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산법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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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부인 신정기-1

고부인 신정기-1

경전 및 도서  화송 화송님의 글모음 쪽지 2015-06-03 03:06 9,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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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 릿 말
 

증산천사(甑山天師)께서 고부인(高夫人)을 수부(首婦)로 맞아들이사 천지공사(天地公事)의 후계사명(後繼使命)을 지워주시고 인(因)하여 종통연원(宗統淵源)을 내리셨음은 여러 제자(弟子)들의 증언(證言)은 고사(姑捨)하고라도 천지(天地)굿 공사(公事)와 세 살림 부탁(付託)과 연령가감(年齡加減)의 훈화(訓話)로서 증명(證明)된 바이다. 그 후(後)로 신해년(辛亥年) 구월(九月)에 대흥리(大興里)에서 부인(夫人)이 신도(神道)가 열림으로 인(因)하여 포교운동(布敎運動)이 개시(開始)되니 제일교단(第一敎團)이 성립(成立)되었음을 비롯하여 조종(祖宗)골의 제이교단(第二敎團)과 용화동(龍華洞)의 제삼교단(第三敎團)을 통(通)하여 구비구비의 새 기틀이 열릴때마다 매양 신정(神政)의 행사(行事)가 있은 뒤에 새로운 사태(事態)가 발전(發展)되여 왔었다. 그리하여 부인(夫人)의 신정행사(神政行事)는 교회발전사(敎會發展史)와 표리연관(表裏聯關)의 관계(關係)가 있었으므로 이제 신정(神政)의 중요(重要)한 행사(行事)를 수집(蒐集)하여서 교우(敎友)들에게 신앙과본(信仰課本)의 보충자료(補充資料)로 제공(提供)하는 바이다.

대순(大巡) 구십삼년(九十三年) 십일월(十一月)

후학(後學) 이정립(李正立)씀(書)
 

제일장(第一章)
봉사시대(奉事時代)

 1. 천후(天后)의 성(姓)은 고씨(高氏)요, 본(本)은 장택(長澤)이요, 이름은 판례(判禮)니, 이조(李朝) 고종(高宗) 경진(庚辰) 삼월(三月)에 전라도(全羅道) 담양군(潭陽郡) 무면(武面) 성도리(成道理)에서 탄생(誕生)하시니, 부친(父親)의 이름은 덕삼(德三)이요, 모친(母親)은 박씨(朴氏)니라.

2. 박부인(朴夫人)이 기묘년(己卯年) 오월(五月)에 어느 절에서 기도(祈禱)할 새, 하루밤 꿈에 높은 산(山)에 올라 굉장(宏壯)한 집에 들어가니, 한 선관(仙官)이 붉은 책(冊)과 누런 책(冊) 각(各) 한권(一卷)씩 주거늘 부인이 받아가지고 놀라 깨었더니, 이로부터 잉태(孕胎)하여 천후(天后)께서 탄강(誕降)하시니라.

3. 천후(天后) 낳신지 여섯달만에 부친상(父親喪)을 당(當)하시고, 아홉 살에 모친(母親)을 따라서 정읍군(井邑郡) 입암면(笠岩面) 대흥리(大興里)에 이사(移徙)하시고, 이로부터 이숙(姨叔) 차치구(車致九)를 좇아 동학(東學)을 믿으시니라.

4. 정미년(丁未年) 동짓달 초이튿날 천사(天師)께서 순창(淳昌) 농(籠)바우로부터 대흥리(大興里)에 오실새, 태인(泰仁) 행단(杏壇)에 이르사 차경석(車京石)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 일은 수부(首婦)가 들어야 되는 일이니 네가 일을 하려거든 수부(首婦)를 들여세우라 하시니라.

5. 차경석(車京石)이 천사(天師)를 모시고 돌아와서 그 이종매(姨從妹) 고씨(高氏) 천후(天后)를 천거(薦擧)하니, 동지달 초사흩날 천사(天師)께서 천후(天后)를 맞아 결혼(結婚)하실 새, 천후(天后)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너를 만나려고 십오년(十五年)동안 정력(精力)을 들였나니, 이로부터 천지대업(天地大業)을 네게 맡기리라 하시며, 이날 천사(天師)께서 천후(天后)를 옆에 끼시고 붉은 책(冊)과 누런 책(冊)을 각각 한권씩 앞으로부터 번갈아 깔며, 그 책(冊)을 밟아 방(房)으로부터 마당에 나가사 남쪽 하늘에 별을 바라보고 네 번 절하라 하시고, 다시 그 책(冊)을 번갈아 깔며 밟아서 방(房)에 들어오게 하시니라.

6. 그 후 모든 일을 가르치시며 문명(文命)을 쓰실 때에도 반드시 천후(天后)의 손에 붓을 쥐게 하시고, 천사(天師)께서 등 뒤에 겹쳐 앉으사 천후(天后)의 손목을 붙들어 쓰이시니라.

7. 초나흗날 백미(白米) 한 섬을 방(房)에 두시고, 백지(白紙)로 만든 고깔 이십여개(二十餘個)를 쌀 위에 놓고, 엽전(葉錢) 아흔 양(兩)과 메주콩 한 너레기와 성냥 아홉 통과 청수(淸水) 아홉 그릇을 놓고, 천후(天后)로 하여금 종이에 글을 쓰이사 불사르시고 가라사대 '물과 불만 가지면 비록 석산(石山) 바위위에 있을지라도 먹고 사느니라' 하시고 그 백미(白米)로 밥을 지어 이날 모인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시니라.

8. 무신년(戊申年) 정월(正月)에 천사(天師)께서 종도(從徒) 십여인(十餘人)을 뜰아래 늘어 세우신 뒤에 천후(天后)와 더불어 마루에 앉으사, 차경석(車京石)을 명(命)하여 망치를 들고 천사(天師)와 천후(天后)를 치며 동상례(同床禮)를 받게하시니, 천후(天后)는 방(房)으로 뛰어 들어가시며 가로대 죽으면 한 번 죽을 것이요, 두 번 죽지는 못하리라 하시니 천사(天師)께서 크게 칭찬(稱讚)하시고, 다시 안내성(安乃成)에게망치를 들리사 경석(京石)을 치며 무엇을 하려느냐고 물으니 경석(京石)이 역모(逆謀)를 하겠다고 대답(對答)하는지라. 이에 천후(天后)에게 일러 가라사대 '네 나이는 스물 아홉이요, 내 나이는 설흔 여덟이라. 내 나이에서 아홉 살을 감(減)하면 내가 너 될것이요, 네 나이에서 아홉 살을 더하면 네가 나될지니, 곧 내가 너되고 네가 나되는 일이니라' 하시니라.

9. 하루는 걸군(乞軍)이 들어와서 굿을 친 뒤에, 천사(天師)께서 천후(天后)로 하여금 춤을 추게 하시고 친(親)히 장고(長鼓)를 들어메고 노래를 부르시며 가라사대 '이것이 곧 천지(天地)굿이라. 나는 천하일등재인(天下一等才人)이요, 너는 천하일등무당(天下一等巫堂)이라. 이 당(黨) 저 당(黨) 다버리고 무당(巫堂)의 집에 가서 빌어야 살리라' 하시고, 인(因)하여 천후(天后)에게 무당도수(巫黨度數)를 정(定)하시니라.

10. 하루는 천사(天師)께서 반듯이 누우신 뒤에, 천후(天后)로 하여금 배위에 걸터앉아 칼로 배를 겨누며 '나를 일등(一等)으로 정(定)하여 모든 일을 맡겨 주시렵니까'라고 다짐을 받게하시고, 천사(天師)께서 허락(許諾)하여 가라사대 '대인(大人)의 말에는 천지(天地)가 쩡쩡 울려나가나니, 오늘의 이 다짐은 털끝만치도 어김이 없으리라' 하시며 이도삼(李道三), 임정준(林正俊), 차경석(車京石) 세사람으로 증인(證人)을 세우시니라.

11. 하루는 천사(天師)께서 이경문(李京文)을 명(命)하사 천원(川原)에 가서 일등교자(一等轎子)와 일등하인(一等下人)을 구(求)하여 오라하사, 교자(轎子)를 마당에 꾸며놓고 천사(天師)께서 천후(天后)와 더불어 나란히 앉으사 구릿골로 가자 하시며 길을 재촉하시다가 정지(停止)하시니라.

12. 하루는 천사(天師)께서 구릿골에 계실새 차윤칠(車輪七)이 가서 뵈오니, 천사(天師) 윤칠(輪七)에게 일러 가라사대 '네 매씨(妹氏)를 잘 공양(供養)하라. 네 매씨(妹氏)가 굶으면 천하(天下) 사람이 모두 굶을 것이요, 먹으면 천하(天下) 사람이 다 먹을 것이요, 눈물을 흘리면 천하(天下) 사람이 다 눈물을 흘릴 것이요, 한숨을 쉬면 천하(天下) 사람이 다 한숨을 쉴 것이요, 기뻐하면 천하(天下) 사람이 다 기뻐하리라' 하시니라.

13. 천사(天師)께서 매양 천후(天后)의 등을 어루만지시며 가라사대'너는 복동(福童)이라. 장차(將次) 천하(天下) 사람의 두목(頭目)이 되리니, 속(速)히 도통(道通)을 하리라' 하시니라.

14. 하루는 천사(天師)께서 천후(天后)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없으면 크나큰 세 살림을 네가 어찌 홀로 맡아 하려 하느냐' 하시니라.

15. 하루는 천사(天師)께서 차경석(車京石)에게 명(命)하사 세숫물을 가져오라 하시니, 경석이 세숫물을 가져다 올리고 나가거늘, 천사(天師) 경석(京石)을 손가락질 하며 천후(天后)에게 일러 가라사대 '저 살기(殺氣)를 보라. 경석(京石)은 만고대적(萬古大賊)이라. 자칫하면 내 일이 낭패되리니, 극(極)히 조심(操心)하라' 하시니라.

16. 하루는 천사(天師)께서 천후(天后)의 손 등을 물으시니 청독이 크게 앉는지라. 천사(天師) 가라사대 '네게 여덟가지 큰 병(病)이 있는데, 그 중(中)에서 단독(丹毒)이 가장 크므로 이제 단독(丹毒)은 없앴으나, 남은 병(病)들을 내가 없으면 어찌 하려느냐' 하시니라.

17. 하루는 천사(天師)께서 태인(泰仁) 새올에 계시면서 박공우(朴公又)를 보내어 경석(京石)을 부르시거늘, 경석(京石)이 가 뵈이니 천사(天師)께서 돈을 주시며 돌아가서 쌀을 사서 놓으라 하셨더니, 경석(京石)이 그 돈을 사사(私事)로 써버린지라. 그 뒤에 천사(天師)께서 오시어 천후(天后)에게 물어 가라사대 '쌀을 많이 사놓았느냐'. 천후(天后) 대(對)하여 가로대 '알지 못하나이다'. 천사(天師) 경석(京石)을 불러 물어 가라사대 '일전(日前)에 새올서 네게 돈을 주며 쌀을 사라 하였더니, 네 매씨(妹氏)에게 그 말을 고(告)하지 아니하였느냐'. 경석(京石)이 대(對)하여 가로대 '고(告)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거늘, 이 뒤로는 천사(天師)께서 모든 일을 경석(京石)에게 부탁(付託)하지 아니하시고 바로 천후(天后)와 의논(議論)하여 조처(措處)하시니라.

18. 팔월(八月) 열려드렛날 저녁에 천사(天師)께서 말을 타고 오시어, 곧 안중선(安重宣), 차윤경(車輪京)을 불러 명(命)하여 가라사대 '이길로 구릿골로 가서 일등교자(一等轎子)와 일등하인(一等下人)을 구(求)하여, 날 밝기 전(前)에 당(當)하여 오라. 내일(來日) 수부(首婦)를 데리고 구릿골로 이사(移徙)하리라' 하시니, 두 사람이 명(命)을 받고 곧 떠나니라. 이튿날 아침에 천사(天師)께서 천후(天后)에게 일러 가라사대 '네가 구릿골로 가면 네 몸이 부서질 것이요, 이곳에 있으면 네 몸이 크리니, 이곳에 있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홀로 떠나 살포정에 이르러 교자(轎子)를 만남에, 드디어 말을 버리고 교자(轎子)를 바꾸어 타시고 구릿골로 가시니라.

19. 시월(十月)에 천사(天師)께서 구릿골로부터 오시어, 종도(從徒)들과 함께 밖에 나가사 무(蕪)를 뽑아 나누어 잡수시며, 내일(來日) 천후(天后)를 구릿골로 데려가실 의논(議論)을 하시고 들어오사 천후(天后)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 털토수(吐手)와 남바우를 네가 쓰고, 우리 둘이 걸어갈지라. 우리가 그렇게 걸어서 천천히 구경(求景)하며 가면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부러워하여 말하기를, 저 양주(兩主)는 둘이 꼭같아서 천정연분(天定緣分)이로다 하리니, 세상(世上) 사람은 우리를 구경(求景)하고 우리는 세상(世上) 사람을 구경(求景)하며 슬슬 걸어가는 것이 좋으리라' 하시더니, 그 이튿날 다시 말씀치 아니하시니라.

20. 동지(冬至)달에 천후(天后) 안질(眼疾)을 얻으시거늘 윤경(輪京)이 구릿골에 가서 천사(天師)께 고(告)하였더니, 스무이렛날 밤에 천사(天師)께서 종도(從徒)들을 데리고 오시어, 수저를 돌려 저녁밥을 함께 잡수시며 종도(從徒)들을 명(命)하사 [경주용담 대도덕 봉천명 봉신교 대선생전 여율령 심행 선지후각 원형이정 포교오십년공부(慶州龍潭 大道德 奉天命 奉神敎大先生前 如律令 審行 先知後覺 元亨利貞 布敎五十年工夫)]를 읽게하시고, 천사(天師)께서 천후(天后)를 팔에 안아 재우시더니 날이 장차 밝으려 할 때에 천후(天后) 잠을 깨어 눈을 뜨니,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많이 흘러내리고 인(因)하여 안질(眼疾)이 나은지라. 수일(數日)동안 천후(天后)의 안력(眼力)을 검사(檢査)하실 새, 기(旗) 수십개(數十個)를 세우고 그 아래 한사람씩 세우신 뒤에 사람의 이름을 낱낱이 물어 알게 하시고, 또 깃발에 글자를 써놓고 낱낱이 물어 알게하시고, 밤에는 등(燈)불을 향(向)하여 불 모양(模樣)을 물어 분명(分明)히 알게 하시더니, 하루는 천사(天師)께서 입으신 색(色)저고리를 천후(天后)에게 입히시고 밖으로 나가서 집을 돌아 뒷문으로 들어오라 하시고, 막 들어올 때에 미리 덮어두었던 양푼을 들라 하시거늘, 천후(天后) 들어보니 그 밑에 머리털 한 개(個)가 있는지라. 그 털을 들고 아뢰니 천사(天師) 가라사대 이제는 염려(念慮)없다 하시니라.

21. 모친(母親)이 단독(丹毒)을 앓는다는 기별(寄別)을 듣고 근친(覲親)하려 하다가, 천사(天師)께서 좀 기다려서 함께가자 하시므로 마음으로 기뻐하여 기다리시더니, 얼마 안되어서 모친(母親)이 들어와서 아랫방(房)에 앉거늘, 천사(天師) 가라사대 '왕대 뿌리에 왕대 나고 시누대 뿌리에 시누대 나느니, 딸 잘되도록 축수(祝手)하시라'고 부탁(付託)하시더니, 이로부터 단독(丹毒)이 곧 나으니라.

22. 하루는 천사(天師)께서 마당에 말(斗)을 덮어놓고 그 위에 요(褥)를 깔고, 왼손에 칼과 오른손에 망치를 들고 앉으사 천후(天后)로 하여금 땅에 앉게 하신 뒤에 말을 가리키시고, 다시 천후(天后)로 하여금 칼과 망치를 들고 말위에 앉게 하시고 천사(天師)께서 땅에 앉으사 천후(天后)에게 말을 가리키시니라.

23. 하루는 천사(天師)께서 남(南)을 등지고 북(北)을 향(向)하여 서시고, 천후(天后)로 하여금 북(北)을 등지고 남(南)을 향(向)하여 서게하신 뒤에 그 가운데 술상(床)을 차려놓게 하시고, 무수(無數)한 글을 써서 술상 위에 놓으시고 천후(天后)와 함께 서로 절하시니라.

24. 기유년(己酉年) 유월(六月) 스무나흩날 천사(天師)께서 구릿골 약방(藥房)에서 화천(化天)하시니, 종도(從徒)들이 이 사실(事實)을 천후(天后)에게 속이고, 천사(天師)께서 청국공사(淸國公事)를 보시려고 남경(南京)에 가서 계신다고 말할 뿐이더라.

25. 천사(天師)께서 화천(化天)하신지 미구(未久)에, 천후(天后) 안질(眼疾)이 다시 도져서 심(甚)히 고통(苦痛)하시니, 경석(京石)과 윤칠(輪七)이 크게 근심하여 어찌할바를 모르고 다만 일심(一心)으로 주문을 외울 뿐이더니, 얼마 아니하여 천후(天后)의 안질(眼疾)이 절로 나으니라.

26. 하루는 경석(京石)이 김형렬(金亨烈)과 함께 변산(邊山)을 다녀와서, 사랑(舍廊)에서 서로 의논(議論)하는 말소리가 들리거늘 천후(天后) 조용(從容)히 들으시니, 곧 다른 선생(先生)을 구(求)하러 갔다가 헛걸음 하고 온 이야기라. 다녀온 일을 후회(後悔)하고는 안내성(安乃成)의 집에 수련방(修鍊房)을 차리고 내성(乃成)과 중선(重宣)과 더불어 태을주(太乙呪)를 읽는지라. 천후(天后) 종도(從徒)들의 이런 태도(態度)를 보시고 크게 이상(異常)히 여기시니라.

27. 이 뒤로 천후(天后) 태을주(太乙呪)를 읽으시더니, 취정회신(聚精會神)된 뒤에 혹(或) 상여(喪輿)가 들어와 보이기도 하며, 혹(或) 들것도 들어와 보이기도 하며, 혹(或) 천사(天師)의 손이 머리위로부터 내려와서 이마를 어루만져 보이기도 하며, 저녁이면 혹(或) 천사(天師)께서 평시(平時)와 같이 의관(衣冠)을 갖추어 들어오시기도 하고, 혹(或) 평시(平時)에 거가(居家)하시는 모양(模樣)으로 중우적삼과 푸단님으로 들어오시기도 하여 보이더라.

28. 하루저녁에는 천사(天師)께서 홋중우와 푸단님으로 문을 열고 들어와 앉으시거늘, 손으로 어루만지시며 누구임을 물으니 곧 천사(天師)의 음성(音聲)으로 대답(對答)하시는지라. 천후(天后)께서 딸 태종(太宗)을 불러서 불을 켜라 하시니, 태종(太宗)이 올라와서 성냥을 그음에 천사(天師)께서 불어서 꺼버리시고, 다시 그으면 또 꺼버리사 이렇게 하여 성냥 두갑(匣)을 다 그어버린지라. 천사(天師)께서 이에 가만히 태종(太宗)에게 일러 가라사대 '나는 곧 너의 아버지이니, 아랫 방(房)에서 내가 왔다는 말을 하지 말라' 하시고, 인(因)하여 누우시며 입으신 마고자에 빛이 찬란(燦爛)한 호박(琥珀) 단추 세 개 중 두 개를 떼어서 천후(天后)에게 주시거늘, 천후(天后) 받아서 손에 쥐고 주무셨더니, 날이 밝음에 깨어보시니 천사(天師)께서 계시지 않고 손에 쥐었던 호박(琥珀) 단추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29. 경술년(庚戌年) 칠월(七月)에 천후(天后) 오른발 용천혈(龍泉穴)에 독종(毒腫)이 나서, 다리가 크게 부어 쑤시고 아파서 수십일(數十日) 동안 크게 앓으시더니, 하루저녁에는 누워서 정신(精神)없이 앓으시는 중에 문득 천사(天師)께서 삿갓을 마루에 벗어놓고 들어오사 일러 가라사대 '네가 종기(腫氣)로 얼마나 고통(苦痛)하느냐' 하시고, 친히 종처(腫處)에 싸맨 것을 풀으시고 혀로 종처(腫處)를 킮으시니 즉시(卽時) 통증(痛症)이 개이는지라. 인(因)하여 곤(困)히 잠들으셨다가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니, 종처(腫處)는 나았으나 곁에서 주무신줄로 믿었던 천사(天師)께서 계시지 않거늘, 경석(京石)과 여러 집안 사람들에게 천사(天師)의 계신 곳을 물으니 아는 자(者)가 없고, 모두 이상(異常)히 여기니라.

30. 구월초(九月初) 어느날 저녁에 천후(天后) 주문(呪文)을 읽으시더니, 광명(光明) 속에 문득 대흥리(大興里)로부터 구릿골까지 가는 길이 나타나며, 구릿골 뒷산(山)에 초빈(草殯)이 보이고 초빈(草殯) 나래 두모습에 시추(尸醜)물 묻은 것까지 보이므로 크게 의혹(疑惑)하시더니, 그 이튿날 저녁에 문득 천사(天師)께서 들어오시어 일러 가라사대 '내가 죽었는데 네가 어찌 나의 묻힌 곳을 찾아보지 않느냐' 하시거늘, 천후(天后) 대(對)하여 가로대 '어찌 상서(祥瑞)롭지 못한 말씀으로 희롱(戱弄)하시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참으로 죽었노라' 하시고 손으로 천후(天后)의 등을 어루만지시고 손을 잡으시며 이별가(離別歌) 한 곡조(曲調)를 크게 부르신 뒤에 일어나서 문(門) 밖으로 나가시며 문득 보이지 아니하신지라. 천후(天后) 크게 의혹(疑惑)하사 윤경(輪京)을 안내성(安乃成)의 집에 보내어 경석(京石)을 불러오사, 천사(天師)의 종적(踪跡)을 물으시고 찾아가자 하시니 경석(京石)이 가로대 '천사(天師)께서 며칠 전에 남경(南京)으로부터 구릿골로 돌아오사 큰 공사(公事)를 보시는데, 다만 한사람만 출입(出入)하며 수종(隨從)들게 하고 다른 사람은 누구든지 출입(出入)을 금(禁)하시니, 그러므로 가 뵈옵지 못하나이다' 하는지라. 천후(天后) 할 일없어 고민(苦憫)으로 밤을 새우고, 이튿날 새벽에 분(粉) 한 갑(匣)과, 독약(毒藥) 한 봉(封)과, 이왕(已往)에 천사(天師)께서 주신 흰바둑 한 개(個)와, 진주(眞珠) 한 개(個)와, 총전(總錢) 칠분(七分)과, 적은 백로지(白鷺紙)쪽 마른 것을 담은 엽낭(葉囊)을 가지고 새벽빛을 타서 아무도 알지 못하게 사립문을 나서시니, 적막(寂寞)한 천지(天地)에 어스럼이 남았고 북(北)으로 터진 빈 들에 찬기운만 돌 뿐이라. 삼십평생(三十平生) 첫 출입(出入)에 구릿골이 어데인지 방향(方向)을 알바없고, 오직 전날 밤 광명(光明) 속에 나타났던 큰길로 초빈(草殯)한 곳을 바라보고 가시니, 걸음이 빨라져서 팔십리(八十里)를 한나절에 당도(當到) 하시니라.

31. 경석(京石)은 천후(天后)께서 계시지 아니함을 알고 놀래어 이웃집에 ?어도 아는 자(者)가 없고, 뒷 들에서 새벽일 하는 농부(農夫)가 말하되 '이른 새벽에 천후(天后)께서 정읍통로(井邑通路)로 급(急)히 가는 것을 보았노라' 하거늘, 경석(京石)이 아우 윤칠(輪七)과 함께 급(急)히 뒤를 쫓아 태인(泰仁) 도창(道昌)고개 밑에 이르러 천후(天后)를 만나게 된지라. 드디어 천후(天后)의 몸을 수색(搜索)하여 독약(毒藥)을 빼앗고, 이에 여쭈어 가로대 '누님이 어찌하여 이런 일을 행하시나이까? 천사(天師)님이 지금 중대(重大)한 공사(公事)를 보시는 중(中)인데, 부르시는 명령(命令)이 없이는 절대로 오지 말라고 기별(寄別)하셨으므로, 아우도 이제까지 가뵈옵지 못하고 부르시는 명령(命令)이 속히 있기만 고대(苦待)하는 중이거늘, 이제 졸연(猝然)히 가뵈오면 누님은 고사(姑捨)하고 아우에게도 큰 꾸지람이 있으리니, 어떻게 감당(堪當)하시려 하나이까? 바라건대 이길로 돌아가서 일간(日間)에 명령(命令)이 있기를 기다리사이다' 하며 집으로 돌아가기를 간청(懇請)하되, 천후(天后) 굳이 듣지아니 하시고, 걸음만 계속(繼續)하시니 경석(京石) 형제(兄弟)도 할수없이 뒤를 따르니라.

32. 원평(院坪)에 이르사 윤칠(輪七)에게 명하여 약간(若干)의 주과포(酒菓脯)를 준비(準備)하여 들리고, 길을 버리고 논두둑과 밭두둑으로 걸어서 솔개봉(峯) 위 장탯날에 올라 초빈(草殯) 앞에 당도(當到)하사, 윤칠(輪七)에게 나래를 헤치라고 명하시니 경석(京石)이 가로대 '남의 초빈(草殯)을 헤치다가 초빈(草殯) 임자가 바라보고 달려와서 힐란(詰難)하면 어찌하려나이까? 바라건대 속히 돌아가사이다' 하며 굳이 간(諫)하되 천후(天后) 들은체도 아니하시고 몸소 헤치기 시작(始作)하시거늘, 경석(京石)이 할수없어 윤칠(輪七)을 명하여 초빈(草殯)을 헤치고 널 천개(天蓋)를 때니, 천사(天師)의 용모(容貌)는 아직 상(傷)하지 아니하신지라. 천후(天后) 가지고 왔던 진주(眞珠)를 입술 안에 넣고, 한삼(汗衫)을 가슴에 덮고, 그 위에 백로지(白鷺紙)쪽(옥황상제{玉皇上帝}라 썼음)을 덮고, 천개(天蓋)를 다시 덮은 뒤에 준비하여 온 주과포(酒菓脯)로 전을 올리고, 초빈(草殯)을 다시 봉(封)하시니라. 김형렬(金亨烈)이 바라보고 종도(從徒) 십여인(十餘人)과 함께 나와서 천후(天后)를 맞아 들어가니라. 천후(天后) 형렬(亨烈)의 집에서 이틀동안 쉬시고, 경석(京石)과 윤칠(輪七)과 함께 고부(古阜) 와룡(臥龍) 신경수(申京洙)의 집에 이르시니, 마침 시아버지께서 오셨거늘, 인(因)하여 수일(數日)동안 머무르시다가 대흥리(大興里)로 돌아오시니라.
 
 
제이장(第二章) 

제일교단시대(第一敎團時代)

1. 신해년(辛亥年) 사월(四月)에 천후(天后) 차경석(車京石)과 유응화(柳應化)와 응화(應化)의 아들을 데리고 대원사(大院寺)에 들어가사, 대례복(大禮服)을 차리시고 천사(天師)의 성령(聖靈)께 혼례식(婚禮式)을 행(行)하실새, 만고장상(萬古將相)의 이름을 적어서 크게 점명(點名)하시고, 인(因)하여 사십구일(四十九日)동안 진법수련(眞法修鍊)을 행(行)하신 뒤에, 고부(古阜) 와룡(臥龍) 신경수(申京洙)의 집에 오셔 백일(百日)동안 수련(修鍊) 하실새, 딸 태종(太宗)이 수종(隨從)드니라.

2. 구월(九月) 중순(中旬)에 대흥리(大興里)로 돌아오사, 경석(京石)에게 열아흐렛날 천사(天師)의 탄신기념치성(誕辰記念致誠)을 올릴 것을 명하시니, 경석(京石)이 제수(祭需)를 성비(盛備)하여 열아흐렛날 새벽에 치성(致誠)을 올리니라. 스무날 아침에 천후(天后) 마당에서 거닐다가 혼도(昏倒)하여 네댓 시간(時間)을 쓰러져 있는데, 현황(炫煌)한 중에 큰 저울과 같은 것이 공중(空中)으로부터 내려오거늘, 자세(仔細)히 보시니 오색(五色) 과실(果實)을 고배(高杯)로 고인 것이라. 가까이 내려와서는 문득 헐어져서 쏟아지거늘 놀래어 깨시니, 집안사람들이 둘러 앉아서 애통(哀痛)하다가 천후(天后)께서 깨어나심을 보고 모두 기뻐하는지라. 천후(天后)께서 일어나 앉으사 문득 천사(天師)의 음성(音聲)으로 경석(京石)을 대(對)하여 누구임을 물으시니 경석(京石)이 이상(異常)히 여겨 성명(姓名)을 고(告)하고, 또 무슨 생(生)임을 물으심으로 경석(京石)이 경진생(庚辰生)임을 고(告)하니, 일러 가로대 '나도 경진생(庚辰生)이라. 속담(俗談)에 동갑(同甲) 장사 이(利) 남는다 하나니, 우리 두 사람이 동갑(同甲) 장사 하자' 하시고, 또 생일(生日)을 물으니 경석(京石)이 유월(六月) 초하루임을 고(告)한대 다시 일러 가로대 '내 생일(生日)은 삼월(三月) 이십육일(二十六日)이라. 나는 낙종(落種)물을 맡으리니, 그대는 이종(移種)물을 맡으라. 추수(秋收)할 자(者)는 다시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로부터 천후(天后)께서는 성령(聖靈)의 접응(接應)을 받으사 한 달 동안 신정(神政)을 행(行)하시니라.

3. 스무하룻날 부터 날마다 마당에 청수(淸水)를 떠놓고 날마다 물형부(物形符)를 받아서 불사르실 새, 경석(京石)이 천사(天師)를 원망(怨望)하여 가로대 '부인(夫人)만 알고 제자(弟子)는 알지 못한다' 하거늘, 이에 천후(天后) 경석(京石)을 명(命)하여 부(符)를 받으라 하시니, 경석(京石)이 붓을 들고 오랫동안 엎드려 있으되 종시(終是) 부(符)가 내리지 아니하더라.

4. 이때에 박공우(朴公又)에게 기별(寄別)하여 술을 가져오라 하시니, 공우(公又)는 기유년(己酉年) 봄에 천사(天師)의 명(命)으로 술 서말을 빚어두었다가 천사(天師)께서 다시 찾지아니하시고 화천(化天)하였으므로 그대로 봉(封)하여 두었더니, 이제 천후(天后)의 기별(寄別)을 듣고 이상(異常)히 여기며 또 기뻐하여 신경수(申京洙)로 하여금 그 술을 메어오니라.

5. 스무나흩날 경석(京石)에게 명(命)하여 사인교(四人轎)를 빌려오라 하시더니, 그 이튿날 침방(寢房)을 깨끗이 쓸고 차윤덕(車輪德)으로 하여금 방(房)을 지키라 하시고, 경석(京石)의 한삼(汗衫)에 [어명(御命)]이라 써서 입히시고, 갓을 주물러 씌우시며 일러 가라사대 '너는 암행어사(暗行御史)라. 암행어사(暗行御史)는 폐의파립(弊衣破笠)으로 행동하여야 하느니라' 하시고, 천후(天后) 사인교(四人轎)를 타시고 경석(京石)을 앞세우시고 윤칠(輪七)과 임정준(林正俊)과 주낙범(朱洛範)을 데리고 길을 떠나, 원평(院坪)에 이르사 송찬오(宋贊五)의 집에 처소(處所)를 정(定)하신 뒤에, 윤칠(輪七)을 명(命)하여 약장(藥藏)과 궤(櫃)의 열쇠를 가지고 약방(藥房)에 가서 지키라 하시고, 경석(京石)을 명(命)하여 짐꾼 세사람을 데리고 가서 약장(藥藏), 궤(櫃) 등 약방기구(藥房器具) 일체(一切)와 부벽서(附壁書)와 벽(壁) 바른 종이까지 모조리 떼고, 방(房)바닥에 먼지까지 쓸어서 가져오라 하시니라.

6. 경석(京石)이 구릿골에 가서 형렬(亨烈)에게 온 뜻을 고(告)하니, 형렬(亨烈)이 가로대 '내 딸은 사경(死境)에 임박(臨迫)하였노라' 하며 약방기물(藥房器物)을 가져가기를 허락(許諾)치 아니하거늘, 경석(京石)이 가로대 '신도(神道)에서 결정(決定)된 일을 그대가 쫓지 아니하면 화(禍)가 있으리라'. 형렬(亨烈)이 가로대 '만일(萬一) 신도(神道)에서 결정(決定)된 일일진대 천지(天地)에서 징조(徵兆)를 나타낼 것이니, 어떠한 징조(徵兆)가 나타나지 아니하면 나는 그대의 말을 믿지 못하겠노라' 하더라. 이때에 천후(天后)의 명(命)을 형렬(亨烈)이 듣지 아니한다는 기별(寄別)을 들으시고, 양지(洋紙)에 해와 달을 그려놓고 두 손 식지(食指)로 하늘을 향(向)하여 지휘(指揮)하시니, 문득 청천(靑天)에 벽력(霹靂)이 일어나고 소낙비가 쏟아지며 번개가 온 집을 두르는지라. 형렬(亨烈)이 징조(徵兆)를 요구(要求)하다가 이 현상(現狀)이 일어남을 보고 크게 놀래며, 문득 마음에서 '망하는 세간사리는 애체(愛滯)없이 버리고 딴 배포(配布)를 꾸미라. 만일 아껴 놓지않고 붙들고 있으면, 몸까지 따라서 망(亡)하느니라' 라는 천사(天師)의 말씀이 생각나거늘, 이에 경석(京石)에게 가로대 '진실(眞實)로 천의(天意)이니 마음대로 가져가라' 하니라.

7. 이에 경석(京石)은 짐꾼에게 약장(藥藏)과 궤(櫃)와 철연자(鐵硏子)와 삭도(削刀)와 횃대와 부벽시(附壁詩)와 액자(額子)와 벽바른 종이와 방바닥에 먼지까지 쓸어서 지우고 풍우(風雨)를 무릅쓰고 떠날 새, 형렬(亨烈)에게 돈 이십원(二十圓)을 주며 가로대 '따님 병(病)이 위중(危重)하다 하니, 약소(略少)하나마 약(藥)값에 보태어 쓰라'하고, 인(因)하여 형렬(亨烈)을 작별(作別)하고 나와서 마을 앞 정문(旌門) 거리에 이르니, 풍우(風雨)와 뇌전(雷電)이 그치며 형렬(亨烈)의 집에서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형렬의 집 사람이 달려와서 김부인(金夫人)이 사망(死亡)하였다는 부고(訃告)를 전(傳)하니라.

8. 모든 물건(物件)을 송찬오(宋贊五)의 집에 들여놓을 새, 경석(京石)이 불평(不平)한 말을 내거늘 천후(天后) 발을 들어 차시니, 경석(京石)이 눈을 맞아서 눈퉁이가 크게 부은지라. 경석(京石)이 크게 크게 앓으며 애걸(哀乞)하거늘 천후(天后) 뒷일을 경계(警戒)하시고, 인(因)하여 청수(淸水)에 면경(面鏡)을 담근 뒤에 그 물을 경석(京石)에게 먹이시며 손으로 어루만지시니, 경석(京石)의 눈이 곧 나으니라.

9. 스무아흐렛날 아침에 형렬(亨烈)이 와서 천후(天后)께 딸 죽은 일을 아뢰거늘, 천후(天后) 치상비(致喪費)를 후(厚)히 주시고, 태인(泰仁) 도듭실 유응화(柳應化)에게서 족두리와 원삼을 빌어다가 새롭게 단장(丹裝)하시고, 사인교(四人轎)를 타시고 약장(藥藏)과 모든 물건(物件)을 짐꾼에게 지워 앞세우고 대흥리(大興里)로 돌아오사, 약장(藥藏)과 모든 기물(器物)을 침방(寢房)에 봉안(奉安)하고, 부벽시(附壁詩)는 벽(壁)에 붙이고, 벽 발랐던 종이는 뭉쳐서 천반자(天盤子) 속에 갊아두시니, 온 집안 사람들이 모두 놀래어 이상(異常)히 여기더라. 이에 천후(天后) 친자종도(親炙從徒)들을 소집(召集)하여 교단창립(敎團創立)을 선언(宣言)하시고, 여러 종도(從徒)들에게 명(命)하사 포교(布敎)에 종사(從事)케 하시고, 신경원(辛京元)과 김병욱(金秉旭)에게 명(命)하사 태인장(泰仁場)에서 큰 소 한 마리를 사다가 기르시면서 신정(神政)을 행(行)하시니라.

10. 하루는 천후(天后) 궤(櫃) 위에 면경(面鏡)을 세워놓고 다시 작은 면경(面鏡)을 그 면(面)에 붙이신 뒤에, 경석(京石)으로 하여금 그 앞에 앉아서 주문(呪文)을 읽으라 하시니, 경석(京石)이 주문(呪文)을 읽다가 불평(不平)을 하니 문득 붙었던 면경(面鏡)이 떨어지거늘, 경석(京石)이 놀래어 면경(面鏡)을 주워서 다시 붙이려 하되 붙지 아니한지라. 경석(京石)이 천후(天后)께 고(告)하니, 천후(天后) 다시 붙여놓고 신정(神政)을 행(行)하시더니, 문득 폭우(暴雨)가 내려 큰 물이 져서 경석(京石)의 집도 침수(浸水)되니라.

11. 경석(京石)이 어려서부터 등이 굽어서 보기 싫더니, 하루는 천후(天后) 주먹으로 경석(京石)의 굽은 등을 치며 '보기 싫다' 하시고, 더수기를 잡아 일으켜 세우시니, 경석(京石)의 척추(脊椎)에서 뚝 소리가 나더니 이로부터 경석(京石)의 등이 곧아지니라.

12. 임자년(壬子年) 칠월(七月) 초사흗날 천후(天后) 경석(京石)을 데리고 걸어서 청주(淸州) 만동묘(萬東廟)에 이르사, 구월(九月) 초이튿날 까지 날마다 치성(致誠)을 행(行)하시더니, 하루는 경석(京石)이 냇가 돌위에 앉아서 주문(呪文)을 외우다가 낙상(落傷)하여, 중태(重態)에 이르러 여러날 동안 인사(人事)를 알지 못하고 누워 앓거늘, 천후(天后) 주먹으로 경석(京石)의 등을 치시며 꾸짖어 가라사대 '일을 다보았는데 너는 어찌 정신(精神)을 차리지 아니하느냐' 하시니 경석(京石)이 곧 나은지라. 이때에 여비(旅費)가 떨어졌거늘 경석(京石)이 먼저 돌아와서 여비(旅費)를 주선(周旋)하여 가지고 가서 천후(天后)를 모셔 오니라.

13. 친자종도(親炙從徒)들은 원래(元來) 천사(天師)를 모셔 좋은 세상(世上)을 만나서 영화(榮華)와 복록(福祿)을 누리려는 희망(希望)으로 천사(天師)를 따르다가, 뜻밖에 천사(天師)께서 화천(化天)하시므로 모두 크게 실망(失望)하여 어찌할바를 모르더니, 신해년(辛亥年) 구월(九月)부터 천후(天后) 신도(神道)로서 포정소(布政所) 문(門)을 열으심에 모두 다시 발심(發心)하여 대흥리(大興里)로 모여와서, 천후(天后)를 모시고 교단(敎團)을 창립(創立)한 뒤에 각기 사방(四方)으로 돌아다니며 포교(布敎)에 힘쓰니, 이로부터 교세(敎勢)가 일어나기 시작(始作)하여 그 뒤 삼년(三年) 동안에 전라남북도(全羅南北道)와 충청남도(忠淸南道)와 경상남도(慶尙南道)와 서남해중(西南海中) 모든 섬 일대(一帶)에는 거의 태을주(太乙呪) 소리가 연(連)하게 된지라. 갑인년(甲寅年) 봄에 순천(順天) 장기동(張基東)의 의연(義捐)으로 교실(敎室)을 지어 비로소 본소(本所)의 면목(面目)을 세우니, 이에 교세(敎勢)가 날로 흥왕(興旺)하니라.

14. 교단(敎團)의 기초(基礎)가 확실(確實)히 서게되고, 교세(敎勢)가 날마다 불어나는 것을 본 경석(京石)은 가만히 교권(敎權)을 움켜쥐려는 계획(計劃)을 세워, 먼저 종도(從徒)들과 교도(敎徒)들 사이에 이간(離間)을 붙여 연원(淵源)의 의(誼)를 끊게하고, 다음에는 천후(天后)의 법소(法所)에 주렴(珠?)을 걸어놓고 겉으로는 천후(天后)를 높이는 체 하나, 실상(實狀)은 천후(天后)와 참배(參拜)하는 교도(敎徒)들 사이의 간격(間隔)을 멀게하니, 이에 종도(從徒)들은 경석(京石)의 야심(野心)을 간파(看破)하고 모두 분개(憤慨)하여, 더러는 교문(敎門)을 하직하고 물러가서 지방교도(地方敎徒)들과 연락(連絡)하여 따로 문호(門戶)를 세우기도 하고, 더러는 경석(京石)을 따돌리고 천후(天后)의 법소(法所)를 다른 곳으로 옮기려는 운동(運動)을 하기도 하니라.

15. 을묘년(乙卯年)에 김형국(金炯國)이 보성(寶城) 지방(地方) 교도(敎徒)들과 연락(連絡)하여, 천후(天后)의 법소(法所)를 장성(長城) 필암(筆岩)으로 옮기려고 운동(運動)하다가 마침내 뜻을 이루지 못하였더니, 병진년(丙辰年)에 이치복(李致福)과 채사윤(蔡士允)이 다시 각 지방교도(地方敎徒)들과 연락(連絡)하여 법소(法所)를 원평(院坪)으로 옮기려고 운동(運動)함에, 천후(天后)도 또한 경석(京石)의 발호(跋扈)하는 것을 불쾌(不快)히 여겨 치복(致福)의 운동(運動)에 동조(同調)하시더니, 이윤수(李胤洙)가 경석(京石)의 부탁(付託)으로 천후(天后)께간(諫)하고, 강사성(姜士成)은 경석(京石)의 부탁(付託)으로 천후(天后) 앞에서 치복(致福)의 과실(過失)을 들어서 공격(攻擊)하니, 이에 법소(法所)를 옮기려는 운동(運動)은 실패(失敗)하게 되고, 치복(致福)과 사윤(士允)은 할 일없이 교문(敎門)을 하직하고 물러가니라.

16. 치복(致福)과 사윤(士允)이 떠남에 이 뒤로 본소(本所)에는 종도(從徒)들의 자취가 끊어지고, 오직 경석(京石)이 그 아우들과 더불어 천후(天后)를 모시며 교도(敎徒)들을 응접(應接)하게 된지라. 경석(京石)이 이에 김형규(金炯奎), 문정삼(文正三) 이하 심복교도(心服敎徒) 스물네사람에게 방주(方主)의 임명(任命)을 주어 각지방(各地方)으로 파견(派遣)하여 교도(敎徒)들을 수습(收拾)하고 교권(敎權)을 집중(集中)한 뒤에, 교도(敎徒)들이 천후(天后)께 참배(參拜)하는 길을 막아버리고, 인(因)하여 정사년(丁巳年) 시월(十月)에 경석(京石)이 유람(遊覽)의 길을 떠나니라. 경석(京石)이 떠난 뒤에 천후(天后) 일년동안 교도(敎徒)들을 상대(相對)하지 못하시고 한가(閑暇)한 세월(歲月)을 보내시다가, 무오년(戊午年) 구월(九月) 열아흐렛날 대흥리(大興里)를 떠나사 김제군(金堤郡) 백산면(白山面) 송삼리(松森里) 천종서(千鍾瑞)의 집으로 옮겨가시니라.
 



제삼장(第三章)

제이교단시대(第二敎團時代)

1. 무오년(戊午年) 구월(九月) 열아흐렛날 천후(天后) 대흥리(大興里)를 떠나서 김제군(金堤郡) 백산면(白山面) 송삼리(松森里) 천종서(千鍾瑞)의 집에 머무르시더니, 시월(十月) 중순(中旬)에 강사성(姜士成), 강원섭(姜元燮)이 와서 천후(天后)를 모시고 조종(祖宗)골 강응칠(姜應七)의 집으로 가서 두류(逗留)하시게 하니라.

2. 동지(冬至)달 스무이튿날 천후(天后) 종도(從徒)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너희들이 수화중(水火中)이라도 나를 따르겠느냐' 하사 다짐을 받으시고, 스무닷새날새벽에 치성(致誠)을 올릴 새, 천후(天后) 잔(盞)을 올리시다가 종도(從徒)에게 물어 가라사대 '젯상(祭床)에 술방울이 몇 점이나 떨어졌느뇨?'. 종도(從徒)들이 헤어보고 여쭈어 가로대 '스물두점(二十二點) 이로소이다'. 또 물으시거늘 다시 헤어보고 여쭈어 가로대 '스물석점(二十三點) 이로소이다'. 또 물으시거늘 다시 헤어보니 스물넉점(二十四點)이라. 그대로 아뢰니 천후(天后) 가라사대 '그러하리라' 하시더니, 오정(午正)쯤 되어서 순사(巡使)들이 와서 강사성(姜士成)에게 천후(天后)의 계신 곳을 묻는지라. 응칠(應七)이 천후(天后)께 여쭈어 가로대 '반드시 화(禍)가 있을 듯 하오니, 잠간(暫間) 피(避)하옵소서.' 가라사대 '내가 이미 알았노라. 그러나 이번에는 내가 순(順)하게 받아야 뒷일이 없을지니, 피(避)하는 것이 불가하니라' 하시고 천연(天然)히 앉아 계시더니, 얼마 아니하여 순사(巡査)들이 들어와서 천후(天后)와 응칠(應七)을 체포(逮捕)하여 가니, 대저(大抵) 이때에 차경석파(車京石派)의 간부(幹部) 수십명(數十名)이 목포(木浦) 경찰서에 검거(檢擧)되어, 모든 일을 천후(天后)에게 미루었으므로 드디어 천후(天后)를 체포(逮捕)하게 되니라.

3. 천후(天后) 응칠(應七)과 함께 정읍(井邑) 경찰서(警察署)에서 하룻밤을 지내시고, 이튿날 목포(木浦) 경찰서(警察署)에 구속(拘束)되어 심문(審問)을 받은 결과(結果) 아무 증거(證據)를 잡지 못하여, 응칠(應七)은 섣달 열이튿날 석방(釋放)되고, 천후(天后)께서는 그 이듬해 기미년(己未年) 정월(正月) 초사흩날 석방(釋放)되니라.

4. 이먼저 강응칠(姜應七), 강사성(姜士成), 강운서(姜雲瑞), 강원섭(姜元燮), 양문경(梁文敬), 김재윤(金在允), 김봉우(金奉佑), 백용기(白龍起), 천종서(千鍾瑞), 박종화(朴鍾華), 서문백(徐文伯), 이용기(李用己) 등 열두사람이 법소(法所)를 짓기로 의논(議論)하고, 각기(各己) 성의(誠意)껏 연조(捐助)하여 자금(資金) 칠백원(七百圓)을 모아, 동짓(冬至)달 열여샛날 건축(建築)을 시작하여 기미년(己未年) 윤칠월(閏七月) 열여드랫날 낙성(落成)하고 천후(天后)를 옮기어 모시니, 이로부터 천후(天后) 종도(從徒) 두어사람과 더불어 조용(從容)한 초당(草堂)에 한가히 계시며, 소작답(小作沓) 스물너마지기를 부쳐 농사(農事)나 감독(監督)하시고, 한달에 한 번씩 치성(致誠)을 올릴 뿐이더니, 기미년(己未年) 팔월(八月)에 옥구(沃溝) 근처(近處)에 괴질(怪疾)이 크게 유행(流行)하여 인명(人命)이 많이 죽는 것을 보고, 천후(天后)께 찾아와서 의지(依支)하는 교도(敎徒)가 점차 많아지니라.

5. 전준엽(田畯燁)이 찾아오는 교도(敎徒)들을 수습(收拾)하여 본소(本所) 유지(維持)의 규율(規律)을 세울 것을 청(請)함에 천후(天后) 허락(許諾) 하시거늘, 준엽(畯燁)이 고찬홍(高贊弘), 이근목(李根睦)과 의논(議論)하여 준엽(畯燁)과 근목(根睦)은 충청남도(忠淸南道) 일대(一帶)를 돌고, 찬홍(贊弘)은 임피(臨陂), 옥구(沃溝) 근처(近處)를 돌아서 구월(九月) 초닷새날 본소(本所)로 모여 , 각지방(各地方)을 열다섯 구역(區域)으로 나누어 연례치성(年例致誠)을 갈라맡게 하니라.

6. 찬홍(贊弘)이 포교운동(布敎運動)을 크게 일으키기를 청(請)하건대, 천후(天后) 가라사대 '장차(將次) 너희들에게 찾아오는 자(者)만 거두어 가르치기도 바쁘리라. 이제 새로 포교(布敎)할 바가 아니요, 먼저 수신(修身)으로 근본(根本)을 삼아 부모(父母)를 잘 섬기고 형제간(兄弟間)에 우애(友愛)하며, 남에게 척짓지 말고 농사(農事)를 힘써 때를 기다리라. 포교(布敎)에는 오는 자는 오는대로 보고, 가는 자는 가는대로 보아 그들의 뜻대로만 맡겨두라' 하시니라.

7. 경신년(庚申年) 팔월(八月)에 고찬홍(高贊弘)이 여쭈어 가로대 '신망(神望)이 불여인망(不如人望)이라 하오니, 인망(人望)을 얻으려면 어찌 하오리까?' 천후(天后) 가라사대 '서(西)쪽으로 가면 알일이 있으리라.' 찬홍(贊弘)이 이에 옥구(沃溝) 서(西)쪽으로 돌다가 박종오(朴鍾五)를 만나 함께 포교(布敎)에 종사(從事)하니, 이로부터 그 지방(地方)에 교세(敎勢)가 크게 일어나니라.

8. 신유년(辛酉年) 대순절(大巡節) 치성(致誠)에 참배(參拜)한 교도(敎徒)가 백여명(百餘名)이라. 천후(天后) 초저녁부터 제수숙정(祭需肅整)을 재촉(催促)하시며 매양(每樣) 바쁜 기색(氣色)을 띠시고, 치성(致誠)을 마친 뒤에는 교도(敎徒)들에게 속(速)히 돌아가라고 재촉(催促)하시니, 교도(敎徒)들은 정신(精神)없이 흩어져 돌아갔더니 이른 아침에 김제(金堤) 경찰서(警察署) 순사대(巡査隊)가 와서 온 집안을 수색(搜索)하고 돌아가니라. 이때는 대개 왜정당국(倭政當局)에서 증산계(甑山系) 교단(敎團)을 음모결사(陰謀結社)라고 지목(指目)하여 크게 탄압(彈壓)하는 중이라. 많은 교도(敎徒)가 모여있으면 검속(檢束)을 면(免)치 못할 것이므로, 천후(天后) 이 기틀을 알으시고 미리 해산(解散)하게 하시니라.

9. 시월(十月) 보름날 밤에 치성(致誠)을 올릴새, 참배(參拜)한 교도(敎徒)가 삼백여명(三百餘名)이라. 또한 당국(當局)의 주목(注目)을 끌게 되었더니, 마침 안개가 천지(天地)를 덮어서 지척(咫尺)을 분별(分別)치 못하게 되었으므로, 모였던 교도(敎徒)들이 모두 무사(無事)히 돌아가니라.

10. 유일태(劉一太)는 정미년(丁未年)부터 우연(偶然)히 치통(齒痛)을 얻어, 어느 의생(醫生)의 말을 듣고 고총(古塚)의 해골(骸骨)을 불살라서 그 재를 바름에 치통(齒痛)이 낫지않고 고통(苦痛)이 더욱 심(甚)하더니, 계축년(癸丑年) 봄에 입교(入敎)하여 열심(熱心)으로 송주(誦呪)하니 두어달 동안 나았다가 다시 발작(發作)하거늘, 대흥리(大興里)에 가서 천후(天后)를 뵙고 고쳐주시기를 애걸(哀乞)하니 천후(天后) 가라사대 '네가 일찍이 백골적악(白骨積惡)한 죄(罪)가 있으니, 아직도 십년(十年)을 더 앓아야 하리라' 하신지라. 일태(一太)는 집에 돌아와서 일심(一心)으로 믿고 십년(十年)을 기다렸으나 종시(終是) 낫지 아니한지라. 임술년(壬戌年) 겨울에 조종(祖宗)골에 와서 천후(天后)를 뵈옵고 다시 애걸하니, 천후(天后) 독한 술 한 대접과 소갈비 다섯 대를 주사 대번에 먹게하시니, 이로부터 일태(一太)의 치통(齒痛)이 완치(完治)되니라.

11. 유일태(劉一太)는 딸 다섯만 낳고 아들은 두지 못하였더니, 계해년(癸亥年) 칠월(七月)에 천후(天后)께 와 뵈이니 천후(天后) 일태(一太)의 지내는 형편(形便)을 물으시거늘, 일태(一太) 대하여 가로대 '별 연고(緣故)는 없사오나 재산(財産)도 없고 자식(子息)도 없으매 죽고만 싶사옵니다.' 천후(天后) 꾸짖어 가라사대 '자식(子息)없고 재산(財産)없다고 죽는단 말이냐? 빨리 집으로 돌아가라' 하시는지라. 일태(一太)는 다시 말씀치 못하고 돌아왔더니, 이로부터 입태(立胎)되어 이듬해인 갑자년(甲子年)에 아들을 낳으니라.

12. 팔월(八月) 보름께 김수응(金壽應)이 모친(母親) 전대윤(田大潤)을 따라 술과 안주를 가지고 와서 천후(天后)께 올리니, 천후(天后) 수응(壽應)더러 물어 가라사대 '네 아우 수남(壽南)이는 어데 있느냐?' 대(對)하여 가로대 '오년(五年) 전에 일본(日本)에 간 뒤로 이제까지 소식(消息)이 없나이다.' 천후(天后) 마루로 나가사 동편(東便)을 향(向)하여 큰 소리로 수남(壽南)을 세 번 부르시고 들어오사 술을 마시시니라. 대저 수남(壽南)은 기미년(己未年) 가을에 일본(日本) 동경(東京)에 가서 어느 은행(銀行)에 취직(就職)하고, 또 어느 일본(日本) 여자(女子)와 결혼(結婚)하여 생활(生活)이 요족(饒足)하게 됨에 귀국(歸國)할 생각이 전연없고, 그곳에서 안도낙업(安堵樂業)하여 집에 편지(便紙)도 끊고 지내더니, 이날 오전(午前)에 은행(銀行)에 가서 사무(事務)를 보던 중 돌연(突然)히 귀국(歸國)하고 싶은 생각이 불일 듯 하여 마음을 걷잡을 수 없는지라. 이에 모친(母親)의 병보(病報)가 왔다는 핑계로 두 주일(週日) 동안 근친휴가(覲親休暇)를 얻어가지고 나와서, 행장(行裝)을 수습(收拾)하여 오후(午後) 여섯시 십오분발 동경역(東京驛) 하관행(下關行) 열차(列車)로 발정(發程)하여 이튿날 저녁에 하관역(下關驛)에 내리니, 마침 동경대진재(東京大震災)의 소동(騷動)이 일어난지라. 집에 돌아와서 모친(母親)과 형(兄)의 말을 듣고 생각하니, 은행(銀行)에서 귀국(歸國)하고 싶은 생각이 일어나던 시간(時間)이 곧 천후(天后) 마루에서 동(東)쪽을 향(向)하여 큰 소리로 수남(壽南)을 세 번 부르시던 시간이더라.

13. 乙丑年(을축년) 九月(구월)에 고민환(高旻煥)이 큰 종기(腫氣)를 앓아 위독(危篤)하더니, 마침 이웃 마을에 사는 김내원(金乃元)이 천후(天后)께 와뵈이니, 천후(天后) 물어 가라사대 '고민환(高旻煥)이 종기(腫氣)로 고통(苦痛)하느냐?' 내원(乃元)이 대하여 가로대 '알지 못하나이다.' 천후(天后) 돈 삼원(三圓)을 내원(乃元)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네 손이 큰 약(藥)손이니, 이길로 돌아가서 네 손으로 민환(旻煥)의 종처(腫處)를 만져주고, 이 돈으로 개 한 마리를 사서 소복케 하라.' 내원(乃元)이 돌아와 민환(旻煥)에게 가서 그대로 함에 민환(旻煥)의 종기(腫氣)가 완쾌(完快)하게 되니라.

14. 병인년(丙寅年) 삼월(三月) 초닷새날 종도(從徒) 오륙인(五六人)이 모인지라. 천후(天后) 강응천(姜應千)을 부르사 일러 가라사대 '금년(今年)에는 이종(移種) 비가 없으리니, 이제 너에게 신농씨공사(神農氏公事)를 붙여 이종(移種) 비를 빌게 하노라' 하시니, 응천(應千)이 일어나서 상사가(歌)를 부르며 이종(移種)하는 형용(形容)을 짓는 순간 구름이 크게 일어나며 비가 내리기 시작(始作)하여 일주야(一晝夜)를 계속(繼續)한지라. 농촌(農村)에서는 이 빗물을 가두어 두었다가 이종(移種)하게 되니라.

15. 삼월(三月) 초여드렛날 천후(天后) 콩씨를 가리시더니, 강운서(姜雲瑞)가 들어오거늘 물어 가라사대 '네 이름이 무엇이냐?' 대하여 가로대 '운서(雲瑞)로소이다.' 다시 이름을 물으시니 대하여 가로대 '도석(道碩)이로소이다.' 천후(天后) 가라사대 '네 이름이 가장 좋도다' 하시고, 이로부터 성령(聖靈)의 접응(接應)을 받어 칠월(七月)까지 신정(神政)을 행(行)하시니라.

16. 아흐렛날 천후(天后) 고찬홍(高贊弘), 전준엽(田畯燁)등 여러 종도(從徒)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세상(世上)사람이 죄(罪)없는 자(者)가 없어 모두 저의 죄(罪)에 제가 죽게 되었나니, 내가 이제 천하(天下)사람의 죄(罪)를 대신(代身)하여 건지리라' 하시고, 인(因)하여 청수(淸水) 한 그릇을 떠놓고, 그 앞에 바둑판을 놓으신 뒤에 담뱃대로 바둑판을 치시며 종도(從徒)들을 명하사 태을주(太乙呪)를 읽게 하시더니, 천후(天后) 문득 혼도(昏倒)하사 한나절 동안이나 자믈으셨다가 깨어나서 종도(從徒)들에게 밖에 나가 하늘을 보라 하시거늘, 모두 나가보니 한 자 넓이나 되는 검은 구름이 하늘 남(南)쪽으로부터 북(北)쪽까지 길게 뻗쳤더라.

17. 스무이튿날 천후(天后) 강원섭(姜元燮)과 강사성(姜士成)을 명하사 고찬홍(高贊弘)을 부액(扶腋)하여 데려오게 하여, 찬홍(贊弘)과 사성(士成)으로 하여금 바둑을 두게 하시고 조금 있다가 승부(勝負)를 물으시니 사성(士成)이 여쭈어 가로대 '소자(小子)가 졌나이다' 하거늘, 가라사대 '너희 두 사람은 갇혀야 하리라' 하시고 인(因)하여 찬홍(贊弘)과 사성(士成)을 방(房)안에 가두었다가, 그 이튿날 아침에 다시 두 사람으로 하여금 바둑을 두게 하신 뒤에 승부(勝負)를 물으시니 사성(士成)이 또 졌다 하거늘, 천후(天后) 가라사대 '그리하여야 일이 되리라' 하시고 내어 보내시니라.

18. 스무나흩날 천후(天后) 전준엽(田畯燁)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 조왕(爬王)일을 보아야 할터인데, 네가 아니면 감당(堪當)치 못하리라' 하시고, 인(因)하여 준엽(畯燁)의 무릎을 베고 누워 두어시간을 울으신 뒤에 준엽(畯燁)의 몸을 검사(檢査)하시고, 데리고 부엌으로 나가사 솥에 물을 가득히 부으시고 준엽(畯燁)을 솥 앞에 세우시고, 담뱃대 두 개를 준엽(畯燁)의 머리 위에 십자형(十字型)으로 이게 하시고, 종도(從徒)들로 하여금 마당에 늘어서서 농부가(農夫歌)를 부르게 하신 뒤에 하늘을 보라 하시거늘, 모두 보니 구름 수십(數十) 쪼각이 너즈런히 날려 들어오는지라. 천후(天后) 가라사대 '이렇게 하여야 먹고 사느니라' 하시고, 인(因)하여 준엽(畯燁)으로 하여금 재정(財政)을 관리(管理)하게 하시더니, 이로부터 여자교도(女子敎徒)가 크게 일어나며 성의금(誠義金)이 많이 들어와서 본소(本所)의 유지(維持)가 넉넉하여 지니라.

19. 스무닷새날 박종오(朴鍾五)로 하여금 유기(鍮器)대야에 물을 가득 붓고 그 위에 담뱃대를 가로놓고, 물 속에 김치주발을 넣은 뒤에 머리에 이고있게 하시고, 천후(天后) 그 김치조각을 집어서 교실(敎室) 서까래 끝 네 곳에 붙이고, 가라사대 '풍운(風雲)이라야 조화(造化)가 있겠거늘 어찌 풍운(風雲)이 없느뇨?' 하시고 담뱃대로 두르시니 문득 남풍(南風)이 크게 일어나고 흰구름이 사방(四方)에서 피어오르거늘, 다시 가라사대 '검은 구름이라야 조화(造化)가 있겠거늘 흰구름을 무엇에 쓰리요' 하시니 과연(果然) 검은 구름이 일어나서 하늘을 가리우고, 인(因)하여하여 비가 내리니라.

20. 사월(四月) 초닷새날 고찬홍(高贊弘), 유일태(劉一太), 이근목(李根睦), 고권필(高權必) 네 사람이 교실(敎室) 문(門)을 바를 새, 마침 날이 심(甚)히 더워서 땀이 흐르는지라. 천후(天后) 보시고 가라사대 '너희들이 저렇게 땀을 흘리니, 서늘하게 하여 주리라' 하시고, 냉수(冷水) 한 대야를 가져오라 하사 수건(手巾)에 물을 적시어 네 사람의 낯을 향(向)하여 뿌리시더니, 문득 땅으로부터 서늘한 기운(氣運)이 일어나서 네 사람의 땀이 개이고, 온 몸이 시원하여 문(門)을 다 바르도록 더위를 잊어버리니라.

21. 초여드랫날 천후(天后) 종도(從徒)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금년(今年)은 큰 흉년(凶年)이라. 비가 없으리니 내가 비를 주어야 농사(農事)를 짓게 되리라' 하시고, 풍물(風物)을 가져오라 하사 굿을 치게 하시며 가라사대 '수농부(首農夫)가 있어야 농부가(農夫歌)를 부르리라' 하시더니, 문득 강삼만(姜三萬)이 들어오거늘 천후(天后) 수건(手巾)을 삼만(三萬)의 머리에 씌우시고 시천주(侍天呪) 세 번을 읽히시니, 삼만(三萬)이 주문(呪文)을 외우다가 이어서 농부가(農夫歌)를 부르는지라. 천후(天后) 가라사대 '농부(農夫)는 비를 맞아야 하느니라' 하시고, 삼만(三萬)과 여러사람의 몸에 물을 뿌려 모두 옷이 젖게 하신 뒤에 각기 집으로 돌려보내시며 가라사대 '너희들은 곧 돌아가서 논 물고를 막으라. 이번 비에 이종(移種)을 못하면 논이 묵으리라' 하시거늘 모두 바삐 돌아가서 물고를 막았더니, 그 이튿날 비가 많이와서 이 비로 이종(移種)하게 되니라. 이뒤로 매양(每樣) 가뭄이 심할 때마다 천후(天后) 신정(神政)을 행(行)하여 비가 오게 하심이 칠월(七月)까지 무릇 일곱 번이더라.

22. 열흘날 천후(天后) 강원섭(姜元燮), 강사성(姜士成), 서인권(徐仁權), 서화임(徐化任), 이근목(李根睦) 등을 데리고 대흥리(大興里)에 가실 때, 정읍군(井邑郡) 우수면(雨水面) 초강리(楚江里) 연주평(延主平) 박노일(朴魯一)의 집에서 하루를 쉬시고, 이튿날 다시 떠나 대흥리(大興里)에 이르사 차경석(車京石)의 집 옆 버드나무 아래에 교자(轎子)를 멈추시고 차윤경(車輪京)을 크게 부르시니, 윤경(輪京)이 이르거늘 교자(轎子) 안으로 들어오라 명(命)하시되 윤경(輪京)이 듣지 아니한지라. 인(因)하여 신대원(申大元)의 집에 처소(處所)를 정(定)하시고, 그 이튿날 남복(男服)으로 교자(轎子)를 타시고 경석(京石)의 집에 이르시니 경석(京石)이 대문(大門)을 굳이 닫고 들이지 아니하며, 여방주(女方主) 이달영(李達榮)이 나와서 손으로 천후(天后)를 치거늘, 천후(天后) 꾸짖어 가라사대 '일년(一年)도 살지 못할 년이 감(敢)히 이렇듯 무례(無禮)하느냐' 하시더니, 그 뒤 정묘년(丁卯年) 정월(正月)에 과연 달영(達榮)이 음독자살(飮毒自殺) 하니라.

23. 오월(五月) 초사흗날 석양(夕陽)에 종도(從徒)들을 명(命)하사 마당을 깨끗이 쓸게 하시고, 천후(天后) 겉은 붉고 안은 푸른 저고리를 입고 마당에 나와서시며 종도(從徒)들에게 해를 보라 하시거늘, 모두 보니 해 둘레에 어리었던 붉은 기운(氣運)이 띠 모양으로 길게 뻗쳤거늘, 모두 이상(異常)히 여겨 천후(天后)를 보니 천후(天后) 오른 손으로 붉은 옷고름을 들고 계시더라. 천후(天后) 가라사대 '이것이 표적(表跡)이니라' 하시고, 마당에 멍석을 펴게 하신 뒤에 그 위에 누어 뒹구시니, 천후(天后)의 몸이 한 번씩 뒹구시는 대로 원 해에서 해 한 개씩이 빠져나와 해 열두 개가 되어서 일자(一字) 모양(模樣)으로 하늘에 널려 있는데, 천후(天后) 뒹구시며 저고리를 번갈아 뒤집어 입으시니 저고리 빛이 붉을 때에는 붉은 해가 나오고, 푸를 때에는 푸른 해가 나오더라.

24. 열이렛날 박종오(朴鍾五), 고영(高英), 김종기(金鍾基), 강원섭(姜元燮), 주종한(朱鍾翰), 강사성(姜士成),전준엽(田畯燁), 서인권(徐仁權), 문인원(文仁元), 백종수(白鍾洙), 송사일(宋士一), 박남규(朴南奎), 진희만(陣希萬), 이석봉(李石峯), 김수열(金壽烈), 김수응(金壽應), 고찬홍(高贊弘), 이용기(李用己), 김재원(金在元) 등 열아홉 사람을 데리고 대흥리(大興里)를 가실 때, 정읍(井邑) 읍내(邑內)에 이르러 고영(高英), 주종한(朱鍾翰), 백종수(白鍾洙), 김종기(金鍾基), 김수응(金壽應), 문인원(文仁元), 김재윤(金在允) 등 일곱 사람은 구미동(龜尾洞) 김수남(金壽南)의 집에 머물러 있게 하시고, 그밖에 열두 사람을 데리고 대흥리(大興里)에 이르사 신대원(申大元)의 집에 처소(處所)를 정(定)하시고, 이날 저녁에 전준엽(田畯燁)을 명(命)하여 마당에 멍석을 펴게 하시고, 천후(天后)께서 안에는 누런 저고리와 겉에는 은색(銀色) 저고리를 껴입으시고 마당에 나와서서, 준엽(畯燁)에게 달을 보라 하시며 담백대로 하늘을 향(向)하여 휘두르시니, 서북(西北) 쪽으로부터 채색(彩色) 구름이 떠와서 달을 에워싸다가 한 편(便)이틔워져 다 싸지 못하고 동(東) 쪽으로 향(向)하여 떠나가고, 다시 담뱃대를 휘두르시니 채색(彩色) 구름이 다시 와서 전과 같이 달을 싸려다가 싸지 못하고 떠나가더니, 세 번만에 비로소 달을 다 에워싸는지라. 천후(天后) 가라사대 '이렇게 하여야 일이 되리라' 하시니라.

25. 그 이튿날 오전(午前)에 천후(天后)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을 읽으시니 거은 구름이 대원(大元)의 집을 한 식경(食頃)이나 에워쌌다가 개이거늘 천후(天后) 종도(從徒)들에게 하늘을 보라 하시니, 모두 보니 서(西) 쪽 하늘에서 검은 구름 두 가닥이 일어나서 한 가닥은 무수(無數)한 사람의 형상(形相)을 이루어 남(南) 쪽으로부터 동(東) 쪽까지 둘러서 천사(天師)의 묘각(墓閣) 상공(上空)에 멈추고, 한 가닥은 무수(無數)한 화분(花盆) 형상(形相)을 이루어 북(北) 쪽으로부터 동(東) 쪽까지 둘러서 또한 묘각(墓閣) 상공(上空)에 멈추고, 이 두 가닥 구름머리의 사이에 큰 고목(古木) 형상(形相)을 이룬 구름이 서있고, 그 곁에 큰 눈사람 형상(形相)이며 천후(天后)의 형모(形貌)와 같은 또 한 구름이 사람의 배 위에 걸터앉은 모양을 이루었으며, 그 곁에 한 작은 사람이 천후(天后)를 부액(扶腋)하고 서있는 형상(形相)을 이룬 구름이 있어 두어 시간(時間)을 그대로 계속(繼續)하여 있거늘, 천후(天后) 박종오(朴鍾五)에게 물어 가라사대 '저것이 무엇이냐?' 종오(鍾五) 대(對)하여 가로대 '눈사람의 형상(形相)은 천사(天師)요, 또한 형상(形相)은 천후(天后)요, 부액(扶腋)한 사람의 형상(形相)은 고영(高英)이요, 그 나머지는 모두 종도(從徒)들이로소이다.' 천후(天后) 가라사대 그러하다 하시니라.

26. 그 이튿날 천후(天后) 종도(從徒)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오늘은 선경구경(仙境求景)이나 하여보자.' 하시고 종도(從徒)들에게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을 읽히시니, 하늘 동남(東南) 쪽에 문득 깨끗한 구름 무더기가 나타나서 인간에서 보지못한 선경(仙境)의 형상(形相)을 이루어, 기이(奇異)한 산수(山水)와 아름다운 화초(花草)와 훌륭한 집과 이상(異常)한 새짐승 모양(模樣)이 완연(宛然)히 참과같이 보이더니, 대원(大元)의 사위 유모(柳某)가 앞으로 지나가거늘 천후(天后) 성명(姓名)을 물으시니 유모(柳某) 대답(對答)치 않고 가는지라. 천후(天后) 탄식(歎息)하여 가라사대 '양반(兩班)이 집안을 망친다 하더니 과연(果然)이로다' 하시거늘, 모두 다시 하늘을 보니 그 구름이 없어졌더라. 조금 뒤에 천후(天后) 또 가라사대 '심심하니 선경구경(仙境求景)이나 다시 하자' 하시고, 종도(從徒)들로 하여금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을 읽게 하시니, 구름 무더기가 다시 나타나서 전(前)보다 더욱 기묘(奇妙)한 형상(形相)을 이루어 이 구경(求景)으로 하루를 지내니라.

27. 스무날 오후(午後)에 천후(天后) 경석(京石)의 집에 들어 가시니, 경석(京石)이 맞아들이고 식교자(食轎子)를 올려 식사(食事)를 권(勸)하는지라. 천후(天后) 경석(京石)을 크게 부르시니 경석(京石)이 가로대 '내가 전날 경석(京石)이 아니요, 이제는 만인(萬人)의 두목(頭目)이니 전날과 같이 경홀(輕忽)한 말을 버리사이다' 하거늘, 천후(天后) 꾸짖어 가라사대 '네가 천자(天子)라 하나 헛천자(虛天子)니라' 하시고, 식상(食傷)에 놓인 큰 배를 들어 경석(京石)의 데수기를 치시니 경석(京石)은 문(門)밖으로 피(避)하여 나가고, 여방주(女方主)들이 달려들어 천후(天后)를 끌어내는지라. 천후(天后) 이에 종도(從徒)들을 데리고 돌아오시니라.

28. 스무닷새날 온 세계인류(世界人類)의 죄업(罪業)을 풀고 새로운 행복(幸福)을 빌기 위(爲)하여 천지(天地)에 크게 기도(祈禱)하실 때, 동서남북(東西南北) 마당에 각기 단(壇)을 쌓고 푸른 기(旗)와 흰 기(旗)와 붉은 기(旗)와 검은 기(旗)를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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