문득 신통력이 생겨나 신명(神明)들을 부리고 물을 뿌려 비를 오게하니 남기가 기뻐하여 그 아들을 부추겨 선생의 도력(道力)을 빼앗고자 아들을 데리고 함께 하 운동에 이르니 선생께서 그 일을 미리 아시고 우묵골(宇默谷)에서 하운동 으로 오셔서 두 사람을 만나시고 남기의 예의없음을 꾸짖으시고 그 아들 을 신통력을 거두신 후에 돌려 보내시니라.原文: 그 後에 南基의 아들이 그 부채를 부치면서 大學을 닑음에 문듯 神 力을 통하야 能히 神明을 부리며 물을 ?려 비를 베푸는지라. 南基 가 깃버하야 그 아들을 敎唆하야 先生의 道力을 ?앗으라함으로 그 아들이 父 南基로 더부러 夏雲洞에 이르니 先生이 그 일을 알으시 고 南基의 無義함을 ?지즈사 그 아들의 神力을 다 거두신 後에 돌 녀보내시니라.
17. 갑진(1904)년 정월에 백 남신이 관액(官厄)을 당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깊이 숨어서 김 병욱을 통하여 선생께 그 액을 풀어주시기를 간절히 청하 거늘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부귀한 자는 돈을 써야 하나니 돈 십 만냥 을 증서(證書)로 가져오라." 하심으로 남신이 곧 십 만냥의 증서를 선생 께 올렸더니 그 후로 곧 남신의 관액이 풀리는지라. 선생께서 그 받으신 증서를 불사르시니라.原文: 甲辰 正月에 白 南信이 官厄에 걸니어 깁히 隱居하야 所措을 莫知 하고 金 秉旭을 통하야 先生? 解難하여 주시기를 懇乞하거늘 先生 이 가라사대 富貴한 者는 돈을 써야 하나니 돈 十萬兩(今金二萬 圓)의 證書를 가져오라. 南信이 곳 十萬兩의 證書를 올녓더니 그 後로 南信의 禍厄이 곳 풀니는지라. 先生이 그 證書를 불살으시니 라.
18. 갑진(1904)년 정월 십오일에 선생께서 술을 잡수시고 곤히 주무시는데 갑 자기 장 흥해의 부친 효순이 찾아와 어린 아이에게 급한 병이 생겨서 죽 게 되었으니 와서 살려 주시기를 청하거늘 선생께서 혼몽하신 가운데 "냉 수나 먹이라." 말씀하셨더니 효순이 그 말대로 병든 아이에게 냉수를 먹 였더니 곧 죽는지라. 효순은 원래 성질이 사나워서 사람들이 천둥이라는 별명으로 부르는 터인데 병든 아이가 죽는 것을 보고 크게 분노하여 선생 을 원망하여 말하기를 이것은 고의로 약을 잘못 가르쳐 주어 죽게 함이 라. 손으로 만져서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 일으키며 말 한 마디로 아무리 위독한 병이라도 고치는 것을 내가 직접 본 바이니 만일 고의가 아니라면 물은 고사하고 흙을 먹였을지라도 그 신통한 도술로 능히 낫게 하였을 것 이라고 하고 드디어 몽둥이를 가져와서 선생을 마구 치기 시작하니 선생 의 온 몸에 유혈이 낭자한지라. 그제서야 선생이 비로소 깨어 일어 나시 니 장 효순이 선생을 결박하여 장방청으로 끌고 가다가 문득 뉘우친 듯 이끌며 말하기를 "이것은 다 나의 잘못이라, 아이가 급병으로 죽었거늘 어찌 선생을 원망하리오." 하며 마음을 풀고 옛 정으로 돌아가기를 청하 며 자기집에 함께 가시기를 원하거늘 선생이 듣지 아니하시고 서 원규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신 후 이튿날에 전주 이동면 이 직부의 집으로 가시 니라. 대개 흥해의 부친 효순이 선생을 용서하여 장방청에 끌고 가다가 돌아가시게 한 것은 선생께서 백 남신에게 받은 돈 이십 만냥의 증서가 있음을 알고 돈을 요구하려 함이더라.原文: 十五日에 先生이 술을 마스시고 혼몽히 주므실 새 張 興海의 幼兒 가 急病이 發하야 瀕死함으로 興海의 父 孝淳이 急히 와서 施療를 請하거늘 先生이 누어 일지 아니하시고 혼몽中에 冷水나 먹이라 말 삼하섯더니 孝淳이 病兒에게 冷水를 먹임에 곳 死亡하는지라. 孝淳 은 本來 性質이 慓悍하야 府中人이 天動이라고 號하는 터인대 病兒 의 死亡함을 보고 大怒하야 先生을 원망하야 가로대 이는 故意로 藥을 그릇 일러 죽임이라. 손으로 만져서 죽은 사람을 일으키며 말 한마대로 危殆한 病을 곳침은 내가 實見한 바이니 만일 故意가 아 니면 물은 姑捨하고 흙을 먹엿슬지라도 그 神異한 道術로 能히 낫 게 하엿슬것이라하고 드대여 棍棒을 가지고 와서 先生을 亂打하야 流血이 淋?케한지라. 先生이 비로소 ?어 이러나시니 孝淳이 先生 을 結縛하야 長房廳으로 갓다가 문득 뉘우친듯이 ?느며 가로대 이 것이 다 나의 잘못이라. 幼兒가 急病으로 죽엇거늘 엇지 先生을 원 망하리오하고 前交를 回復하기를 請하며 自家로 同行하기를 求하거 늘 先生이 듯지 아니하시고 徐 元圭의 집으로 가서 留하시고 翌日 에 李 直夫의 집으로 가시니라. 대개 孝淳이 先生을 容恕하야 長房 廳으로부터 도라가시게 한 것은 白南信에게 바든 돈 二十萬兩의 證 書가 잇슴을 알고 돈을 要求하려 함이러라.
19. 다음날 장 효순이 서 원규의 집으로 가서 선생께서 계시지 않는 것을 보 고 크게 화를 내며 사람을 죽인 자가 도망하였다 하고 사방으로 찾으니 라. 이때 선생의 가족은 전주 우전면 화정리 이 경오의 집 곁방에 옮겨 거처하시고 계셨는데 효순의 가족이 화정리까지 와서 행패를 부리니라. 한편 김 형렬은 장 효순의 일을 전혀 알지 못하고 선생의 소식을 들으려 고 화정리에 오니 효순의 집 사람들이 형렬을 결박하여 원규의 집으로 끌 고 가서 선생의 행방을 물었으나 가르쳐주지 아니함으로 그들은 더욱 화 를 내며 형렬과 원규를 무수히 구타하니라. 이 일로 인하여 선생의 가족 들은 태인 굴치로 화를 피해서 이사를 가고 형렬은 원규의 집에서 밤을 이용하여 피하여 도망하고 원규는 매일 계속되는 그들의 행패를 견디지 못하여 약국 문을 닫고 가족을 데리고 익산으로 화를 피해 숨으니라.(이 일을 張 孝淳의 亂이라 한다)原文: 翌日에 孝淳이 元圭의 집에 가서 先生의 안 계심을 보고 大怒하야 殺人犯으로 逃避하엿다하고 四方으로 搜索하더라. 그?에 先生의 省率은 全州郡 亂田面 花亭里 李 京五家 狹室에 移居하엿는대 孝淳 의 家族이 花亭里에 와서 行悖하니라. 金 亨烈은 孝淳의 일을 알지 못하고 先生의 消息을 드르려고 花亭里에 오니 孝淳의 家人이 亨烈 을 結縛하야 元圭의 집으로 가서 先生의 行方을 뭇되 가르키지 아 니함으로 그들은 더욱 憤怒하야 亨烈과 元圭를 無數히 毆打하니라. 일로 因하야 先生의 省率은 泰仁 屈峙로 避禍하고 亨烈은 元圭의 집에서 乘夜逃避하고 元圭는 그들의 連日行悖에 견대지 못하야 藥 局을 閉鎖하고 家眷을 거느리고 益山으로 避禍하니라.
20. 이 때에 선생께서 이 직부의 집에 머무르시니 직부의 부친 치안이 그 해 의 운세를 선생께 여쭈니 선생께서 백지 한 장에 글을 쓰셔서 불사르시고 다시 글을 쓰셔서 밀봉하여 주시며 "급한 일이 있거든 열어보라." 하시므 로 치안이 깊이 갈무리하여 두었더니 그 후에 치안의 아들며느리가 난산 (難産)으로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음을 듣고 선생께서 그 일을 가르치심인 가 하여 그 봉서(封書)를 가지고 가니 이미 순산하였거늘 다시 갈무리해 두었더니 그 해 말에 이르러 치안이 병들어 위독한지라. 직부가 봉서를 떼어보니 소시호탕 두첩이라 적혀 있으므로 그대로 약을 쓰니 곧 나으니 라. 原文: 이?에 先生이 李 直夫의 집에 머무르시니 直夫의 父 治安이 當年 의 命壽를 뭇거늘 先生이 白紙一枚에 글을 써서 불살으시고 다시 글을 써서 緊封하야 주시며 가라사대 急한 일이 잇거든 열어보라 하신지라. 治安이 깁히 갈머두엇더니 그 後에 그 子婦가 難産으로 危境에 이르럿슴을 듯고 그 일을 가르치심인가하야 그 封書를 가지 고 간즉 임의 順産하엿거늘 다시 갈머두엇더니 歲末에 이르러 治安 이 病들어 危篤한지라. 直夫가 封書를 ?여보니 小柴胡湯二貼이라 씨엿거늘 그 藥을 써서 곳 快復되니라.
21. 갑진(1904)년 2월에 밤재에 계실 때 선생께서 친동생 영학에게 대학(大 學)을읽으라 하셨으나 영학이 듣지 아니하고 술법책(術書)에만 빠져 있으 므로 선생께서 탄식하시며 말씀하시기를 "멀지 아니하여 영학을 못보게 될 것이라." 하시고 이 도삼에게 명하시어 "뼈는 마른 모래 사장에 널려 있고 풀뿌리만 사방에 둘러 있으니 넋이 고향이라 하여 돌아오건만 제사 지내 줄 후손하나 없구나." 라는 시 한 구절을 영학에게 전하게 하시어 이 글로서 살펴 깨닫게 하시려고 하셨으나 영학이 끝내 깨닫지 못하니라.原文: 二月에 屈峙에 계실 새 永學에게 大學을 닑으라 하섯더니 永學이 듯지 아니하고 術書에 沈味하거늘 先生이 ?然히 歎息하야 가라사 대 멀지 아니하야 永學을 訣別하리라 하시고 李 道三을 命하사 "골 폭사장전유초(骨暴沙場纏有草) 혼반고국조무친(魂返故國弔無親)" 이란 一句詩를 永學에게 傳하사 써 戒▩ 省悟케 하시되 永學이 종시 省 悟치 아니하니라.
22. 그 뒤에 영학이 병들어 위독하여 죽게 된 것을 선생께서 들으시고 김 갑 칠을 데리고 밤재로 가시는 도중에 한 주막에 드시니 한 사람이 허리가 굽어서 엎드려 기어 다니거늘 선생께서 그 허리를 펴지 못하는 이유를 물 으시니 그 사람이 말하기를 "십여년전부터 곱사가 되어서 고치지 못하였 습니다." 하거늘 선생께서 손으로 그 허리를 만져서 펴주시고 "사례금 열 다섯냥을 가져오라." 하시니 그 사람이 기뻐 뛰며 여쭈기를 "선생님은 진 실로 저를 다시 살리신 은인이시니 그 은혜를 갚으려 하면 태산이 오히려 가벼우나 지금 몸에 지닌 돈이 없사오니 무엇으로 갚으오리까."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물품도 괜찮으니라." 하시니 그 사람이 말하기를 "제가 널 장사를 하오니 대신 널을 드림이 어떠하나이까. 널 한 벌 값이 열 다섯냥 이나이다."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그것도 좋으니 잘 가려서 두라." 하 시고 집에 돌아가시니 영학이 사경에 이른지라. (선생께서 영학의 입에 손가락을 대고 말씀하시기를 "이 손가락을 떼면 곧 네가 죽을테니 뜻이 있는대로 유언을 하라." 하시니 영학이 부모에게 할 말을 모두 마친 후에 선생께서 손가락을 떼시니 곧 죽으니라.) 이에 선생께서 널을 가져다가 장례(葬禮)를 치르시니라. 原文: 그 後에 永學이 病들어 죽게 되거늘 先生이 드르시고 金 甲七을 다 리고 집으로 가실 새 中途에 한 酒店에 드시니 한 사람이 허리가 굽어서 업듸여 기여 다니거늘 先生이 그 허리를 펴지 못한 理由를 무르시니 그 사람이 對하되 十餘年前부터 곱사가 되여서 고치지 못 하엿나이다 하거늘 先生이 손으로 그 허리를 주물너 펴주시며 가라 사대 謝金 五十兩(今三圓)을 가저오라하시니 그 사람이 瞬間에 허 리를 편 後에 짓버 ?놀며 가로대 先生은 實로 再生之恩이 잇사오 니 그 恩惠를 報答할진대 山岳이 오히려 가뱌우나 只今 몸에 所持 金이 업사오니 무엇으로 酬答하오릿가. 先生이 가라사대 物品도 可 하니라. 그 사람이 對하되 내가 棺材장사를 하오니 棺材로 드림이 엇더하니잇가. 棺材한 벌 價額이 十五兩 이니이다. 先生이 가라사 대 그도 조흐니 잘 가려두라 하시고 집에 도라가시니 永學이 임의 죽엇거늘 그 棺材를 가져다가 治葬하시니라.
23. 갑진(1904)년 2월 보름에 김 갑칠을 데리시고 부안 고부등지를 두루 돌아 보실 때 저녁 무렵에 고부 검은바위 주막에 들리시니 이때에는 화적(火 賊)들이 많이 일어나서 대낮에도 나타나고 함으로 순검 한사람이 평복으 로 변장하고 야간 순찰을 하려고 이 주막에 들어 있음을 선생께서 보시고 주모에게 말씀하시기를 "저 사람에게 술이나 밥을 주지말라. 만일 주었다 가 그 값을 받지 못하면 넉넉하지 못한 장사에 손해가 아니겠느냐." 하시 니 순검이 그 말에 분노하여 선생을 구타하며 무례한 말을 한다고 꾸짖거 늘 선생께서 웃으시며 말씀하시기를 "다 죽은 시체에게 맞았다고 무엇이 아프랴." 하시고 밖으로 나가시니 주모가 순검에게 말하기를 저 사람의 말이 이상하니 반드시 무슨 까닭이 있을 것이니 따라 나가서 사죄하고 그 이유를 물어보라 하거늘 순검이 그 말을 옳게 여겨 곧 선생의 뒤를 따르 며 사죄한 후에 그 이유를 물으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오늘 밤에는 사무를 보지 말고 다른곳으로 몸을 피하라." 하시거늘 순검이 선생께서 명하신대로 즉시 몸을 피하였더니 이윽고 밤이 깊어 화적들이 몰려와서 주모를 구타하며 순검의 행방을 묻더라. 이것은 곧 화적들이 순검을 죽이 려고 미리 작정하고 있었음이라. 다음날 순검이 선생께서 머무시는 곳에 찾아와서 살려주신 새 삶을 주신 은혜에 감사하니라.原文: 十五日 金 甲七을 다리시고 扶安, 古阜等地를 巡遊하실 새 昏夜에 古阜 黑巖酒店을 지나시니 이?에 火賊이 熾盛하야 白晝에 橫行함 으로 巡檢 一人이 微服으로 夜巡하기 위하야 이 酒店에 드럿거늘 先生이 酒婦에게 일너 가라사대 져 사람에게 酒食을 주지 말라. 만 일 酒食을 주엇다가 갑을 밧지 못하면 不贍한 營業에 損害가 아니 냐 하시니 巡檢이 그 말삼에 憤怒하야 先生을 毆打하며 無禮한 말 을 한다고 ?짓거늘 先生이 우서 가라사대 다 죽은 屍體에게 마져 서 무엇이 압흐랴하시고 밧그로 나가시니 酒婦가 巡檢다려 일으되 져 사람의 말이 異常하니 반다시 무슨 ?닭이 잇슬지라. 나가서 謝 過하고 그 緣由를 무러보라 하거늘 巡檢이 올히 녁여 곳 先生의 뒤 를 ?르며 謝過한 後에 緣由를 무르니 先生이 가라사대 今夜에는 事務를 廢하고 다른 곳으로 몸을 避하라 하시거늘 巡檢이 命하신 대로 卽時 몸을 避하엿더니 이윽고 夜深하야 火賊이 몰녀와서 酒婦 를 毆打하며 巡檢의 去處를 무르니 이는 여러 火賊이 巡檢을 죽이 랴고 預約한 일이 잇슴이라. 翌日에 巡檢이 先生의 留하시는 곳을 차져와서 再生의 恩을 感謝하니라.
24. 갑진(1904)년 5월에 선생께서 굴치에 계실 때 김 갑칠이 구릿골로 부터 와서 뵙자 선생께서 물으시기를 "너희 지방 농사 형편이 어떠하냐." 하시 므로 갑칠이 말씀드리기를 "가뭄이 심하여 아직까지 모를 심지 못하여 민 심이 흔들리고 있나이다." 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나에게 비 를 빌리러 왔도다. 내가 너에게 우사(雨師)를 붙여 줄테니 곧 돌아가되 길에서 비를 만날지라도 피하지 말라. 그것은 너의 몸이 천지공사를 간직 하고 가는 까닭이니라." 하시니라. 갑칠이 명을 받들고 돌아 갈 때 얼마가 지 않아서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순식간에 냇물이 넘치더니 이로부터 물 이 풍족하여져서 몇 일 사이에 모두 모내기를 마치니라.原文: 五月에 先生이 屈峙에 계실 새 甲七이 銅谷으로부터와 뵈이거늘 先 生이 무러 가라사대 너의 地方에 農況이 엇더하뇨. 甲七이 對하야 가로되 旱災가 甚하야 移秧을 못함으로 民心이 騷然하니이다. 先生 이 가라사대 네가 비를 빌러 왓도다. 네게 雨師를 붓치노니 곳 도 라가되 길에서 비를 맛날지라도 回避치 말라. 그것은 네가 天地公 事를 몸에 ? 緣故니라. 甲七이 領命하고 도라갈 새 얼마 아니 가 서 비가 始作하야 頃刻間에 河川이 漲溢하는지라. 일로부터 水量이 充足하야 數日間에 移秧을 맛치니라.
25. 갑진(1904)년 6월에 김 형렬을 데리고 태인 신배를 지나가실 때 그 마을 어떤 집에서 불이 났는데 바람이 거세게 불어서 더욱 불길이 세어지거늘 선생께서 불쌍히 여기시어 말씀하시기를 "저 불을 그대로 두면 이 바람에 온 마을이 재가 되리니 맞불을 놓아 구하리라." 하시고 형렬에게 명하시 어 섶으로 불을 피우게 하시니 순식간에 바람이 자고 불이 꺼지니라.原文: 六月에 亨烈을 다리고 泰仁 新培를 지나실 새 그 里中에 엇든 집이 失火하야 모진 바람에 火勢가 猛熱하거늘 先生이 민망히 녁여 가라 사대 져 불을 그대로 두면 이 바람에 全洞이 焦土될 것이니 맛불을 노아 求하리라 하시고 亨烈을 命하사 섭으로써 불을 피우시니 瞬息 間에 바람이 자고 불이 ?지니라.
26. 갑진(1904)년 8월27일에 익산 만중리 황 사성의 집에 이르시니 마침 어 떤 사람이 화난 얼굴을 하고 있거늘 이것을 보시고 같은 동네 정 춘심의 집으로 옮기시니라. 원래 황 사성의 아버지 숙경이 전주 용진면 용암리 황 참봉에게 돈을 빌려 쓴 일이 있었는데 황 참봉이 죽은 후에 그 아들이 사람을 보내어 빌려간 돈을 독촉하면서 만일 갚지 아니하면 경무청에 고 소하여 감옥에 보내어 썩히면서 받겠다고 위협하는지라. 이날 밤에 황 사 성 부자가 춘심의 집으로 와서 선생을 뵙고 이 사실을 고하며 이 일이 무 사하게 풀리도록 하여 주실 것을 간청하거늘 선생께서 숙경을 명하시어 백목 한 필을 사오라고 하셔서 옷을 지어 입으신 후에 숙경에게 말씀하시 기를 "이후로는 근심을 풀어라. 일이 순조롭게 풀리리라. 백목 한 필은 곧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의 길을 딱는 것이니라." 하시더니 그 후에 순검 이 와서 숙경을 잡아가려 하거늘 숙경이 순검과 함께 채권자의 집에 가서 채무상환을 연기해줄 것을 부탁해보기로 하고 채권자에게 화해를 청하나 채권자가 듣지 않고 고집 하거늘 그 어머니가 그것을 보고 아들을 불러 꾸짖어 말하기를 저 어른은 너의 부친과 친구인데 이제 옥에 가두려하니 이것은 짐승과 같은 행동을 하려고 함이라하며 그 증서를 빼앗아 불살라 버리니 채권자가 할 수 없이 숙경에게 사과 한 후에 고소를 취하하고 채 무관계를 없던 일로 하여 버리니라.原文: 八月 二十七日에 益山 萬中里 黃 士成의 집에 이르시니 마참 엇든 사람이 怒氣를 ?고 잇거늘 다시 同里 鄭 春心의 집으로 옴기시니 라. 元來 士成의 父 叔京이 全州 龍進面 龍巖里 黃 參奉에게 債務 가 잇섯더니 黃 參奉이 죽은 後에 그 아들이 專人하야 債金을 督促 하며 만일 갑지 아니하면 警務廳에 告訴하야 獄中에다 썩히면서 밧 겟다고 威脅하는지라. 이날 밤에 士成父子가 春心의 집에 와서 先 生? 뵈입고 이 事實을 告하며 無事하도록 ?너 주시기를 懇乞하거 늘 先生이 叔京에게 命하사 白木 一疋을 사오라 하사 衣服을 지어 닙으신 後에 叔京다려 일너 가라사대 이 後로는 근심을 풀라. 일이 順調로 풀니리라. 白木一疋은 곳 債權債務間에 길을 닥는 것이니라 하시더니 그 後에 巡檢이 와서 叔京을 잡어가려 하거늘 叔京이 巡 檢으로 더부러 債主의 집에 가서 償還을 延期하기로 하고 和解를 請하되 債主가 듯지안코 固執하거늘 그 母가 아들을 불너 ?지저 가로대 저 어런은 네 父親의 친구인대 이졔 獄에 가두려하니 이는 禽獸의 行爲를 하려함이라하고 곳 그 證書를 ?아서 불살어버리니 債主가 할 일 없서 叔京에게 謝過한 後에 드대여 告訴를 取下하고 債金을 免除하여 버리니라.
27. 갑진(1904)년 9월19일 함열 회선동에 있는 김 보경의 집에 가시니 보경 이 여쭈어 말씀드리기를 요즘 이 부근에 밤마다 도둑이 나타나서 물건을 훔쳐 가는데 저의 집이 비록 넉넉하지는 못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저희 집 을 부자라 말하니 참으로 무서워서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청하 건데 도둑으로부터의 재난을 피하게 해 주십시오 하자 선생이 웃으시며 그 집 문 앞에 침을 뱉으시고 말씀하시기를 "이 후로는 마음을 놓으라, 도둑이 저절로 멀리 가리라." 하시더니 그 말씀대로 그 후로는 도둑의 자 취가 없어지니라.原文: 九月十日에 咸悅 會仙洞 金 甫京집에 가시니 甫京이 엿주어 가로대 이 附近에는 近日에 盜賊이 出沒하야 밤마다 村落을 ?掠하는대 내 집이 비록 饒足치는 못하나 外間에서는 富豪라 稱함으로 實로 危▩ 하와 마음을 놋치 못하오니 請컨대 盜難을 免케 하여지이다 하거늘 先生이 우스시며 그 문 압헤 춤을 밧흐시고 일너 가라사대 今後로 는 마음을 노으라. 盜賊이 졔절로 멀니 가리라 하시더니 果然 그 後로는 盜賊의 자최 업서지니라.
28. 갑진(1904)년 11월에 전주에 가시니 민중들의 소요(民擾)가 일어나서 인 심이 흉흉하거늘 선생께서 김 보경에게 말씀하시기를 "김 병욱은 국가의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으므로 소란한 민심을 잘 다스려서 자기의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인 바 그 방법을 어떻게 할 것인지 병욱에게 물어보고 오 라." 하시므로 보경이 병욱을 찾아서 말씀하신 바를 전하니 병욱이 선생 께 와서 뵙고 말씀드리기를 "저의 무능함으로 인하여 물끓듯하는 민중의 소요사태를 진압시킬 길이 없사오니 오직 선생께서 지니신 신의 위엄만을 믿겠습니다." 하니 선생께서 말씀 하시기를 "내가 알아서 진압 하리라." 하시고 그 날 밤부터 눈과 비가 많이 내리게 하시어 날씨를 혹독하게 하 시니 미처 추위에 대비하지 못하고 거리에 모였던 군중들은 할 수 없이 흩어져 집으로 돌아가고 그 후로도 눈과 비가 삼일간을 계속 내리므로 군 중들이 다시 모이지 못하게 되어 민중들의 소요(民擾)가 저절로 평정 되 니라.原文: 十一月에 全州府에 이르시니 마참 民擾가 이러나서 人心이 洶洶하 거늘 甫京다려 일너 가라사대 金 秉旭이 國家의 重鎭에 處하엿스니 人民의 動搖를 잘 鎭撫하야 써 그 職責을 다하여야 할지라. 그 方 略을 엇더케 定하엿는지 秉旭에게 무러오라. 甫京이 秉旭을 차저 命하신 바를 傳하니 秉旭이 先生? 와 뵈입고 가로대 나의 無能으 로는 물?틋하는 民擾를 鎭壓할 수 업사오니 오직 先生의 神威만 밋나이다. 先生이 가라사대 내가 가름하야 鎭壓하리라 하시고 그날 밤부터 雨雪을 크게 나리시며 天氣를 酷寒케 하시니 防寒의 設備가 업시 露營에 모혓든 群衆은 할 일 업시 解散하야 집으로 도라가고 雨雪은 三日을 繼續함으로 群衆은 다시 모이지 못하고 騷亂은 스 사로 平定되니라.
29. 갑진(1904)년 12월에 선생께서 원평에 계실 때 어사(御使) 박 제빈이 전 라북도 일곱 고을 군수를 파면하고 곧 전주부에 출두하려고 하니 군수 권 직상의 직위도 위태로운지라. 이때 김 병욱은 전주부의 육군 장교로 군수 권 직상과는 친분이 두터우므로 권 직상이 파면되면 자신도 같이 낭패 당 할 일이 많으므로 근심하여 선생께 그 대책을 여쭈니 선생께서 말씀하시 기를 "그 일은 무사하게 풀리도록 할 것이니 근심하지 말라." 하시더니 그 후에 박 제빈이 권 직상을 면직하려고 전주부로 들어오자 때 마침 박 어사(御使)를 면직(免職)한다는 비밀훈령이 전주부에 도착하니라.原文: 十二月에 院坪에 계실 새 그?에 御使 朴 齊斌이 全北 七邑郡守를 罷免하고 將次 全州에 出道하려함에 郡守 權 直相의 地位도 危殆하 게 된지라. 金 秉旭은 當時 全州 陸軍將校로서 權 直相과 友誼關係 가 잇슬 ?아니라 ?한 脣齒의 關係가 잇슴으로 그 일을 근심하야 先生? 그 對策을 뭇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그 일은 無事하도록 ? 르리니 근심치 말라 하시더니 그 後에 朴 御使가 權 直相을 罷免하 려고 全州府에 드러오자 ?마참 朴 御使 免官秘訓이 全州府에 到着 하니라.
30. 선생께서 을사(1905)년 정월 그믐날에 형렬과 더불어 부안군 성근리에 사 는 이 환구의 집에 가시어 여러 날 머물고 계셨는데 환구가 부안읍에 사 는 신 원일을 자주 천거(薦擧)하므로 부르시니 원일이 와서 뵙고 선생을 자기 집으로 모셔다가 공양(供養)하니 원일의 아버지와 아우는 선생을 믿 지 아니하고 선생께서 오래 머무르시는 것도 싫어 하는지라. 원일이 선생 께 부탁하여 여쭈기를 "저의 집 부친이 해마다 고기잡이 업으로 생계를 유지하여 왔는데 작년에는 폭풍으로 인하여 큰 손해를 보았사오니 금년에 는 바람으로 인한 재앙(風災)를 없게 하셔서 고기잡이가 잘되게 하여 주 시면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겠습니다." 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일은 어렵지 아니하니 많은 이익을 얻은 후에 돈 천냥을 나누어 가져오겠 느냐. 장차 쓸 데가 있느니라." 하시니 원일 부자(父子)가 기뻐하며 그렇게 하기로 약속을 하였는데 이 해에는 과연 바람의 재해(風災)가 없 고 칠산 바다에서 신 원일 부친의 고기잡이가 가장 잘 되어 큰 돈을 벌었 더라. 그 후에 선생께서 원일의 부친에게 사람을 보내어 예전에 약속하였 던 돈 천냥을 보내라 하시니 원일의 부친이 약속을 어기고 보내지 아니하 거늘 선생께서 원일에게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대인(大人)을 속이는 것이 라. 나의 모든 일은 신명(神明)과 함께 미리 정하고 하는 것이므로 한가 지라도 사사로이 못하느니 이제부터 그대 부친은 고기잡이업으로 먹고 살 아 가지 못하게 되리라." 하시더니 그 후로는 한 마리의 고기도 잡히지 않아 드디어 고기잡이 업을 그만두게 되니라.原文: 乙巳 正月 晦日에 先生이 亨烈로 더부러 扶安 成根里 李 桓九의 집 에 가사 여러날 머무르실 새 桓九가 扶安邑人 辛 元一을 자조 薦擧 하거늘 先生이 元一을 부르시니 元一이 와뵈입고 先生을 自己집으 로 모서다가 供養하니 元一의 父와 弟가 先生을 밋지 아니하고 오 래 머무르심을 슬혀 하는지라. 元一이 請하야 가로대 家親이 本來 漁業을 즐겨하야 해마다 營業하다가 去年에 暴風으로 因하야 큰 損 害를 보앗스니 請컨대 今年에 風災를 업게 하사 漁業을 興旺케 하 여주시면 家親을 위하야 多幸하겟나이다 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그 일은 어렵지 안니하니 多益을 어든 後에 돈 千兩을 난호아 오 라. 將次 用處가 잇노라 하시니 元一 父子가 깃버하야 許諾하더니 이 해에 果然 風災가 업고 七山海上에서 元一父子의 漁業이 가장 興旺하야 大金을 어든지라. 先生이 元一 父에게 傳人하사 許諾한 돈 千兩을 보내라 하시니 元一의 父가 前約을 어긔고 보내지 아니 하거늘 先生이 元一다려 일너 가라사대 이는 大人을 欺罔함이라. 내 일은 모든 것을 神明과 더부러 作定하는 것임으로 한가지라도 사사로히 못하노니 今後로는 君의 父의 漁業이 撤廢케되리라. 하시 더니 그 後로는 一尾의 魚도 잡히지 아니함으로 드대여 漁業을 廢 止하니라.
31. 을사(1905)년 3월에 일진회 회원과 전주부내 아전들이 서로 다투어 정 창 권이란 사람이 전주부내 아전들과 백성들을 모아서 사대문을 굳게 잠그고 일진회 회원들이 성에 들어오는 것을 막으며 사방으로 통문을 보내어 민 병을 일으켜 일진회를 타도하고자 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렵게 살아난 사람들이 또 죽게 되었으니 내가 그들을 구해주리라." 하시고 화 정리에 사는 이 경오에게 "돈 칠십 냥을 가져오라." 하시니 이 경오가 돈 이 없다고 하므로 다른 곳에서 일곱 냥을 구하셔서 말씀하시기를 "이 일 곱 냥이 능히 일흔 냥을 대신하리라." 하시고 전주 용머리 고개에 있는 주막에 이르시어 지나가는 사람들을 많이 불러 모아 술을 먹이시고 종이 에 글을 써서 그 집 문 돌쩌귀와 문고리를 연결하시더니 이 날 저녁 무렵 에 일진회와 아전들이 서로 화해하여 사대문을 열고 일진회가 성안으로 들어 올 수 있게 하니라. 이 날에 쓰신 돈이 여섯 냥인데 선생께서 형렬 에게 말씀하시기를 "옛날 사람은 바둑 한 점으로 십 만 군사를 물리쳤다 하는데 나는 돈 여섯 냥으로 아전과 일진회의 싸움을 말렸으니 내가 옛 사람만 같지 못하다." 하시니라.原文: 三月에 一進會와 全州吏屬이 서로 交爭하야 崔 昌權이 府內吏民을 모아 四門을 堅閉하고 一進會의 入城을 막으며 四方으로 通文을 發 하야 民兵을 募集하야 一進會를 剿滅코져 하거늘 先生이 가라사대 어렵게 살어난 것이 ? 죽게 되니 救助하여 주리라 하시고 花亭里 李 京五에게 돈 七十兩을 請求하시니 京五가 돈이 업다고 謝絶하거 늘 他處에서 七兩을 辦備하사 가라사대 이 七兩이 能히 七十兩을 代하리라 하시고 亨烈을 다리고 全州 龍頭峙 酒店에 이르사 行人을 만히 請하야 술을 먹이시고 조희에 글을 써서 그 집 문 돌져귀와 문고리를 聯結하시더니 이날 夕暮에 이르러 一進會와 吏屬이 和解 하야 四門을 열고 一進會를 入城케 하니라. 이 날에 消費하신 돈이 六兩이라. 先生이 亨烈다려 일너 가라사대 古人은 바독 한 點으로 十萬兵을 물니쳣다하는대 나는 돈 六兩으로 吏會의 交爭을 ?넛스 니 내가 古人만 갓지 못하다 하시니라.
32. 그 날 이 경오의 집에 화적이 습격하여 돈 칠십 냥을 강제로 빼앗아 가거 늘 선생께서 그 일에 대해 들으시고 말씀 하시기를 "그 돈에 도둑의 기운 (賊神)이 들었음을 알고 내가 그 돈을 사람 살리는데나 쓰려고 달라고 하 였더니 경오가 듣지 않고 없다고 하였느니라." 하시니라.原文: 同日에 火賊이 李 京五의 집을 襲擊하야 돈 七十兩을 奪去하거늘 先生이 드러시고 가라사대 그 돈에 賊神이 犯하엿슴을 알고 活人하 는 일에나 쓰기 爲하야 請求하엿더니 京五가 듯지 안코 업다고 謝 絶하엿다 하시니라.
33. 이 뒤로 두어달 동안 손바래기 마을앞 주막에서 선생께서 공사를 행하시 니 종도들의 오고 감이 많아지자 주막 주인 오 동팔이 돈을 많이 모았더 니 그 뒤에 경비가 부족해진 것을 보고 매우 차갑게 대하므로 모든 종도 들이 그 의리 없음을 분하게 생각하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리석고 배우지 못한 무리가 어떻게 의리를 알리오. 우리가 만일 그 의리없음을 보고 화를 내면 그가 반드시 큰 화(禍)를 입으리니 나의 지나가는 길에 덕을 베풀지 펴지 못하고 도리어 화(禍)를 끼치면 그것이 어찌 사리(事 理)에 맞는 일 이리오." 하시며 종도들을 타이르시니라.原文: 이 後로 數 朔동안 客望里압 酒店에서 公事를 行하실 새 從徒의 來 往이 頻繁하야 店主 吳 東八이 돈을 만히 모핫더니 그 後에 經用이 不足함을 보고 甚히 冷待하거늘 모든 從徒가 그 無義함에 怒한대 先生이 일너 가라사대 至愚無學한 무리가 엇지 義理를 알리오. 우 리가 만일 그 無義함에 怒하면 그가 반다시 大禍를 바드리니 나의 過次에 德을 흘니지 못하고 도로혀 禍를 ?치면 엇지 穩當하리오 하시니라.
34. 그 후에 태인읍에 이르시어 밤중에 종도들을 데리시고 산에 올라가 공사 를 행하신 후에 말씀하시기를 "이 공사에 큰 신명(神明)들이 모였으니 그 들이 해산할 때에는 반드시 참혹한 응징이 있으리라." 하시더니 말씀을 마치시자 문득 태인읍으로부터 군중들의 고함소리가 일어나는지라. 종도 들이 선생을 모시고 산에서 내려와 그 이유를 알아보니 신 경현의 주점이 군중의 습격을 받아서 집 안 살림살이와 술독이 다 부서져 성한 것이 없 더라. 원래 신 경현이 술 집을 경영하면서 읍내 청년들의 동정을 얻어서 많은 돈을 벌었는데 그 뒤에 청년들이 궁핍하여지자 경현이 그들을 매우 차갑게 대하거늘 청년들이 그 의리없음에 화를 내어 이렇게 습격한 것이 라. 그 다음날 선생께서 경현의 집에 가시니 경현 부부가 눈물을 흘리며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기려 하거늘 (선생께서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주모에게 "술을 가져오라." 하시니 주모가 대답하기를 "술 항아리가 모두 깨졌으니 무슨 술이 있겠습니까." 하거늘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저 궤 속에 감추어 둔 소주를 가져오라." 하시니라. 주모가 감탄하며 "선생님 앞에서는 조금도 숨길수가 없습니다." 하고 작은 병에 담겨 있는 소주를 따라 올리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원래 이해득실이란 모두 자신에게 있고 장소에 있지 아니하니 이 뒤로는 삼가하여 모든 사람에게 따뜻한 정 을 베풀라. 그러면 앞 길이 펴이고 영업이 다시 잘되리라." 하시니라.原文: 그 後에 泰仁邑에 이르사 夜半에 여러 從徒를 다리시고 山에 올나 公事를 行하신 後에 일너 가라사대 이졔 大神明이 會集하엿스니 그 解散?헤는 慘酷한 膺懲이 잇스리라. 말삼을 맛치시자 문듯 泰仁邑 에서 群衆의 高喊소리가 나는지라. 從徒들이 先生을 모시고 山에서 나려와 事由를 探聞하니 辛 京玄의 酒店이 群衆의 襲擊을 바더 家 藏什物과 酒缸이 모다 破損無遺하엿더라. 元來 辛京玄이 酒業을 經 營함에 邑中 少年의 同情을 어더서 多益을 보앗더니 그 後로 少年 들이 窮乏하여짐에 京玄이 甚히 冷待하거늘 少年들이 그 無義함을 怒하야 이럿케 襲擊함이라. 翌日에 先生이 京玄의 집에 가시니 京 玄 夫妻가 號泣하며 他處로 옴기려 하거늘 先生이 일너 가라사대 元來 利害得失이 모두 自身에 잇고 位置에 잇지 아니하나니 이 後 로는 삼가하야 모든 사람에게 溫情을 베풀라. 그러면 前路가 펴이 고 營業이 다시 興旺하리라 하시니라.
35. 그 날 밤 손바래기앞 오 동팔의 주점에서 갑자기 우뢰같은 소리가 나더니 집이 저절로 무너졌으나 사람과 가축 그리고 집의 세간살이에는 아무 피 해가 없는지라. 오 동팔이 재목들을 다시 모아서 집을 지으려 하나 두 번 이나 거듭 전과 같이 무너지므로 할 수 없이 집 고치려는 것을 그만두고 천막을 치고 살고 있으니 하루는 어떤 사람이 지나가다가 그 모양을 보고 불쌍히 여겨서 스스로 나서더니 불과 서너시간 만에 집을 고쳐주고 품삯 도 요구하지 않고 가더라. 무릇 그 집 고치는 일은 보통 목수가 일해도 십 여일을 일 해야만 하는 공사이므로 이웃사람들은 그 일을 크게 이상하 게 생각하였으나 종도들은 모두 선생께서 태인 산중에서 하신 말씀을 생 각하여 오동팔이 화를 당한 것도 신명들이 해산 할 때의 응징이오, 다시 그 신기한 도움을 받은 것도 선생께서 불쌍히 여기시어 신장(神將)을 보 내시어 집을 고쳐주신 것이라고 생각하니라.原文: 그 날밤에 吳 東八의 酒店에는 ?밧게 우뢰갓흔 소리가 나며 집이 졔절로 드날녀서 ?밧게 顚覆되고 人蓄과 家産은 아모 傷害가 업는 지라. 東八이 材木을 收拾하야 집을 改築하다가 二回나 거듭 前과 갓치 顚覆됨으로 할 일 없이 工事를 中止하고 依幕을 치고 지내더 니 하로는 엇든 사람이 지내다가 그 景狀을 보고 矜惻히 녁여 自進 하야 겨우 三四時間을 費하야 집을 改築하여주고 賃金도 要求치 안 코 가니라. 大抵 그 改築에는 普通木工 十餘日 품을 要할 工事임으 로 이웃사람은 크게 異常히 녁이되 從徒들은 모다 泰仁 山上에서 말삼하신 일을 生覺하야 그 被禍한 것은 반다시 神明解散時의 膺懲 이오. 다시 그 神奇한 求助를 바든 것은 先生?서 矜惻히 녁이사 神將을 보내여 工作케 하심이라고 生覺하니라.
36. 항상 천지공사를 행하실 때 종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마음을 잘 닦아 앞 으로 오는 좋은 세상을 구경하라." 하시니 종도들이 하루바삐 그 세상이 오기를 바라더니 하루는 신 원일이 간청하여 말씀드리기를 "선생께서 천 지를 개벽하여 새 세상을 건설한다 하신 지가 이미 오래이며 공사를 행하 신 것도 여러 번인데 세상 돌아가는 것은 조금도 변함이 없사오니 제자의 의혹이 날로 깊어지나이다. 선생이시여 하루바삐 이 세상을 뒤집어서 신 선세계를 건설하시어 우리가 남들의 비웃음을 받지 않게 하시고 애달프게 기다리는 저희에게 권력과 부귀를 마음껏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거 늘 선생께서 일러 말씀 하시기를 "사람의 일에는 기회가 있고 하늘의 이 치에는 도수(度數)가 있으니 그 기회를 만들어 도수를 짜서 운용하고 변 화시키는 것이 마땅한 일 일 것이라. 이제 기회와 도수를 어기고 사사로 운 권한으로 억지로 일을 꾸미면 이것은 천하에 재앙을 끼치는 일이며 수 없는 생명을 빼앗는 일이 될 것이니 차마 할 일이 아니로다." 하시었으나 신 원일이 다시 고집하여 간청하기를 "현 세상이 혼란하고 도(道)가 없어 져서 선악을 가리기 어려우니 마땅히 빨리 멸망시키고 새 운수를 열으심 이 옳나이다." 하거늘 선생께서 매우 괴로워 하시더라.칠 월에 신 원일과 그 아래 종도 몇 명을 거느리시고 변산에 있는 개암사 (開巖寺)에 가시어 (원일에게 쇠머리 한 개와 술 한 병을 준비하라 명하 신 후 청수(淸水) 한 그릇을 방 한편에 놓으시고 쇠머리를 삶아 청수 앞 에 진설하신 뒤 그 앞에 원일을 무릎 꿇게 하시고 성냥 세 개비를 청수에 넣으시니 갑자기 비바람이 크게 일어 나는지라. 선생께서 원일에게 이르 시기를 "이제 청수 한 동이 물에 성냥 한 갑을 다 넣으면 천지가 물바다 가 될지라. 개벽이란 이렇게 쉬운 것이니 그리 알지어다. 만약 이것을 때 가 이르기 전에 쓰면 재앙만 끼칠 뿐이니라." 하시고) 손가락으로 물을 찍어서 부안에 있는 석교(石橋)를 향하여 뿌리시니 갑자기 그 쪽으로 구 름이 모여들어 큰비가 쏟아지고 개암사 부근은 청명하게 맑더라. 선생께서 원일에게 명하시어 "빨리 집에 갔다가 오라." 하시더니 원일이 명을 받들고 집에 돌아가 보니 그 아우의 집이 큰 비에 무너지고 그 가족 들은 자신의 집에 모여 있거늘 원일이 슬픈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곧 돌 아와서 선생께 그 일을 말씀 드리니 선생께서 일러 말씀하시기를 "개벽이 란 이렇게 쉬운 것이라. 이제 온 세상을 물바다로 만들어 모든 것이 물에 빠져 죽게 한 후에 우리만 살아 남아 있으면 무슨 복과 이득이 있으리오. 무릇 삶을 구제하고 세상을 보살펴 치료하는 일은 성인의 도법(道法)이며 백성에게 재앙을 주고 세상을 뒤집는 것은 제후들이나 영웅들의 술법(術 法)이라. 이제 천하가 영웅들과 제후들에게 괴로움을 당한 지 오래이니 이제 내가 상생(相生)의 도(道)로써 백성을 교화하고 세상을 다스리리니 새 세상을 보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마음을 고치기가 어려우니 너는 이제부터 마음을 잘 고치라. 큰 사람(大人)이 되는 공부를 하는 사람은 항상 남 살리기를 생각해야 하느니 어찌 수많은 생명을 죽여 멸망케하고 홀로 잘되기를 꾀함이 옳으리오." 하시니라. 원일이 이 일을 당한 후부터 두려워하여 무례한 말로 선생을 괴롭게 한 일을 뉘우치고 또 원일의 아우 는 원일이 선생을 따르고 난 후부터 집안일을 돌보지 않음을 미워하여 항 상 선생을 못 마땅하게 생각해 오더니 형으로부터 그 일에 대해 전해 듣 고 선생께 불경하게 대한 죄의 대가로 집이 무너져 부수어진 것이 아닌가 두려워하여 이로부터 마음을 고치니라.原文: 매양 天地公事를 行하실 새 모든 從徒다려 마음을 잘 닥거 압헤오 는 조흔 世上을 구경하라 하심으로 從徒들이 하로밧비 그 셰상이 이르기를 希望하더니 하로는 辛元一이 固請하여 가로대 先生?서 天地를 開闢하야 새 世上을 建設한다 하신 지가 임의 日久하오며 公事를 行하심도 累回를 經하엿스되 時代의 現狀은 少豪도 變改함 이 업사오니 弟子의 疑惑이 날로 滋甚하나이다. 先生이시여 하로밧 비 이世上을 뒤집어서 仙境을 建設하시와 남의 嘲笑를 一身에 注集 치 안케 하시고 애닯게 기다리는 우리에게 榮華를 주시옵소서 하거 늘 先生이 일너 가라사대 人事는 機會가 잇고 天理는 度數가 잇나 니 그 機會를 지으며 度數를 運化함이 當然한 일이라. 이졔 機會와 度數를 어기고 억지로 私權을 쓰면 이는 天下에 災를 ?침이며 億 兆의 生命을 ?앗음이니 참아 할 일이 아니니라 하시되 元一이 더 욱구지 請하여 가로되 方今天下가 混亂無道하야 善惡을 가리기 어 려우니 맛장히 速히 殄滅하고 새 운수를 열으심이 올흐니이다 하거 늘 先生이 괴로히 녁이사 七月에 元一과 밋 數三從徒를 다리고 邊 山 開巖寺에 가사 손가락으로 물을 ?어서 扶安 石橋를 向하야 ? 리시니 문듯 그 方面으로 구름이 모아들어 大雨注下하고 開巖寺 附 近은 晴朗하더라. 先生이 元一을 命하사 速히 집에 往還하라 하시 니 元一이 承命하고 집에 도라간즉 그 아우의 집이 大雨에 倒壞되 고 그 眷屬이 自己의 집에 모혀잇거늘 元一이 悲慘을 이긔지 못하 야 곳 도라와서 先生? 그 事由를 告白하니 先生이 일너 가라사대 開闢이란 이럿케 쉬운 것이라. 天下를 水國化하야 모든 것을 淪沒 케 하고 우리만사라 잇스면 무슨 福利가 되리오. 大抵 濟生醫世는 聖人의 道오. 災民革世는 雄伯의 術이라. 이졔 天下가 雄伯에게 괴 로운지 오랜지라. 내가 相生의 道로써 化民靖世하리니 새셰상을 보 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마음을 고치기가 어려우니 너는 이졔로부 터 마음을 잘 고치라. 大人을 공부하는 者는 恒常 남 살니기를 生 覺하여야 하나니 엇지 億兆를 死滅케하고 홀로 잘되기를 圖謀함이 올흐리오 하시니 元一이 이 일로부터 두려워하야 無禮한 言辭로 先 生? 괴롭게 한일을 뉘웃치고 元一의 아우는 그 兄이 先生? 追從 하고 家事를 돌보지 아니함을 뮈워하야 恒常 先生을 ?辱하더니 兄 으로 부터 이 事實을 듯고는 先生? ?辱한 罪의 報應으로 家屋이 倒壞됨이 아닌가하야 일로부터 마음을 고치니라.
37. 이 뒤에 고부 선돌에 있는 박 창국의 집에 이르시니 창국의 집 사람은 선생 의 누이동생이라. 마침 벗은 발로 밖에 다니는 것을 보고 민망히 여기시 어 말씀하시기를 "이 부근 도랑에 독사가 있으니 벗은 발로 다니다가 발 을 물리면 어찌하리오." 하시고 길게 휘파람을 부시니 갑자기 큰 독사 한 마리가 풀밭에서 기어 나와 뜰 밑에 이르러 머리를 들고 가만히 있더니 이때에 창국이 밖으로부터 들어오다가 독사를 보고 깜짝 놀라 곧 초상 당 하였을 때 짚는 지팡이로 때려 죽이니 (선생께서 이것을 보시고 말씀하시 기를 독사를 집안에 상 당한 사람이 보면 그 상장으로 때려 죽일 것이오. 도를 딱는 선승(禪僧)이 보면 그 선장으로 죽일 것이나 누이동생은 상장 도 선장도 없으니 무엇으로 독사를 제거하리오 하시고) 선생이 그 독사의 피가 땅에 떨어져 있음을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이 피를 벗은 발로 밟으 면 해를 입으리라." 하시고 친히 그 피흔적을 밟아 독기운을 없애시니라.原文: 그 後에 古阜 立石里 朴 昌國의 집에 이르시니 昌國의 妻는 先生의 親媒라. 마참 벗은 발로 밧게 다니는 것을 보시고 민망히 녁여 가 라사대 이 도랑에 毒蛇가 잇스니 벗은 발을 물면 엇지 하리요 하시 고 길게 휫바람을 부시니 문듯 큰 毒蛇 한 마리가 풀밧흐로부터 나 와서 ? 밋혜 이르러 머리를 들고 가만히 잇더니 이윽고 昌國이 밧 그로부터 들어오다가 毒蛇를 보고 大驚하야 곳 喪杖을 드러 打殺하 거늘 先生이 그 피가 ?에 잇슴을 보시고 가라사대 이 피를 벗은 발로 밟으면 害가 잇스리라 하시고 親히 그 血痕을 밟아 毒氣를 除 하시니라.
38. 을사(1905)년 섣달에 함열에서 구릿골로 가실 때 길이 진흙탕이 되어서 가시기가 어려우시자 선생께서 "길을 딱는 신장에게 명하노니 함라산 아 래 머무는 임금의 거처를 동곡으로 옮기리니 길을 예비하라. (勅令治道神 將 御在咸羅山下 移御于全州銅谷)" 하시는 글을 써서 불사르셔서 길 닦는 신장에게 치도령을 내리시니 질었던 길이 곧 얼어 붙어서 굳어지거늘 이 에 마른 신발로 길을 가시니라. 原文: 十二月에 咸悅에서 銅谷으로 가실 새 길이 심히 질어서 行路가 困 難한지라. 先生이 "御在咸羅山下"라 써서 불살으시니 泥路가 곳 어 러서 구더지거늘 이에 말은 신발로 登程하시니라.
39. 병오(1906)년 정월 초사흘날에 구릿골에 계실 때 여러 종도들에게 하루 낮과 밤 동안 말하는 것과 담배 피우는 것을 못하게 하시니라.原文: 丙午 正月 三日에 銅谷에 계실 새 여러 從徒에게 一晝夜동안 言語 와 吸煙을 禁하시니라.
40. 병오(1906)년 정월 (초사흘에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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