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삼 기초공사 장대곡1~6-화은당실기
제4장 삼 기초공사 장대곡
1.하루는 진지상을 올리고 예를 드리니 성부님께옵서 또 명령하시기를 “이곳으로부터 자리를 옮기도록 하라 옮아갈 기지는 성도에게 책임을 주었으니 그에게 가서 상의하라”고 하시더라.
이와 같이 명령이 내리신 날로부터 동리 인심이 돌변하고 관청 사람들이 찾아와서 공출관계라 하며 별별 수색을 다하니 마음을 놓을 수가 없는데 다행히 지하실은 발각됨이 없더라.
이러한 수색을 종종 당하는 동안 한 달이 남짓 하는데도 성도는 내왕간 흔적이 묘연함으로 그의 본가에 가보았더니 집에 없음으로 부인에게 물은즉 “집안아이가 동리 간에 수치스러운 일을 당하여 불의에 가화를 입게 되었으므로 주인은 사람이 보이지 않는 곳에 가서 은거하리라 하고 집을 나간 뒤로 소식이 없소이다.”라고 하니 하는 수 없이 수소문한 끝에 있을만한 곳을 짐작으로 찾아가보니 참으로 은벽한 곳에 빈집을 사서 홀로 거처하고 있는지라. 반가이 인사한 후 전후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상의하니 마치 이곳에 또 한집이 있으니, 그것을 사드리게 되면 부족한대로 우선 공사는 볼 수가 있으리라는 결론을 얻어 그 집을 살펴보니 수리하면 될 듯싶더라.
일이 이와 같이 됨에 둘이서 “전화위복이라더니 가화가 좋은 일로 변하였은즉, 이는 반드시 신명의 역사가 틀림이 없다”고 하면서 한바탕 웃고 나서 서로 기뻐하였는데,
선사를 모시고 영남으로 내려온 첫날밤에 기지는 두 곳이 있으나, 한곳은 너의 책임이라 히서던 말씀이 기억난다고 하며 성도는 회심의 미소를 거둘 줄 모르더라. 그길로 돌아와서 성고하니 속히 가서 땅굴을 파고 영상을 모시도록 하라고 하명지시 하시었다.
2.일꾼을 모아 데리고 사거 작업을 착수하게 하고 생각하건데 금성산은 기지가 대지일 뿐 아니라 장소도 넓직함으로 뒷날 일만 이천의 도덕군자를 길러낼 수 도 있고, 또한 산수경치와 반석정자가 천연의 풍치와 어울려 어디로 보아도 적지라고 할 수가 있는데, 그렇게 좋은 곳을 버리고 와서 새 터를 잡고 다시 지하실을 파야하며 또한 건물도 신축해야 될 것인, 답답한 가슴 가실 길이 없어 선사와 마주앉아 이리저리 원정하지 않을 수 없더라.
우리는 내일의 일도 모르는 채 오늘 일만 하고 보는 수밖에 도리가 없는지라 어찌 생각하면 부모님도 너무 과중하도록 복잡한 명령을 거듭하시는 것 같다고 하니 선사는 민망해 하면서 “당신이 그런 말을 아니해도 부모님 사업을 하기 위하여 고생이 된다는 생각으로 미안함을 금할 수가 없으며, 마음 놓고 잠잘 수도 없고, 천지 만물이 모두 음양의 이치로 사는데 우리는 부부간이라 하지마는 음양행사도 저버리고, 삼십시절부터 죽기로 결심하여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금까지 나왔으니 사람으로서 차마 하기 어려운 노릇이 아닐 수 없었지만, 한편으로 생각해 볼진대 우리가 그렇게 지성으로만 나왔기에 그 지성됨이 하늘과 땅에 응감되어 천지부판 이후로 천상의 대 신장들이 다투다 우리를 돕기 위하여 계속하여 하강하시게 되었던 것으로, 이는 오직 우리 양인의 결심과 인내의 소치라 할 수 있는바 이 마음을 꾸준하게 지켜서 공사를 진행시킨다면 우리의 원한을 풀 날도 있을 것 아니냐”고 위로하여 주시더라.
그날 저녁 진지상을 올리고 예를 드리니 성모님께서 하강하시와 꾸짖어 말씀하시되 “죽일 년 놈들이 이마를 맞대고 않아서 무슨 잡된 말을 주고 받었느냐 어서 바삐 아버님께서 하명하신 대로 시행하도록 하라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너희들을 죽이지는 않을 터이니 더욱 마음을 굳게 먹고 공사를 봉행하되 부모를 원망하지 말라 입을 잘못 놀리면 천지신명으로부터 벌을 받으리라 입은 화복지문이라 조심하고 주의할 지니라” 하시더라
성부님 재세시 말씀대로 “말대로 되리라” 하신 구절이 황송함을 금할 수 없었다.
3.을유년 정월 이십일 장대골 지하궁전의 역사를 하고 있는데 금성골로부터 식구 한사람이 급히 달려와서 보고하기를 간밤에 식모인 경주의 처가 종적을 감추었다는 것이다.
뜻밖의 소식에 모두 일손을 거두고 한자리에 모여 앉아 걱정을 하는 가운데 정사는 기가 막혀 눈물을 흘리며 그곳에서 역사에 종사하고 있던 경주를 향하여 어서 속히 금성으로 가보자고 했더니, 경주는 “너무 염려마시오 그가 그동안 곤란 중에 천지 사를 받들어 나오다가 그만 지쳐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서 도망했다면 그도 또한 어찌할 수가 없는 노릇이며, 저로 말하면 방금 일각을 다투는 천지 사에 몸을 받치고 있는 처지로서 이곳을 떠날 수가 없으니, 형님께서나 다녀오시도록 하시오”하며 작업장소인 땅속 굴 안으로 들어가더라.
이에 정사는 하는 수 없이 혼자서 눈길을 급하게 재촉하여 금성에 돌아가 보니, 선사를 비롯하여 가족 일동이 모여 앉아 종적을 감추어버린 식모의 안위를 몰라 눈물을 머금고 걱정하고 있더라. 더욱이 선사께서는 상계동 이래로 하루같이 선사를 받들어 온 그와 깊은 정이 들어 있었기에 어찌할 줄을 몰라 하시면서, 그의 방에 가서 잘 살펴본 결과 집을 떠나면서 남긴 편지 한 장을 발견할 수 있어 내용을 읽어보니, 실로 피가 맺히는 지극정성으로 얽힌 사연이다.
사연인즉 그동안 식구들이 천사님 옥체를 찾아 봉안하고자 수차에 걸쳐 전라도에 갔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여 황송하고 원통한 심정 금할 길이 없어서, 앞으로 일년을 기약하고 대흥리 차교주네 집에 식모로 들어가서 옥체의 비장 처를 알아낼 계획으로 비장한 각오아래 집을 떠나게 되었으며, 여비는 며칠 전에 이곳에 왔던 친척에게 이십원을 빌려서 떠나가니 집에서 갚아주라는 것이다. 그리고 정읍까지 가는 동안에 먹을 것으로는 솔잎가루 두되를 지니고 가니, 안심하라고도 하였더라.
그 어떠한 일개 부녀자의 가슴속에 솟구쳐오는 그 정성, 신앙을 위해서는 그 어떠한 고난도 박차고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그 진심, 모두가 성부 성모님을 받드는 혈심이 아니고서는 어찌 감히 그런 계획을 세울 수가 있었으랴.
그리고 엄동설한에 홑옷을 걸친 채 고무신마저 없이 온 집안 식구가 정사가 친히 삼아내는 짚신으로 근근이 걸어 다니는 처지에, 차표마저 여행증명 없이는 도저히 살 수 없는 형편인데, 천리 길을 떠난 것을 생각할 때에 비통한 심정 울음이 나며 목적지까지 가지도 못한 채 도중에서 무슨 변을 당할 것만 같아서 그대로는 보낼 수가 없는 노릇이라.
그날로 정사는 집을 떠나서 아무래도 대구 이상은 가지 못하였으리라고 생각되어 대구를 중심으로 찾아보기로 마음을 세웠으나, 기차 편이 여의치 않아 도중에서 일박하고 다음날 아침에 대구에 도착하여 아무리 보아도 눈에 띄지 않는지라 하는 수 없이 하룻밤을 그곳에서 유숙하고 날이 밝은 즉시로 다시 역에 나가서 찾아보았다.
역에는 수일을 두고도 차표를 구하지 못하여 대합실 안에서 밤을 세우는 사람들도 많았건만 도무지 찾아낼 길이 없어 대합실 밖에 나와 하늘을 우러러 심고하고 나서 다시 들어가 두루 살피는데, 마침 식모가 표를 사보려고 했음인지 매표구 앞에서 서성거리다 그편에서 먼저 보고 고개를 숙여 감추려들었던 것을 식모의 머리는 평소에 정배기에 뻣센 머리가 나서 언제고 새집을 이루고 있었던 고로, 그 머리 모양이 눈에 띄인 지라 정사는 혹시나 하고 사람을 헤치고 나가 그의 앞에 서서보니 식모였다. 피차에 가슴이 북받쳐 말도 하지를 못한 채 정사 앞장을 서니 식모는 뒤를 따라 역 밖으로 나오니라.
정사는 식모를 데리고 식당으로 가서 우선 따뜻한 물을 마시게 한 다음 밥을 먹이고 그대의 혈심에서 우러나온 지성은 실로 놀라와 천지신명이 감동하리라고 칭찬하고 나서 그러나 엄동설한에 시국도 흉흉한데 여자의 몸으로 홀로 그러한 대사를 도모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위로하고 그동안의 경과를 물어 보았더니, 식모는 피곤하고 느껴운 마음에 겨우 입을 열어 대답하되, 첫날 대구에 와서 솔잎가루를 먹고 수도에 가서 찬물을 한 모금 마시고 나서 대합실에 앉아 밤을 세우는데, 새벽녘이 되어 몸이 몹시 떨려오고 온 몸이 자근자근 쑤셔서 견딜 수가 없어서 그대로 있다가는 큰일난다고 자기를 따라 오라고 하면서 어느 집으로 안내하더니 그 집의 안주인을 보고 자기가 회계를 할 터이니 이 부인을 따뜻한 방에 잘 수 있도록 하고 내일 아침밥을 지어드리라고 하여 덕분에 죽음을 면하였는데, 그 집에는 마침 아이들과 부인 혼자뿐이기에 여러 가지로 친절한 구호를 받고 나와, 차표를 사보려고 매표구 앞에 서성거렸던 것이라고 하니라.
정사는 식모와 더불어 그 집을 찾아가서 감사의 뜻을 표하고 그날 밤은 옛 친우 남재후의 집에 찾아가서 머물렀다.
이튿날 일찍 일어나니 함박꽃 같은 눈이 쏟아져 내리는지라 곧 행장을 차려 역에 나가보니 의성행 기차표를 며칠을 앞두고 구할 길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집을 떠날 때 겨우 대구까지의 내왕 차비밖에 준비하지 아니한 터에 만일 며칠을 머뭇거리다가는 식구들이 이번에는 정사를 찾아 나올 것이 분명하니 만일 그렇게 되면 여러 가지 혼란을 면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도보로 팔공산을 넘어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이내 길을 떠나서 보행으로 산길을 가자하니 설중에 태산 길을 부녀자를 데리고 엇지 가리.
소복하게 쌓인 눈에 길은 지워져 알 길이 없고, 산비탈은 빙판이 졌는데 그 위에 눈이 쌓였으니 미끄럽기 그지없어 이리저리 나뭇가지를 헤치며 짐작대로 걸어서 올라간 산상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살펴보니, 손과 발은 나무가시에 이러 저리 흘켜서 핏줄이 돋았고 온몸에는 땀이 나서 옷은 온통 젖었는데 식모가 신은 짚신은 이미 신날이 떨어져 있었다.
두 사람은 식모가 지닌 솔잎가루를 입에 털어 넣고 흰 눈을 집어서 먹은 후에 다시 걸어 화본역에 다다르니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시장 끼가 들어 요기를 하려해도 음식을 파는 집마저 없는 한촌이라 하는 수 없이 길가에 있는 집의 머슴사랑을 찾아가 몸을 녹이게 하고 정사는 그의 짚신을 고쳐준 다음 역에 나가 의성으로 내려가는 차표를 구하고자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아 망서리다 말고 사무실에 들어가 교섭이라도 해보려고 문을 열고 들어서니 마침 거기 아는 역부가 있었는지라. 간신히 탑리까지 표를 구하여 기차에 올랐는데 금성에 도착하여보니 밤 열두시가 지났더라
선사는 식모를 얼싸안고 하늘을 부르고 땅을 치면서 “어이 살아 왔느냐. 홑옷을 입은 채 어이 이 추운 겨울날을 견디다 왔느냐”하시면서 통곡 하시니 모든 가족이 따라서 통곡하는지라. 마치 초상난 집과 같더라.
중궁에 들어가 눈물로 예를 드리고 경과사를 보고하니 운장상제가 하강하시어 식모로 하여금 천사님의 수양딸로 치부 법문 하노라 외치시매 그 뒤로 모든 식구들이 그대로 받들더라.
4.그 뒤로 열심히 일하였으나 인적이 드문 골짝에서 사람의 눈을 피해가며 진행시켜야 하는 지하실 축조 공사인지라 아무래도 장구한 시일이 걸리지 않을 수 없었는데 동리 인심은 점점 사나워지고 여러 가지 명목의 수색과 조사를 종종 당하는 고로 행여나 발각될까 두려운 마음에 일체 부과금이며 각종공출도 언제나 다른 사람에 앞서 그 책임을 감당하자니 너무나 곤란한 형편에 그 고초가 얼마나 어려웠으랴.
신명의 도우심과 식구들의 일편단심으로 별 탈 없이 그 해를 경과하고 을유년을 당하여 이월달이 되어서야 장대골에 영상을 이안하여 우선 지하성전 시설만을 옮길 수가 있게 되었으며, 경주 형제와 그 가족은 농막을 지키면서 금성골에서 한해를 더 살게 되었다.
장대골로 이사하던 조금 앞서 하루는 정자집 주인 이 선생이 정사를 청하기로 가서보니 “구암은 사방에서 말하기를 무슨 딴 사상을 지니고 은밀한 가운데 무엇인가를 모책하고 있다는 풍설이 떠돌아서 사직당국에까지 그 소문이 들어가 수차 구속한다고 순사부장이 나에게 말하기에 내가 만류해서 구암 신분은 보증하겠다고 하여 나오는 중인데, 시국은 험로일방으로 기울어지고 있는 차제에 사상가로 지목되면 무조건 투옥할 뿐 아리라 극형을 면하기 어려운 것이니 피신하는 좋을 것이라”고 통정해 주더라.
이에 정사는 일신을 보호하여 주고 보증하여 준데 대하여 극구 감사의 뜻을 표한 뒤에 “그렇지 않아도 이런 점 저런 점을 짐작하여 이미 내부로는 다른 곳으로 이사할 계획을 세워 거의 준비가 다 되었으며, 이곳에는 농사를 돌볼 사람만 둘 작정을 하고 있다”고 말하니 이 선생은 “구암은 본래 보통사람이 아니라고는 보아 왔지만, 잘 생각하였다고 하면서 부디 조심하여 성공토록 하라”고 부탁하듯 격려해 주시니라.
그 동안 몇 해 동안을 넓은 덕을 입어 험악한 세상에 숨어서 사는 위험한 일에 무사하게 지내왔음은 오직 하늘의 도움이라 생각하며, 선생의 덕은 우리 형제자매의 가슴에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이며, 또한 장차 성공한 뒤에는 이곳은 천추에 길이 빛날 기념지가 될 것이라고 거듭 감사의 뜻을 표하고 이 선생댁을 하질 할 때 가슴 따사로이 감동 되어옴을 금 할길 없더라.
돌아와서 저녁 진지상을 올리고 예를 드리니 성부님께옵서 하강하시어 말씀하시되 “정자집 주인 영감의 공은은 천추에 잊지를 말라 그 영감이 아니었다면 이곳에 와서 경영한 일체 사업을 진행시킬 수 없었으리라. 전주로부터 경상도에 옮아오자고 할 때에 내가 이미 그 노인에게 기운을 붙여 두었던 것이니라 그럼으로 그 노인은 또한 현현한 천지공사의 일환을 담당한 후천 조화세계 건설의 역군이라고 하시니라.
성부님의 이와 같은 가르침의 말씀을 상고하고 우리 교의 육기초 공사 진행상에 있어서의 이선생의 업적을 생각할 때, 그의 공은 실로 천추에 빛날 것이다. 우리 교중 형제는 누구라도 그의 은공을 잊어서는 아니 될 지며, 우리 모두 그의 노후 기력 더욱 강령함을 기원해 마지않을 지니라.
5.어느 날 성부님이 계시의 말씀이 또 내리시되 “장대골 기지가 썩 좋다 앞으로 너희들이 기초 사업을 다 끝마친 다음 일차 산운 영감에게 다녀오도록 하라”고 하시니라.
우리가 금성골에서 공사를 봉행할 무렵 금성산에서는 밤마다 무슨 주문 읽는 소리가 그칠 사이가 없었으며, 어느 때는 수천명의 군중이 모여 부르는 듯 거창한 만세소리가 스무 나흘동안 새벽마다 공중으로부터 들려왔으며 그 거창한 만세소리는 좌우 산천에 드높았던지라. 무슨 이유인지를 모르고 겁을 먹은 근동의 사람들은 물론이요 도 군청 까지 그 소문이 파급되어 산중에서 일어나는 그 알지 못할 만세성의 원을 해명하고자 청년을 모아 산속을 샅샅이 뒤졌으나 산 속에는 아무런 흔적도 없는데 공중에서는 여전히 만세성이 진동해오므로 의아스럽게 생각하면서도 아마 천지신명이 그리하시나 보다고 하면서 모두 해산하고 그만둔 일도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이사한 뒤로 일체 그런 소리가 나지 아니하니 동리사람들은 구암이 천지신명을 데리고 어디론가 떠나고 나니 이와 같이 고요해졌노라고 말하면서 서로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장대골에서 계속 내리시는 현묘한 명령 계시를 준행하여 제반공사를 진행시켜 나가던 중 하루는 거차가 좁다 하시며 밭전자 형의 집을 불일내로 성축토록 하라는 명령이 계시므로 모든 식구들은 합심하여 일개월 내에 새로운 집을 설계하고 지었더니라.
6.을유년 삼월 초이튿날 중궁에 진지상을 올리고 예를 드리니 성모께서 합장하시와 명령하시되 “너희들이 백일을 울고 나니, 사방에서 군인으로 보내고 노무자(보국대)로 뽑혀 떠난다고 역마다 통곡소리가 나고 마을에도 울음소리 드높을 뿐이로구나” 하시면서 “그러나 너희들은 이미 눈물을 거두고 춤추고 노래부르게 되었으니 세상 형편도 머지않아 너희들 따라 변하리니, 이제 다시 노래를 지어 부르되 이번에는 너희들이 서로 만난 뒤로부터의 자초지정을 작사하여 노래 부르며 그 가락에 맞추에 더욱 흥겹게 춤을 추도록 하라”고 하시니라. 이에 정사는 그날 밤으로 작사하여 이튿날인 삼월 삼진날 치성에 명령과 같이 행사하니 그 가사 내용은 다음과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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