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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이 법종교에 전하신 두가지 문서

상제님이 법종교에 전하신 두가지 문서 4

도생광장  해새 해새님의 글모음 쪽지 2016-05-30 16:18 5,645
법종교에는 상제님으로부터 전해진 두가지 문서가 있습니다. 익히 아시다시피 유서(遺書)와 중화집(中和集)입니다. 두 문서 모두 수령인이 화은당 선사님(순임舜任)으로 되어 있는데 (<-- 이 부분은 오류가 있어 보임) 전해지는 날짜까지 문서에 정확하게 명시되어 있음으로써 신비함을 더하고 있지요.

그동안 이 두 문서가 전해진 상세내역에 대해 제 개인적으로 다소 불명확하게 알고 있었던 차에 오늘 맘 먹고 정리해보았습니다. 정리를 하다보니 새롭게 와닿는 소소한 감상들이 있어 이 또한 공유해보고자 합니다.

상제님 유서

상제님 유서가 전해진 날짜는 1947년 4월 8일(양5.27)이며 당시는 법종교가 5기초 때로서 금평저수지로 수몰되기 전 동곡마을에 있을 때였습니다. 전 그동안 삼청전 미륵불이 봉안되던 날인줄 알고 있었네요. ㅎㅎ;

참고로 삼청전 미륵불 봉안일은 6기초 때이고 1949년 12월 26일(양1950.2.12) 재생신기념일이었습니다. 이 해 정월 20일 6기초 오리알터 개기식이 있었고 3월 3일 기념일에 중화집과 인장 등이 전해지지요. 좀 있다 더 상세하게 안내하겠습니다.

1947년 음력 4월 8일, 즉 사월초파일 치성에 상제님의 유서가 극적으로 화은당 선사님께 전해지는데 화은당실기에서 이 부분을 인용하겠습니다.

정해년 삼월 삼일 기념치성을 봉행하니 성부 성모님께서 하명하여 말씀하시기를 “사월 초파일에는 성전에 영상을 모시고 식을 거행토록 하라 만일 그렇지 못하면은 너희들은 죽으리라.”고 하시더라. 이때부터 모든 식구가 합심하여 주야로 일을 하였으나 그래도 문은 미처 달지 못한 채 포장을 치고 팔일 오전 아홉시에 봉안식을 올리니 모든 식구들의 통곡소리 언제까지나 그칠 줄을 모르더라. 이날 화천하신 기념지에 명령대로 열석자의 성상을 비롯한 제위 영상을 모실 때까지에 겪은 형제들의 너무나 심한 고초를 회상하여 선사님은 단장의 애통을 금할 길 없어 얻드려 심고하기를 “아버님 신앙하는 사람들에게 소원 성취 주옵소서”하고 호소하는데 성부님의 생존 제자이신 김자현의 자제 김태진 김태준 형제가 찾아와서 상상 앞에 유서를 내놓고 간을 올리고 통곡하더라. 유서의 내역을 물으니 “김형렬씨가 종재 자현에게 맞겨주면서 후일 부합되는 곳에 전하라 하였는데 그 후 형렬님은 타개하시고 자현씨 또한 못전하고 임종시에 태준, 태진 형제분에게 맞기시며 후일 동곡에 불상을 모시는 곳이 있으면 그곳에 전하라 하시어 지금까지 부합되는 곳이 없어 간직하고 행여 전할 곳이 없을가 하여 부모님의 유교를 실행치 못하여 죄송한 마음 금할 수 없던차 이곳에 기지를 정하는 날부터 유심히 바라보고 오늘에야 전하니 마음이 가벼우며 또 슬픈 눈물을 흘리더라. 혹 자기 조작이 아닌가 하고 여러 가지를 살펴본즉 그들이 하는 말이 “이 글은 조금도 우리의 조작이 아님을 원문에서 상고하시오. 추호라도 부합처가 아니면 내놓지 말라고 하셨노라”고 하더라.
http://jsbeob.com/_study/?cId=405
정리하면 성부 성모님의 하명에 따라 이 날(음4.8) 성전에 상제님의 영상을 모셨다고 했는데 아마 이 영상은 현재 천하전에 모셔져 있는 영상이 아닌가 합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실제 미륵불상은 2년 후 6기초로 기지를 옮긴 후에야 삼청전에 모셔지게 되지요.

참고로 상제님의 영상은 해방 전 1944년 연초에 지하 옥경대에 봉안하였다가 이듬해 1945년 해방 이후 9월 19일 탄강절에 13자 영상으로 다시 조성하게 되는데 이 영상이 현재 천하전에 모셔진 영상이 아닌가 합니다. '증산법종교60년사'에서 관련 연혁을 소개합니다. (http://jsbeob.com/_jsbeob/?sePage=%EB%B2%95%EC%A2%85%EA%B5%90+%EC%97%B0%ED%98%81&year=1945) 이 연혁에서 특기할만한 내용은 [7월 5일 : 경주 단석산에서 해방을 위한 대치성 봉행] 이란 대목입니다. 해방일인 1945년 8월 15일은 음력으로 7월 8일인데 그 직전 3일 전(양8.12)에 해방을 위한 대치성을 봉행한 거죠. 사실 법종교의 연혁 다시 말해 화은당 선사님이 행하셨던 행적을 상세히 밝히다 보면 이러한 일들이 허다합니다. 물론 이러한 행적은 철저하게 상제님(혹은 정씨대모님)의 친명을 받들어 이루어졌습니다.

성부 성모님께서 이러한 상제님의 영상을 정해년 4월 8일에 모시고 식을 거행케 하셨다는 의미는 상제님이 곧 미륵불이라는 대명제를 재천명한 의미라고 봅니다. 유서를 전한 김자현 종도의 자제 김태진, 김태준 형제도 "후일 동곡에 불상을 모시는 곳이 있으면 그곳에 전하라"는 부친의 말씀을 받들기 위해서 이 날 찾아왔다고 하였던 바, 그들 역시 상제님의 영상을 (미륵)불상으로 인지하였다고 볼 수 있고요.
 
이 날의 일간은 병오(丙午)이며 유서의 병오현불상(丙午現佛像)이란 구절을 스스로 실증한 대목이라 하겠습니다. 참고로 상제님의 탄강일인 1871년 9월 19일의 일간 역시 병오일이었고 상제님의 부친도 병오생이셨습니다. 병오는 천간과 지지가 모두 불기운(火)으로서 물상으로 보자면 태양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는 바, 이는 곧 미륵불의 광명본체와 부합하며 더 나아가서는 미륵의 어원인 태양신 미트라와도 연결이 된다고 봅니다. 이에 관한 심도깊은 연구가 훗날 꼭 진행될 수 있길 바랍니다. 이에 관해 간략하게 언급했던 글이 있으니 소개합니다. http://jsbeob.com/_ort/?cId=9074 (삼청전에 있는 태양신의 심볼 솔라 크로스)

丁亥四月八日丙午 銅谷舜任信傳
정해사월팔일병오 동곡순임신전
- 유서 마지막 구절 ('동곡순임신전'은 원문에 없을 가능성이 있어 별도처리)
상제님의 유서가 전해진 1947년은 정해(丁亥)년입니다. 정(丁)은 불이고 해(亥)는 물입니다. 물 위에 불이 떠 있는 형상입니다. 다만 양이 아니라 음인지라 드러난 물과 불이 아니라 숨어 있는 물과 불이라고 볼 수 있는데 당시 상제님의 영상이 세워진 5기초 자리는 훗날 저수지로 바뀌고 상제님의 영상은 나중에 6기초로 기지를 옮긴 후에 실제 미륵불로 드러나게 되니 숨어 있는 물 위에 떠 있는 숨어 있는 불이라는 의미와 맥락이 통한다 하겠습니다.

중화집

중화집은 1949년 6기초 시대가 열린 후 3월 3일 기념치성에 전해집니다. 화은당실기의 관련대목을 인용합니다.

삼월 삼일 기념치성을 올린 다음 미리 당부하신 바 있어 각 기관장을 청하여 대접하고 있자니 밖에서 웬 백발노인이 찾는다고 하여 나가보니 곽봉훈(郭鳳勳) 노장이라. 그는 불교학자로서 수년 전에 금산사 강원(講院)에서 불자(佛者)들을 기른 일이 있는 팔십 노구로서 전부터 지면이 약간 있었는데 무엇인지 책보에 싼 것을 내 놓으며 “이것이 내가 금산사에서 강을 할 때에 어느 날 김응종(金應鍾)이란 사람이 증산선생의 유적이라고 하면서 맡기고 간뒤 다시 찾아오지 않으므로 지금까지 두루 찾아보아도 만날 수가 없는데 오늘 전하지 않으면 안 될 사정이 있어 하는 수 없이 이곳에 전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되어 왔습니니다.”라고 하더라.
이에 정사는 그것을 받아서 들고 안에 들어가 여러 사람 앞에서 내력을 말하고 하도 모략이 많은 세상이라 혹 무슨 계략이나 있지 않나 염려되기도 하여 여러 사람의 입회하에 열어서 보기로 결정하고 성전에 들어가 열어보니 두 권의 책과 인장(印章)이 들어 있어, 한권에는 중화집(中和集)이라 한자로 쓰여있었고 또 한 권은 전자(篆字)체로 된 친필집이였으며 인장갑안에 쓰여 있는 글은 “陰年土 陽月土 干支看 三吉日 重陽金日 舜任 信傳 銅谷”이었다.
이날이 기축 삼월 초삼일 간지(干支)와 일진(日辰)이 부합되어 너무나도 신기한 일에 모두 어안이 벙벙하여 어쩔 줄을 모르다가 이일은 교중 형제들만이 알 일이 아니라하여 대접 중이던 손님들과 봉훈장을 성전으로 창하여 이 사실을 공개하니 모두 감탄하여 마지않더라. 봉운장은 그 자리에서 증언하기를 “십팔년 전에 김응종이라는 노인이 유저(遺著)와 인장을 가지고 와서 잘 읽어 새겨보라 하고 간뒤 다시 찾아오지 않으므로 인장갑속의 글을 보니 기축삼월 삼일에는 어디에고 전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생각하여 다만 구암에 관한 이야기만 듣고 찾아왔는데, 의외에도 이곳에 증산선생의 따님이 계시고 그의 이름이 “순임”이라 하니 정법(正法)이 아니고는 이럴 수가 없다 하더라. 봉운장은 유소시로부터 불경을 읽은 유명한 학승으로 그때 나이 이미 팔십사세였으나 어느 절에고 찾아 들면 우대를 받든 터인데 그날의 일이 인연이 되어 그 뒤로 본교에 계시게 되니라.
1년전 1948년(5기초) 2월 27일 상제님의 체백을 27년만에 찾아 오시고 그 해 3월 3일 성부님 옥체 봉안식을 거행하신 후 10월에 오리알터(현 6기초터)를 구입하시고 이듬해(1949) 3월 3일 중화집(및 인장)이 전해진 거지요.

그리고 상제님의 하명에 따라 그해(1949) 3월 15일 천지장사식을 거행하시고 현 오리알터 영대에 상제님과 정씨대모님의 체백이 모셔지게 됩니다.

이월 십오일 성부께서 하명하여 말씀하시되 “오는 삼월 십오일에 장례식을 거행하도록 하라. 오리알터는 나와 너의 어머니의 영원한 안장지니라. 이날에는 장례라 하지 말고 장사라 하여라. 이날 장사는 천하장사 지하장사 인간장사 천지대장사니라.” 하시니라.
- 화은당실기 중
그리고 이 해 6월 24일 화천기념일날 삼청전 미륵불상을 조상하기 시작하여 12월 26일 재생신기념일에 불상봉안식을 거행하게 되니 이는 상제님께서 남기신 글귀 중에 "십이월이십육일재생신(十二月二十六日再生身)"이란 말씀을 그대로 이루신 것이라 하겠습니다. 화은당실기에 이에 대한 상세한 내역이 나옵니다. (http://jsbeob.com/_study/?cId=406) 그리고 다른 글귀에 보면 "증산 강일순 재생신"이란 구절도 있는 바, 이때 재생신의 주체는 증산상제님이심을 명확하게 밝혀주셨다고 봅니다.

즉 이미 언급하였듯이 1947년 4월 8일에는 상제님의 영상으로 미륵불을 삼고 1949년 12월 26일에는 미륵불로 (증산상제님)재생신을 이루셨으니 증산상제님이 곧 미륵불이요, 미륵불이 곧 증산상제님이란 대명제를 이로써 재천명하셨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정리하겠습니다.

5기초
1947년 4월 8일 - 상제님 영상 봉안식 때 상제님의 유서 전달 받으심
1948년 2월 27일 - 27년만에 상제님 체백 찾아 오심
6기초
1949년 1월 20일 - 6기초 개기식
1949년 3월 3일 - 중화집 및 인장 전달 받으심
1949년 3월 15일 - 천지장사식. 성부 성모님 오리알터 안장
1949년 6월 24일 - 화천절. 삼청전 미륵불상 조상
1949년 12월 26일 - 재생신기념일. 삼청전 미륵불상 봉안
화송 쪽지 2016-05-30 22:39
잘 읽었습니다.
증산천하 쪽지 2016-06-01 22:55
법종교 후손 되시는 분들은 살아 오시는 동안 옛날 이야기 듣듯이 들으신 분들도 계시겠지요.
그러나 외부에서 온 도생들은
연대를 일일이 계산해 가며 읽으신 분들이 많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영상봉안과 미륵불 봉안식 년대를 따로 떼어 생각 하기 쉽지 않으셨을 텐데 상세한 설명이 넘 좋습니다~
한국 근대사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그에 앞서 대치성을 치르신 일은 어느 종단에서도 볼 수 없고 있을 수 도 없는
공사 입니다.
오직 선사님께서만이 가능 하셨던 이적과도 같은 일이지요.
다시 한 번 가슴이 뜨거워 짐을 느낍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해새 쪽지 2016-06-01 23:42
증산천하 증산천하님의 세심한 감상글에 감사드립니다^^

낮에 사무실로 전화하신 분께도 했던 얘기지만 법종교의 역사는 천지공사의 숨은 엑기스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는 이를 제대로 컨텐츠화할 날이 오겠지요.
해새 쪽지 2018-03-07 21:16
유서와 중화집이 법종교에 전해진 과정에 관한 묘사 중 오류의 가능성이 있는 부분 별도 표기했습니다.

1. 상제님 유서에 "동곡순임신전" 문구 없을 가능성
2. “陰年土 陽月土 干支看 三吉日 重陽金日 舜任 信傳 銅谷” 이란 문구, 중화집이 아니라 중화집과 함께 전해진 인장갑에 쓰여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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