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순전경 제 9 장 화천(化天)
제 9 장 화천(化天)
9-1 무신년에 천사 여러 종도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내가 비록 죽을지라도 너희들이 마음을 변치 않고 믿겠느냐 대하여 가로대 어찌 변할 리가 있사오리까 천사 글 한귀를 외워 주시니 이러하나니라 「무어별시정약월(無語別時情若月) 유기래처신통조(有期來處信通潮)」
9-2 고부인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없으면 여덟가지 병으로 어떻게 고통하리오 그 중에 단독(丹毒)이 크리니 이제 그 독기를 제하리라 하시고 그 손등에 침을 바르시니라.
9-3 또 고부인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없으면 그 크나큰 세 살림을 어떻게 홀로 맡아서 처리하리요 하시니 고부인은 천사께서 어느 외처(外處)에 출입하겠다는 말씀으로 알았더라.
9-4 동짓달에 광찬이 개벽을 속히 붙이지 아니 하심에 불평을 품어 항상 좌석을 시끄럽게 하며 가로대 내가 집안 일을 돌보지 아니하고 여러해 동안 선생을 따르기는 하루바삐 새세상을 보자는 일이어늘 이렇게 시일만 천연(遷延)함에 집에 돌아가서 처자권속을 대할 낯이 없으니 차라리 스스로 생명을 끊음만 같지 못하다 하거늘 천사 일깨워 가라사대 개벽이란 것은 때와 기회가 있나니 마음을 눅혀 어린 짓을 버리라 사지종용(事之從容)도 자아유지(自我由之)하고 사지분란(事之紛亂)도 자아유지(自我由之)하나니 자방(子房)의 종용(從容)과 공명(孔明)의 정대(正大)를 본받으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죽는 일은 장차 내게 보라 하시니라.
9-5 기유년 이월에 자현을 데리고 김제 내주성 정남기의 집에 가사 일러 가라사대 이 길이 나의 마지막 길이니 처족(妻族)들을 낱낱이 찾으리라 하시며 등불을 들리시고 밤새도록 여러 집을 찾으신 뒤에 이튿날 새벽에 수각리 임상옥의 집에 가사 공사를 보시고 만경 삼거리에 이르사 쉬시며 가라사대 오늘 오후에 흰 무지개가 해를 꿰이리니 내가 잊어버리더라도 네가 잘 살펴보라 하시더니 과연 오후에 백홍(白虹)이 관일(貫日)하니라.
9-6 삼월에 자현에게 물어 가라사대 학질(?疾)로도 사람이 상하느냐 자현이 대하야 가로대 학질이 세즉차(次)에는 거적을 가지고 달려든다 하오니 이 말이 상한다는 말일 것이 외다 가라사대 진실로 그러하리라 하시고 전주로 가셨더니 그 뒤에 자현의 여든 살 된 조모가 문득 학질을 앓아 세즉되는 날 죽거늘 천사 돌아와서 가라사대 학질로 상한다함이 옳도다 하시고 만들어 놓은 널 안에 누우시며 가라사대 내몸에 맞는다 하시더니 그 뒤에 자현을 불러 일러 가라사대 널 한 벌을 만들어야 하겠으니 박춘경의 집에서 파는 관재 중에서 잘 맞을 것으로 가져오라 내가 장차 죽으리라 자현이 가로대 선생이시여 어찌 이런 상서롭지 못한 말씀을 하시나이까 천사 가라사대 네가 내 말을 믿지 아니 하는도다 하시니라.
9-7 하루는 종도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나의 얼굴을 잘 익혀두라 후일에 내가 출세 할 때에는 눈이 부시어 보기 어려우리라 또 가라사대 예로부터 신선이란 말을 전설로만 들어왔고 본 사람이 없었으나 오직 너희들은 신선을 보리라.
9-8 또 가라사대 사람의 죽음길이 먼 것이 아니라 문턱 밖이 곧 저승이니 나는 죽고 살기를 뜻대로 하노라.
9-9 또 가라사대 내가 금산사로 들어가서 불양답(佛養沓)이나 차지하리라.
9-10 하루는 종도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 세상이 너무 악하여 몸 둘곳이 없으므로 장차 깊이 숨으려 하노니 어디가 합당하리요 원일이 대하야 가로대 변산(邊山) 속에 은벽(隱僻)한 곳이 많으니 그곳으로 가사이다 한데 천사 대답치 아니하시니라
9-11 또 가라사대 내가 금산사로 들어가리니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사로 오라.
9-12 유월에 원일이 여쭈어 가로대 천하는 어느 때 정하려 하시나이까 가라사대 이제 천하를 도모하려 떠나리니 일을 다 본 뒤에 돌아오리라.
9-13 응종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없을 때에 네가 나를 보지 못하야 애통하며 이곳에 내왕하는 거동이 내 눈에 선연하게 보이노니 내가 네 등 뒤에 있어도 너는 보지 못할 것이요 내가 찾아야 서로 만나리라.
9-14 종도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이제 몸을 피하려 하노니 너희들이 능히 찾겠느냐 모두 대하야 가로대 찾겠나이다 가라사대 너희들은 나를 찾지 못할 것이오 내가 너희들을 찾아야 만나보게 되리라.
9-15 상말에 이제보니 수원(水原) 나그네라 하나니 누구인지 모르고 대하다가 다시 보니 낯이 익고 아는 사람이라는 말이니 낯을 잘 익혀두라.
9-16 또 가라사대 내가 장차 열 석자로 오리라.
9-17 유월 초 열흘께 모든 종도들에게 유월 스므 날 구릿골 약방으로 모이라고 통지를 발하시니라.
9-18 스므 날 여러 종도들이 구릿골에 모이니 천사 앞에 한줄로 꿀려 앉히시고 물어 가라사대 너희들이 나를 믿느냐 모두 대하여 가로대 믿나이다 가라사대 죽어도 믿겠느냐 모두 대하야 가로대 죽어도 믿겠나이다 또 가라사대 한 사람만 있어도 나의 일은 성립되리라 하시니 대개 종도들은 천하사를 도모(圖謀)하는 데 위지(危地)에 들어가서 죽게 될지라도 믿겠느냐는 뜻으로 알었더라.
9-19 천사 천지공사를 마치셨음을 종도들에게 성명(聲明)하시니 경학이 여쭈어 가로대 공사를 마치셨으면 나서시기를 바라나이다 가라사대 사람들이 없으므로 나서지 못하노라 경학이 가로대 내가 비록 무능하오나 몸이 달토록 두사람의 일을 대행하려 하나이다 가라사대 그렇게 되지 못하느니라 경학이 가로대 그러면 우리는 모두 쓸데없는 사람이 오니 선생을 따른들 무슨 소용이 있으리이까 하고 모든 종도들에게 일러 가로대 우리는 다 복없는 사람이니 함께 손잡고 물러감이 옳도다 하고 일어서서 문 밖으로 나가니 천사 드디어 누으사 여러 가지 병을 번갈어 앓으시며 가라사대 내가 이러한 모든 병을 대속하여 세계 창생으로 하여금 영원한 강령을 걷게하리라 하시더라 이렇게 모든 병을 두어시간씩 번갈어 앓으시되 매양 한가지 증수를 앓으신 뒤에는 문득 일어나 앉으사 약을 알았다 하시고 거울을 들어 얼굴을 이윽히 보시면 그 수척하고 열기가 떠올랐던 기상(氣象)이 씻은 듯이 곧 원기를 회복하시니 그 증수는 대략 운기(運氣) 상한(傷寒) 황달(黃疸) 내종(內腫) 호열자(虎列刺) 등속(等屬)이러라 다시 가라사대 세상에 있는 모든 병을 다 대속하였으나 오직 괴병(怪病)은 그대로 남겨두고 너희들에게 의통(醫統)을 전하리라 하시니라.
9-20 이 때에 돈 사십원을 궤속에 넣어 두시고 다른 곳에 쓰지 못하게 하시니라.
9-21 이 때에 갑칠에게 장령(將令)을 붙여 서양으로부터 우사(雨師)를 넘겨오신 뒤에 유찬명이 여쭈어 가로대 이러한 묘한 법을 세상 사람이 다 알지 못하니 원컨데 세상사람으로 하여금 널리 알게 하소서 천사 가라사대 너는 내가 길게 살기를 바라는 도다 하시고 옛 글을 외워 주시니 이러하니라 「치아곡문모하지(稚兒哭問母何之) 위도청산채채지(爲道靑山採菜遲) 일락서산인불견(日落西山人不見) 갱장하설답제아(更將何說答啼兒)」또 남원 양봉래(楊蓬萊)의 자만시(自挽詩)를 외워주시니 이러하니라「시중이백주중령(詩中李白酒中伶) 일거청산진적요(一去靑山盡寂寥) 우거강남양진사(又去江南楊進士) 자고방초우소소(鷓鴣芳草雨蕭蕭)」
9-22 스무 하룻 날 저녁에 송환으로 하여금 자현을 부르사 물어 가라사대 네가 나를 믿느냐 자현이 대하여 가로대 내가 만일 믿음이 부족할진대 고부화란(古阜禍亂)끝에 곧 배반하였을 것이외다 천사 가라사대 네 말이 옳도다 내가 이제 일이 있어서 장차 어디로 떠나려 하노니 돌아오도록 잘 믿고 있으라 만일 내 그늘을 벗어나면 죽으리라 자현이 청하여 가로대 내가 모시고 따라가려 하나이다 가라사대 너는 갈 곳이 못 되느니라.
9-23 스무이튿날 형렬을 불러 물어 가라사대 네가 나를 믿느냐 대하여 가로대 믿나이다 가라사대 성인의 말은 한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나니 옛적에 자사(子思)는 성인이라 위후(衛侯)에게 말하되 「약차불이(若此不已)면 국무유의(國無遺矣)」라하였으나 위후가 그 말을 쓰지 아니하였으므로 위국(衛國)이 참혹히 망하였나니 나의 말도 또한 땅에 떨어지지 아니할지니 오직 너는 나의 말을 믿으라 또 가라사대 믿는 자가 한 사람만 있어도 나의 일은 되리니 너는 알아서 할지어다.
9-24 또 형렬에게 물어 가라사대 네가 내 사무(事務)를 대신 보겠느냐 형렬이 대하여 가로대 재질(才質)이 둔(鈍)하고 배운 바 없사오니 어찌 능히 감당하리이까 가라사대 미유(未有) 학양자(學養子) 이후(以後)에 가자야(嫁者也)라 우순(虞舜)이 역산(歷山)에 밭갈고 뇌택(雷澤)에 고기잡고 하빈(河濱)에 질점할 때에 선기옥형(璿璣玉衡)을 알지 못하였나니 당국(當局)하면 아느니라.
9-25 또 형렬에게 일러 가라사대 모든 일에 삼가 무한유사지불명(無恨有司之不明)하라 마속(馬謖)은 공명의 친구로되 처사를 잘못하였으므로 휘루참지(揮淚斬之)하였느니라.
9-26 이달 초 열흘께부터 음식을 폐하고 소주(燒酒)만 마시시다가 스무 이튿날 형렬을 명하사 보리밥을 지어오라 하시니 곧 지어 올거늘 천사 보시고 가져다두라 하시더니 반나절을 지낸 뒤에 명하사 다시 가져오니 밥이 쉬었거늘 가라사대 이는 절록(絶祿)이니라 하시니라.
9-27 스무사흗날 오전에 여러 제자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 때가 바쁜지라 너희들중에 임술(壬戌)생으로서 누이나 딸이 있거든 수부(首婦)로 내 세우라 하시니 형렬이 대하여 가로대 수부는 저의 딸로 들여 세우겠나이다 가라사대 세수 시키고 빨은 옷은 가라입혀서 데려오라 하시니 형렬이 명하신대로 하여 그 딸을 약방으로 데려오거늘 천사 제자들로 하여금 약장을 방 한가운데로 옮겨 놓게 하신 뒤에 형렬의 딸을 명하사 약장 주위를 세 번 돌게 하신 뒤에 그 옆에 서게 하시고 경석을 명하사「대시태조(大時太祖) 출세(出世) 제왕(帝王) 장상(將相) 방백(方伯) 수령(守令) 창생점고(蒼生點考) 후비소(后妃所)」라는 글을 쓰게 하시니 경석이 받아씀에 후비소(后妃所)를 후비소(后?所)라 썼거늘 가라사대 잘 못썼다 하사 불사르시고 다시 쓰게 하사 약장에 붙이게 하신 뒤에 가라사대 이것이 예식이니 너희들이 증인이되라 하시고 형렬의 딸을 돌려보내신 다음에 경석으로 하여금 그 글을 거두어 불사르시니라.
9-28 이날 오후에 약방 마루 위에 누우셨다가 다시 뜰에 누시고 또 사립문 밖에 누셨다가 형렬에게 업혀서 형렬의 집에 가서 누셨다가 다시 약방으로 돌아오사 이렇게 네댓번 왕복하시니 형렬이 심히 피곤하거늘 경석이 가름하여 두어 번을 왕복한 뒤에 또 다섯 사람을 시켜 사지와 머리를 각기 붙들어 떠 메이고 약방으로 가서 누우사 가라사대 죽고 살기는 쉬우니 몸에 있는 정기(精氣)를 흩으면 죽고 모으면 사느니라 하시며 경석으로 하여금 「전라북도(全羅北道) 고부군(古阜郡) 우덕면(優德面) 객망리(客望里) 강일순서신사명(姜一淳西神司命)」이라 써서 불사르시니라
9-29 이날 밤에 공우를 침실로 불러들여 일러 가라사대 네 입술에 곤륜산을 달라 무진(戊辰) 동지(冬至)에 기두(起頭)하며 묻는 자가 있으리니 의통인패(醫統印牌) 한벌을 전하라 좋고 나머지가 너희들의 차지가 되리라.
9-30 스무 나흗날 신축 아침에 형렬을 명하사 밀수 한 그릇을 가져오라 하사 마시시고 사시(巳時)에 모든 종도들은 문 밖으로 물러가고 경석이 들어오거늘 흘겨 보시며 가라사대 정가 정가(鄭哥 鄭哥) 글도 무식하고 똑똑지도 못한 것이 무슨 정가냐 하시고 곧 화천(化天)하시니 단군기원 사천이백사십이년 이조(李朝)순종 융희삼년 서력기원 일천구백구년 팔월구일이라 수(壽)는 삼십 구세러라.
9-31 여러 종도들이 천사의 시체를 방안에 모시고 문을 닫고 나와서 탄식하여 가로대 허망한 일이로다 대인의 죽음이 어찌 이렇게 아무 이상이 없이 잠자는 것과 같으리오 하니 문득 비가 뿌리며 우뢰가 크게 일어나고 번개가 번쩍이더라.
9-32 이날 손바래기 본댁에 부고하여 천사의 부친을 모셔오고 궤안에 장치(藏置)한 돈으로 치상(治喪)해서 구릿골 앞 큰 골 장탯날 기슭에 외빈(外殯)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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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전경 삼간사(三刊辭)
1 대순(大巡) 오십삼년 임술년간에 내가 서울에 가서 공개포교할 때에 천사의 일대(一代) 언행을 수집하여 써 경전을 편찬하여 할 필요를 통감(痛感)하였었다 이에 차월곡(車月谷) 선생에게서 재료를 수집하기 시작하였으며 그 뒤 을축년에 김태운(金太雲) 선생을 만나 많은 재료를 얻었었다 그리하여 병인년 삼월에 두 선생에게서 얻은 재료를 수집해서 증산천사공사기(甑山天師公事記)라는 제호(題號)로 간행한 일이 있었다.
2 그 뒤로 계속하여 친자종도(親炙從徒) 여러분을 방문하며 천사께서 순유(巡遊)하시던 지대(地帶)를 답사하고 천사께 지면이 있던 촌로들을 역방(歷訪)함에 재료가 더욱 많이 수집되어서 대순 오십구년 기사(己巳) 삼월에 비로소 십삼장으로 분류 편찬한 국한문본 대순전경을 초간하게 되었었다 그러나 일제시대의 시휘(時諱)관계로 수집된 재료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재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기재된 부분 중에서도 삭제를 많이 당하였으므로 이로써 천사의 진체(眞諦)를 구명하기 어렵게 되었던 것은 만부득이(萬不得已)한 사정이었었다.
3 그 뒤에 교우들 중에서 국문본을 희망하는 분이 많으므로 대순 육십삼년 계유(癸酉) 칠월에 국문본으로 재간할 때 분류중에 문명(文明)과 인고문명(引古文明)과 이표(異表)를 다른 장으로 합쳐서 십장으로 줄이고 또 시휘에 크게 꺼리끼지 아니할 만한 재료를 더 증보(增補)하였으나 역시 중요한 재료는 기재할 수 없었음은 유감이 아닐 수 없었다
4 을유 해방으로 세태가 일변함에 언론 집회 출판 신앙 사대자유를 보장하는 세계정의의 은광아래서 수십년 동안 수집하여 두었던 모든 재료를 전부 망라하고 크게 정리를 행하여 분류 중에 유년시대와 유력 두 장을 합하여 유소시대라고 장명을 고치고 전부 구장에 분류하여 완편을 이루어 한자현역 국문본으로 삼판을 발행할 준비를 진행하여 오다가 이제야 비로소 간행하게 되었노라.
5 구년간 공사와 일대(一代) 성훈(聖訓) 중에서 근소한 수집에 지나지 못한다 할지나 갑진 을사 양년간 공사가 궐루(闕漏)된 이외에는 주요한 것이 거의 전부 수집되었으며 이제는 친자종도들도 오직 삼사인이 재세(在世)할 뿐이요 천사께 지면이 있던 촌로들도 거의 다 서세(逝世)하였음에 더 듣고 수집할 곳이 없게 되었으므로 이로써 대순전경의 완벽을 고하노니 이 전경이 우리의 유일한 신앙표본이 되는 동안 지아죄아(知我罪我)의 책임을 후세(後世) 영년(永年)에 지게 될 것을 특히 성명(聲明)하노라.
6 대순전경 한자제호는 순교(殉敎)동지 고 임경호씨의 필적으로 초판에 사용하였던 것을 인용하였노니 동지의 평소 정성과 순교대의를 이로써 영원히 기념코자 함이로다.
7 간행할 때마다 교우 동지들의 지성 협력을 감사하오며 이번 삼간에는 미증유의 물가등귀로 인하야 간행할 길이 막연하여 협력하신 여러 동지들의 후의를 저버리게 될까 염려하였더니 뜻밖에 남상기 유태효 양씨의 헌신적 노력과 김헌식씨의 특지(特志)적 알선(斡旋)으로 간행하게 되노라 이제 초간 이래 여러 동지들의 협력과 정성을 기념하기 위하여 만세성전이란 제호로써 여러 동지들의 성명을 기재하여 전하노니 대순전경이 후천 만세의 빛이 되는 동안 여러 동지들의 정성이 또한 만세의 공덕이 될 것 확신하는 바이로다.
대 순 칠 십 칠 년 십 이 월 이 십 이 일 저 자 식(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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