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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역사전쟁: 진실과 거짓의 전쟁 (1)

3. 역사전쟁: 진실과 거짓의 전쟁 (1) 1

열린마당  활연관통 활연관통님의 글모음 쪽지 2016-08-08 14:24 5,145
앞글에서 북한 전체주의의 연원에 대한 진실을 밝혀 그것을 바로잡았으니 
이제 그와 관련해 뒤바뀌어 있던 진실들을 하나씩 제자리에 정립시켜 보겠습니다.


우선 첫 번째로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관련한 역사전쟁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죠.

역사전쟁의 본질은 진실과 거짓의 전쟁입니다.
어느 교과서가 진실을 말하고 어느 교과서가 거짓을 말했을까요?

앞에서 말한 북한 전체주의 연원에 대한 사실을 인정한다면,
그리고 현재 북한 전체주의 체제(북한 정권)의 악마성(인민학살, 핵으로 세계평화 위협 등)을 인정한다면, 
북한 전체주의의 실상을 은폐하거나 은근이 옹호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교과서가 
바로 거짓을 말하는 교과서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기준으로 본다면 현 8종 교과서는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교학사와 그 외 7종 검정교과서로 말이죠. 

7종 검정교과서들은 하나같이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대한민국을 폄훼하고 
대한민국을 건국한 이승만대통령을 공보다 과에 치중해 부정적으로 묘사합니다.
북한정권에서야 공산주의가 아닌 자유민주주의로 대한민국을 건국한 이승만은 원수와도 같기 때문에 
이승만을 증오한다고 볼 수 있겠지만 그런 북한의 관점과 비슷한 우리나라 역사학자들의 정체는 뭘까요. 

몇 년 전 우리 헌법('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도 나오는 '자유민주주의'를 교과서에 그 용어를 넣으려고 하자 
그에 반발해 역사교과서 추진위원 8명이 사의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교과서에 그냥 ‘민주주의’라고 적어 놓으면 인민민주주의의 내용으로 해석해 가르치기 편하지만 
‘자유민주주의’라고 딱 못박아놓으면 그들이 원하는 대로 가르치기 곤란하니 일어난 일이 아닐까 추정해봅니다. 
http://www.polinews.co.kr/news/article.html?no=83753

또한 우리 민족을 처음으로 굶주림에서 벗어나게 한 박정희대통령
(쌀 생산 4,000만 석을 돌파하여 쌀을 자급자족하는 데 성공한 것이 1977년이었다. 이 해에 박정희는 특별방송을 통해 “100% 순쌀밥을 먹어도 좋고  막걸리 제조도 허가한다”고 발표했다. 초근목피, 보릿고개로 상징되던 이 나라에서 처음으로 ‘흰 쌀밥’을 마음껏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미국의 정치학자 로버트 달은 각 나라가 국민소득 4,000달러에서 7,000달러 사이에 정치적 고도화와 민주주의 혁명이 있었다고 분석한다. 즉, 참다운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행하려면 민주주의를 가능케 하는 경제적·산업적 기반과 민주주의를 운영할 수 있는 중상층의 형성, 그리고 국민들의 민주시민 의식이 필수적이란 뜻이다. (중략) 니콜라스 크리스토프는 다음과 같은 평을 내놓는다. “박정희 정권은 비록 민주화 운동을 억압했지만 경제발전을 통해서 역설적이게도 오늘날의 한국 다원주의의 근간이 되는 중산층을 창출함으로써 한국 민주주의에 크게 기여했다.” http://www.future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806)
에 대해서도 공보다 과를 지나치게 많이 서술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7종 검정교과서가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집필진들이 대부분 기존 역사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좌편향 단체
(한국역사연구회, 민족문제연구소, 역사문제연구소, 전교조, 전국역사교사모임)
의 소속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래 블로그표를 보니 오마이뉴스 시민기자하셨거나 국가보안법 폐지 선언에 참여하셨던 
교사분들도 집필진에 있더군요.
(8종 교과서 집필진의 실체 http://blog.daum.net/bk1981/14724참고)

상황이 이러하니 교학사교과서 채택방해사건은 기존 역사교과서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그들의 철밥통을 지키기 위한 집단행위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외쳤던 ‘친일교과서 반대’는 남들의 동의를 얻어낼 명분에 불과했구요. 
당연히 안중근을 테러리스트라고 하는 내용은 없었습니다. 모두 거짓말이었죠. 
교과서가 공개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읽어보지도 않고 지어낸 말이었지만 
언론은 그들의 말을 사실인양 보도했습니다.

그에 관해 박성현님이 만든 영상 하나 감상해보시죠.


 



위 영상에도 나오지만 7종 검정교과서 중 일부는 베트남에 파병된 우리 국군이
양민을 학살했다는 내용을 아무런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실어 놓았습니다.

아래 영상을 잘 봐주세요.  양민학살과 그에 더해 4.3사건과 5.16에 대한 진실도 나옵니다.


 



양민학살에 대한 자료를 찾다가 아래 블로그에 달린 댓글이 진실추구에 좋은 글인 것 같아 인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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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randomworld.blog.me/220446977348

존손 2015.11.23. 01:37

린선사 학살사건 보도는 단지 몇몇사람들의 일방적인 주장만 기사화되었고,
그런 주장을 입증할 물적증거나 가해자측 진술이나 증언이 전혀없는 것으로
객관적으로 신뢰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기사입니다.

해당사건과 관련하여,
항상 근거로 들고오는 한국군 증오비
http://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tissu74&logNo=220547070768&navType=tl
그리고,남베트남군 레인저와 맹호부대 마크
http://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tissu74&logNo=220547079763&navType=tl

오랫동안 군사,무기,전쟁에 관심이 많아서 수많은 관련사진을 봐왔던 시각에서
베트남레인저를 나타내는 조형물이라고 판단이 됩니다.
이는 고증을 잘못할수도 있으니, 결정적인 반대증거라고 하긴 어렵지요.

하지만, 기사내용중,
"1966년 2월 26일 아침. 평화로운 베트남의 한 마을에 포탄이 날아들었다. 이내, 수많은 헬기가 마을의 하늘을 가득 메웠고, 녹색 전투복을 입은 한국군이 마을로 밀려들어왔다. 그들은 마을 사람들을 모두 불러모아 잔인하게 살해했다. 380여명을 죽이는 데는 1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66년에 주목해야 합니다.

한국군 휴이 UH1 일로코이 최초도입 연도.http://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tissu74&logNo=220547083496&navType=tl

저 기사의 내용에 등장하는 66년에는 한국군에 헬기가 없었고, 68년이 되어서야 최초로 작전헬기를 도입합니다.이런 몇가지 근거로 해당기사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인용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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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동영상에서 우리 국군이 양민학살한 증거를 하나라도 말해보라는 권희영교수님의 말에
아무런 근거도 제시하지 못하는 사람이 주진오교수인데 이 사람은,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사실을 왜곡하고 명예훼손했던 '백년전쟁'이라는 영상물에도 나옵니다.
('사실왜곡', '명예훼손' 이란 표현은 법원에서 백년전쟁을 보고 내린 판단입니다.)

‘백년전쟁’이 거짓과 왜곡으로 점철되어 있는 것을 아직 모르시는 분들이 많더군요.

나를 미워하는 누군가가 내가 하지도 않은 짓을 내가 했다고 뒤집어 씌워서 모욕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게 된다면 기분이 어떨까요. 억울하고 분통터지지 않을까요.

이런 억울함은 잠시만 겪어도 인생에서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실제 그런 일을 겪은 분의 일화가 있어 잠시 인용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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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시작)

한명숙은 크리스챤아카데미 사건을 중앙정보부의 고문 조작 사건이라고 주장해왔다. 2006년 3월 24일 당시 총리로 지명된 그녀가 국무조정실 홈페이지에 올린 ‘한 총리 지명자의 삶 고문과 절망’이라는 글을 인용하면 이러하다.

“크리스챤 아카데미 사건으로 나는 중앙정보부에 끌려갔다.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그때의 두려움으로 손이 떨린다. 나는 정말, 정말, 정말 그 모멸의 순간이 영원히 내 기억에 지워져 고문이라는 범죄를 알기 그 이전의 나로 돌아가고만 싶다. 나는 아직도 가끔 하나님께 나를 고문했던 그들을 진정으로 용서해 달라고 기도를 드린다. 하지만 아무리 짓이겨도 지워지지 않는 문신처럼 고문의 기억은 여전히 내 상념의 어두운 한 모서리에 우두커니 숨어 있다.온 몸이 꽁꽁 묶인 채 밤새도록 구타를 당했다. 밤과 낮을 구별할 수 없었고 내가 살아 있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온 몸은 피멍이 들어 부어올랐고 부은 피부는 스치기만 해도 면도날로 도려내는 듯한 고통을 주었다. 귓전에 울려오는 욍욍거림 속에 나를 고문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속삭이듯 아스라하게만 들려왔다. 셀 수 없을 만큼 정신을 잃었고 차라리 그 순간이 행복했다.태어나 처음으로 죽음을 생각했다. 그리고 어쩌면 난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고문의 고통보다 더 크게 나를 짓눌렀다. 그들이 나에게 요구한 것은 단 하나였다. ‘빨갱이’임을 실토하라는 것이었다. 아! 나는 패배했다. 나의 믿음과 나의 각성과 나의 정의감과 내가 알고 있던 모든 진실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인간의 믿음은 얼마만큼 우습고 허약한 것인가?”

http://blog.naver.com/jmw8282/140132516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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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서점에 들러 책 한 권을 샀다. 1980년 퇴임할 때까지 10여 년간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에서 수사관으로 일했던 이기동 씨가 쓴『남산: 더 비하인드 스토리』 라는 책이다. 그 책에는 이 씨가 남산의 대공수사국에서 일하던 시절의 대공수사관련 비화들이 실려 있다. 이 책에 실려 있는 수사 비화 가운데 필자 혼자만 알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대목이 있어서 소개한다.

필자 혼자만 알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대목이란 1979년에 보도되었던 크리스천 아카데미 사건 관련자 한명숙 씨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 책 37~47쪽에 실려 있는 이 씨의 서술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최초로 연행한 주요 핵심 대상은 세 사람, 바로 이우재(당시 43세: 전 한나라당 국회의원 및 마사회회장), 신인령(당시 35세: 전 이화대학총장), 한명숙(당시 35세: 전 국무총리) 간사였다.…나는 그들 중 한명숙 간사를 담당할 수사관이었다.…병치레한 듯한 가냘픈 몸매에 누렇게 뜬 얼굴로 진술하는 그녀의 모습에 ‘아무런 용공혐의도 없는 여인을 연행해 무언가 잘못된 심문을 하는 게 아닌가?’ 하고 나는 잠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은 판단이었다.

나는 그녀의 철저한 위장전술에 놀아난 것이었다.

그녀는 대학 졸업 후 노동자를 위한 사회 저항 운동가로 변신을 시도, 중학교 졸업장을 들고 서울 영등포에 있는 A공장에 취업해 관악구 봉천동 산꼭대기 판자촌에 자취방을 얻고 공장 직공들과 똑같은 생활을 시작했다. 그녀는 자기의 뜻에 동조한 여공들을 자신의 자취방으로 끌어들여 ‘우리는 회사를 위해 밤낮으로 죽도록 일만 하는데 급여는 쥐꼬리 만큼밖에 못 받는다’, ‘사장은 호화주택에 살면서 자식들을 유학시킨다더라’, ‘왜 우리가 희생해서 사장만 배부르게 하는가’ 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들을 세뇌시켰다.

똑똑하고 머리가 비상하다고 판단되는 여공을 골라 그녀의 자취방에서 함께 생활하게 하면서 제2단계 의식화 교육에 돌입했다. 그녀는…‘우리가 이렇게 죽도록 일하면서 회사로부터 천대받는 것은 이 사회 제도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우리의 실상을 공장 밖의 세상에 알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죽기를 각오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등의 주장을 펼치면서 여공들에 철저한 정신무장을 시켰다. 이로 인해 ‘의식화’된 여공들이 점차 늘어났고 이들은 회사의 강력한 저항집단으로 성장해 나갔다.

여공들은 노임을 올려달라는 협상을 시작으로 하여 작업을 중단하기에 이르렀고 급기야는 공장 옥상으로 올라가 미리 준비한 플래카드를 흔들어 대는 것으로 드디어 언론을 통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경찰력이 동원되고 충돌이 시작되면 한명숙 그녀는 종적 없이 A회사에서 사라졌다.

다음 B회사에서도 그녀의 시도는 계속되었고 그녀와 같은 사회 저항 운동가들로 인해 회사에서부터 심한 노사분쟁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1975년 후반기 한명숙은 노동운동 현장에서의 활동을 접고 크리스천 아카데미에서 이우재· 신인령 등과 합류했다. 그들 간사 3인은 그곳 숙소 등에서 아카데미 수강생들에 대한 사회주의 ‘이념교육’방향 등에 대한 철저한 토론을 통해 결속했다. 그 해 어느 날인가는 3인이 강원도 강릉 근처에 사는 은퇴한 좌파 노학자 김00 교수를 찾아가 그로부터 사회주의 이론 철학에 대한 강의를 듣고 상경하기도 했다.

[크리스천 아카데미] 사건에 대한 법정에서의 몇 회째 공판이었던가? 나는 법정 검사석 바로 아래 좌석에 앉아 재판 진행을 지켜보고 있었다.…내가 담당했던 피고 한명숙의 차례, 그녀는 진술 도중 갑자기 한 발짝 앞으로 걸음을 옮기고 포승으로 묶인 두 손을 좌우로 흔들면서 재판부를 향해 말했다.

‘제가 정보부 남산 지하실에서 심한 고문을 당했는데 그때 고문당한 저의 좌측 어깨를 좀 봐 주십시오’하는 것이 아닌가? 재판장이 그녀에게 ‘어깨를 어떻게 고문당했다는 말이오?’라고 묻자, 그녀는 나를 향해 ‘저기 검사 밑에 앉아 있는 내 담당 수사관이 담뱃불로 내 왼쪽 어깨를 지져 상처가 있으니 한 번 보십시오’라고 하지 않는가?

청천벽력! 이때 재판을 참관한 일부 방청객들이 나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와! 저 새끼 죽여라, 저 남산 고문자 죽여!’하고 들고 일어섰다.…그로부터 20분 후 서울대학교병원 외과 과장 심 박사가 도착했고 심 박사는 법정에서 그녀, 한명숙의 요구대로 어깨를 들추고 현미경 비슷한 것으로 어깨의 상처를 살피고는 상처가 났다는 왼쪽 어깨를 방청석을 향해 보이며,‘여러분, 보이세요? 이 조그마한 흉터가 최근에 담뱃불로 지진 상처 같습니까?’하고는, 다시 재판장을 향해 ‘이 흉터는 이 사람이 3~4세때 종기가 생겨 난 흉터 자국으로 보입니다. 이상입니다.’라고 말했다. 방청석에서는 또 다시 ‘저 새끼도 똑 같은 남산 앞잡이다!’ 하면서 재차 소란을 피웠다.

아니, 고문이라니! 그것도 내가 담뱃불로 지졌다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어디 있단 말인가? 아무리 법치국가라지만, 그녀를 그 자리에서 총으로 쏴 죽이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지하실에서 소주를 사달라고 하면 소주를 사오고, 안주가 먹고 싶다고 해서 안주 사다 주면 실컷 먹고, 술주정까지 하던 여자가 저렇게 악독해지다니… 혹시 이 글을 읽는 분이 나에게 ‘그때 그녀를 고문했느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단 한 차례라도 주먹질이나 발길질을 했거나, 또 어떤 심한 언동이나 다른 방법의 고문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지금이라도 하늘이 나에게 벼락을 내릴 거다’라고 답하겠다.

오늘날 시대가 좋아(?) 대한민국에서 국무총리까지 출세한 그녀는 꼭 그때의 ‘담뱃불 고문’주장이 허위임을 만천하에 밝히고 필자에게 사죄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상호 변호인단을 구성, 확인하고, 그 당시 지하 심문실을 완벽하게 녹화한 필름이 있을 것이니 국정원에 요청하여 사회정의 구현 차원에서 국회 청문회를 열어 심문실의 전 과정을 만천하에 공개토록 하자고 제안한다. 나는 당시 본 사건 주범 3인에 대한 전체 심문과정이 녹화된 것으로 알고 있다.

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96185
(인용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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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세력들이 얼마나 양심의 가책없이 거짓말을 잘 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내 거짓말로 억울하든 말든 자신의 이익에 도움될 수 있으면 저런 무서운 거짓말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 분은 그래도 다행히 의사분의 증언으로 자신의 무고함을 빨리 밝힐 수 있었지만 아마 인간에 대한 신뢰감은 크게 손상되었으리라 봅니다.

예전에 김대업이라는 사람의 말 때문에 이회창 아들이 병역비리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공개적으로 신체검사를 받은 일이 있었다지요. 지나간 몸무게는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진실이 뭔지는 알 수 없으나 이미 그것이 진실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 돼버렸죠. 이회창흠집내기에 성공했고 대통령 당선이 유력시되던 이회창이 나가떨어진 것으로 이미 목적은 달성됐으니..

백년전쟁이 이승만에 대한 사실을 왜곡하고 명예훼손한 것이라고 법원에서 판단하면 뭐합니까.
그게 진실인줄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요즘처럼 정보를 얻기 용이한 시대에 자신이 본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은 해보고 사람을 미워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는 그들이 만들어놓은 거짓을 진실로 바로 믿는 사람들을 순진하다기 보다는 사실확인에 게으른 분들이라고 봅니다.
어쩌면 ‘내가 싫어하는 이승만놈을 맘껏 씹은 영상이니까 진실따윈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요.
몇십년간 이승만 죽이기를 해온 기존역사카르텔의 힘이 대단하긴 하네요.

하지만 그동안 거짓세력의 해원은 충분히 된 것 같습니다.
저는 백년전쟁이라는 영상물은 그들의 마지막 발악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오미개명 시간대를 맞아 곳곳에서 각종 비리들이 봇물처럼 터져나와 밝혀지고 있고
진실로 위장했던 것들이 거짓이었다는 것도 하나씩 밝혀지고 있으니까요.

(재판부는 "방송 내용을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인 사례와 평가만으로 구성하고 제작의도와 달리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은 의도적으로 배제함으로써 사실을 왜곡했다"며 "이 대통령을 '악질 친일파, A급 민족반역자, PLAY BOY, 하와이 깡패, 돌 대가리' 등 저속하게 표현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40828153311638&RIGHT_REPLY=R1
法 "다큐멘터리 '백년전쟁', 이승만·박정희 명예훼손")

‘생명의 길’은 ‘백년전쟁’의 내용이 거짓임을 밝히는 영상입니다.

‘생명의 길’ 제작에 참여한 박성현님의 말씀을 잠깐 인용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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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전쟁』에 대항해서 진실을 알리는 동영상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백년전쟁』측은 다음과 같은 헛소리를 했다.
“시민운동을 탄압하지 말라”

너희에게는 역사해석이, 시민운동이냐?
너희에게는, 역사적 진실이, 이른바 시민운동의 떼법-떼창으로 결판나냐?
게다가 [탄압]이라니? 국사학계 전체를 너희가 장악하고 있는 상태에서 우리는 절대적 소수다.
너희의 개소리를 역성드는 평양의 막강한 공작금과 테러 능력 앞에서, 우리는 거의 무방비이다.
너희야 말로 다수이며, 권력이며, 폭력 아닌가! 그런데 우리더러 [탄압]이라니?

까고 말하자. 대한민국 주류 제도권에게 조금이라도 정신머리가 있었다면,
사정이 이토록 악화되었겠나? 너희가 이토록 방자하게 날뛸 수 있었겠나?
대한민국 주류 제도권(기업-공무원-정치인)은 오직 기능적 전문성만 알 뿐,
역사 [따위]에는 관심도 없다.
우리 [뚜껑 열린 사람들]이 벌이고 있는 진실 캠페인에 대해 그냥 방관할 뿐이다.
이런 비참한 처지에 놓인 우리더러 [탄압]이라니?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너희는,
“4월 16일에 기자회견을 해서 상대방의 거짓을 죄다 밝히겠다”라고 큰 소리쳤었다.

기자회견은 개뿔!
우리가 만든 예고편에 담긴 주장에 대해, 너희는 단 하나도 반박하지 못 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백년전쟁』을 만든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임헌영이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다.
“『백년전쟁』은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창작물이다”

자던 개가 벌떡 일어나 웃을 소리다.
너희는 애초에 “새로운 스타일의 역사 다큐멘터리”라고 주장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창작물]이라고?
좀 더 쉬운 한국말로 표현하자면 [픽션 영화]란 소리 아닌가?
왜 이런 소리를 할까?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하게 생겨먹었기 때문이다.
“픽션 영화 만들다가 잠깐 실수해서 명예훼손 했을 뿐입니다.
결코 역사 해석을 왜곡했던 것은 아닙니다”라고, 법정에서 질질 짤 준비를 하는 것이다.

이까짓 것으로 질질 짜? 대한민국 역사를
(친일파와 미제국주의 주구에 대한) “투쟁이 백년동안 이어져 왔다”
라고 떠드는 [민족해방전사] 나으리들께서 이렇게 새가슴이야?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임헌영이야말로 민족해방 전쟁이 무엇인지, 너무 잘 아는 사람 아닌가?
그는 1979년에 검거되었던,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산하 한국민주화투쟁위원회 조직 멤버였던 사람 아닌가?
그 <민족해방전선>은 김일성에게 다음과 같은 문구가 포함된 충성서약을 바쳤던 조직 아닌가?

“수령님의 항일빨치산 투쟁의 정신을 이어받아, 이곳 남조선에서 한층 가열찬 투쟁을…”

『백년전쟁』에 인터뷰를 제공한 서중석(성균관대 교수)은 더 웃기는 소리를 한다.
(※서중석교수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주도한 '역사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박헌영전집' 편찬위원장이었다.)
“(역사해석에 대한) 정치탄압을 해서는 안 된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우남 이승만의 양자가 명예훼손으로 고발하는 게 [정치탄압]인가?
서중석의 국사는, “사람의 명예를 거짓과 뽀샵으로 마음 놓고 짓밟을 수 있는 면책특권”을 뜻하나?

(중략)

우리는 [정신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역사해석은 이 [정신의 전쟁]의 승부처다.
그래서 역사는 캠페인이다.
무엇을 위한 [정신의 전쟁]인가?
우리 민족의 생명과 번영을 위한 [정신의 전쟁]이다.
우리의 시민성과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북한의 붕괴를 감당할 수 있는 수준까지 급속하게 성숙하도록 만들기 위한 [정신의 전쟁]이다.

https://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153483

(인용끝)

※앞에서 말한 법원의 명예훼손 판단은 '백년전쟁'을 방송한 시민방송 RTV에 대한 방송통신위원회의 징계가 정당하다는 판결에서 나온 것입니다. 우남 이승만의 양자에 의한 사자명예훼손 소송은 아직 진행중인 것 같습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유족은 ‘사자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했고, ‘백년전쟁’을 방영한 시민방송 RTV에 내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제재명령도 이뤄졌다. 
민족문제연구소의 ‘백년전쟁’을 둘러싼 법정 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법원은 이미 1, 2심을 통해 백년전쟁이 △근거자료의 편향 △사실왜곡 등으로 이승만 전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을 폄하했다는 판결을 내렸다. 의혹을 제기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특정 입장만을 반영한 일방적인 편집·재구성이었다는 것이다. http://www.dailian.co.kr/news/view/535588/?sc=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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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에 대한 진실이 뭔지 알고 싶은 분은 아래 영상 ‘생명의 길’ 을 보시기 바랍니다.

'진실이든 뭐든 내 마음에 안 드니까 너는 진실일리도 없고 진실이어서도 안 된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께는 그저 제 글과 올린 영상들이, 그분의 마음속에서 나중에라도 진실을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 있는 마음으로 성장할 하나의 씨앗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이와 관련해 박성현님의 글 일부를 인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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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투쟁 vs. 친일파>

이처럼, 만주와 연해주의 무장투쟁 세력과 동포들은 소련과 중국 공산당에 의해 철저히 이용당하고 배신당했다. 한마디로 만주와 연해주는 무장투쟁을 위한 공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국사학자들은 무장투쟁이냐 친일파냐라는 엉터리 흑백논리를 사납게 휘두른다. 이 흑백논리를 가장 잘 대변하는 사람은 성공회대 교수 한홍구이다. 그는 이렇게 주장한다.

"남쪽의 친일파와 그 후예들이 김일성의 항일 투쟁을 깎아내리는 일만큼은 용인돼서는 안 된다. 민족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단 하룻밤이라도 한데서 새워본 적이 없는 자들이, 영하 40도가 되는 추위 속의 밀림 속에서 밤을 지새운 투사들을 모욕하게 할 수는 없다. 김일성은 분명히 혁명의 창건자로서 위치를 누릴 자격이 있다. 혁명의 창건자, 이는 스탈린이나 덩샤오핑도 넘볼 수 없는, 한 나라에서 오직 한 명의 혁명가만이 누릴 수 있는 자리였다. 김일성은 누구보다 부국강병에 기초한 근대화를 추구한 20세기형 민족주의자였다."

무장투쟁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김일성에게 민족의 정통성이 있다는 식의 주장이다. 그 무장투쟁이 스탈린과 모택동을 섬기는 피바다였을 뿐이라는 진실은 철저히 감추어져 있다. 김일성을 떠받들었으니까 이제 대한민국을 비방할 차례이다. 한홍구는 이렇게 말한다.

"대한민국은 일제시대의 군국소년들이 어려서 입은 마음속의 일본 군복을 벗지 못한 채, 군인이 되어 전쟁을 치르고 반공청년이 되어 병영국가를 만들고, 이제는 군국노인이 되어 북한에 대해 전쟁불사를 외치는 그런 나라다."


<돈 타령하지 말고 노선을 이야기해 봐!>

국사 교과서와 청소년 역사물은 온통 대한민국은 친일파가 만든 수치스런 나라이며 만주, 연해주에서 무장투쟁을 해 온 세력에게 정통성이 있다라는 해괴망측한 사고방식으로 떡칠되어 있다. 스탈린과 모택동의 손에 놀아나다 배신당한 무장투쟁을 신격화하고 대한민국을 경멸하도록 가르치는 이 비틀린 세계관이 너무나 선정적이고 재미있는 동영상물로 만들어졌다. 백년전쟁이 바로 그것이다. 유튜브에서 무려 4백만 조회를 일으켰다.

"이승만이 돈을 가로채기 위해 무장투쟁에 반대했다"는 백년전쟁의 주장은 자던 개가 웃을 소리다. 이승만은 돈에 관해서는 순결할 정도로 깨끗한 사람이다. 4·19가 터지고 나서 하야하자 "스위스 은행에 어마어마한 돈을 감추어 놓았다"는 소문이 흉흉하게 돌았다. 그러나 하와이 요양원에서 숨질 때 이승만은 아내가 바느질해서 수선한 낡은 담요 두 장을 덮고 있었을 뿐이다.

그를 비판하려면 그의 노선에 대해서 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승만은 무장투쟁에 관해 어떤 노선을 취했던 것일까? 과연 무장투쟁 자체를 반대했던 것일까? 아니다. 그는 국제정세가 무르익을 때까지는 무장투쟁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을 뿐 무장투쟁 자체를 반대한 적이 없다. 그는 조건부 무장투쟁 노선을 취했던 것이다. 그 증거가 곳곳에 남아 있다. 1921년 자유시 참변이 일어나기 몇 달 전에 이승만은 상해 임시정부에서 이 같은 발언을 한다.

"지금은 무장투쟁을 할 때가 아니다. 우리 조선 사람 각자가 생업에 열중하면서 무장투쟁을 할 수 있는 실력을 길러야 한다."

이승만의 말을 들었더라면 대한독립군은 자유시에서 소련군에 의해 학살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로부터 정확히 20년이 지난 1941년이 되면 이승만은 무장투쟁을 할 조건이 되었다고 판단한다. 그 해 여름, 일본의 진주만 공습이 있기 6개월 전에 미국에서 출판되어 미국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그의 책 저팬-인사이드-아웃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전체주의 국가들의 도발과 침략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미국은 일본에 대해 전쟁을 벌이는 한편 한국인들에게 무기를 지원해야 한다. 한국인들이야말로 일본과 가장 맹렬하게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 민족이다."

무장투쟁은 국제정세가 뒷받침될 때에만 성공할 수 있다는 이승만의 생각은 백퍼센트 맞다. 1945년에서 1948년 사이 만주에서 중국 공산군이 국민군을 이겼던 까닭은 소련과 북한이 든든한 지원 기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월남의 베트콩이 미군을 물리칠 수 있었던 까닭은 월맹, 중국, 소련으로부터 무제한 지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승만을 비판하려면 "무장투쟁에 반대했다"라고 엉터리 소리를 할 게 아니라 그의 국제정세에 관한 판단을 비판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어떠한 국사학자도 감히 그러한 시도를 한 적이 없다. 이승만의 국제정세 판단이 너무나 정확했기 때문이다.

백년전쟁 역시 이승만의 국제정세 판단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할 소리도 마땅치 않고 할 실력도 없기 때문이다. 그 대신 기껏 한다는 짓이 나치 선전상 괴벨스가 했던 꼴라보-레지스땅 구분법을 썼을 뿐이다. 무장투쟁이란 우리말이 아니라 레지스땅이라는 프랑스 말을 사용하면 뭔가 세련되고 많이 아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일까?


<암살 작전과 빨치산 무장투쟁도 구분 못 한다>

백년전쟁은 무장투쟁이란 단어 대신에 레지스땅이란 말을 씀으로써 김구와 공산주의자를 하나로 묶었다. 김구 노선은 열사들의 암살 작전이다. 1921년 이후 무장투쟁은 공산 빨치산 투쟁이다. 열사들의 암살 작전과 공산 빨치산의 무장투쟁은 전혀 다른 방식의 운동이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 둘을 엄격히 구분한다. 실제 독립운동에 있어서도 빨치산 공산주의자들과 암살 작전 열사들은 원수 사이였다. 소련 공산 혁명의 아버지이며 세계 공산주의자들의 정신적 스승인 레닌은 암살 작전에 이렇듯 지독하게 비판한다.

"우리는 테러리즘을 결연히 거부한다. 테러리즘은 개인에 의한, 개인을 대상으로 삼은 정치적 암살일 뿐이다. 현재 상황에서 이는 가장 멍청한 투쟁 방식이다. 암살에 투신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조직과 선동에 투신했더라면 엄청난 일을 해냈을 열정적인 사람들이다. 암살 처단은 혁명가와 대중 사이를 분리시킨다. 암살 처단은 투쟁의 목표와 방법에 관해, 혁명가와 대중에게 완전히 그릇된 관념을 갖도록 만든다."

공산주의든 아니든, 대중운동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열사들의 암살 작전에 대해 지극히 비판적인 관점을 취한다. 암살로는 대중의 에너지를 모아 낼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백년전쟁은 암살 작전과 빨치산 무장투쟁을 마치 같은 것인 듯 말한다. 이런 엉터리 이야기를 하는 학자는 아무도 없다. 그래서 백년전쟁은 나치 선전상 괴벨스의 구분법을 떠받들어 ‘레지스땅’이라 불렀던 것이다.

우리 사회의 종북 지하조직 중에 빨치산 투쟁과 강도질 같은 테러리즘 행동을 혼동했던 조직이 있었다. 1979년에 검거되었던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줄여서 남민전이 바로 그 조직이다. ‘백년전쟁’을 만든 민족문제연구소의 임헌영은 바로 남민전 외곽조직인 한국민주화투쟁위원회, 줄여서 민투의 조직원이었다. ‘백년전쟁’이 빨치산 무장투쟁과 열사의 암살작전을 구분하지 못 하고 혼동하는 것은 30 여년 전 남민전의 오류를 고스란히 빼닮은 붕어빵이다. 실제로는 테러리즘을 준비했던 남민전이 입으로는 빨치산 무장투쟁을 얼마나 찬양했는지, 그들의 충성 맹세를 한 번 들어 보자.

"경애하는 주석 김일성동지!…남조선은 미제국주의자와 그들의 앞잡이에게는 지상천국으로 되었으나 모든 남조선인민들에게는…착취와 억압에 신음하는 창살 없는 감옥으로 되어 있습니다...항일 빨치산 투쟁의 위대한 전통을 이어받아…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 위원회 전사들은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원수님께옵서 인도하는 조선민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품 안으로 안기는 영광스러운 조국통일의 그날을 앞당기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투쟁하고 있습니다.… 수령님의 무한한 사랑과 교시 그리고 적극적인 지원을 베풀어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마지 않습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원수님 만세! 조선노동당 만세!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만세!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승리 만세! 조국통일 만세!"

<악마는 죄책감을 강요한다>

만주의 공산 무장투쟁을 찬양하고 이승만과 대한민국을 헐뜯는 국사학자들... 그들은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정신을 병들게 만들고 있다. 대한민국 자체를 위선, 거짓말, 부패 덩어리로 보도록 만들고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이야말로 우리 삶의 소중한 터전이다.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것은 곧 삶의 기반을 부정하는 태도에 다름 아니다. 대한민국 자체에 관해 죄책감을 가지는 것은 곧 삶 자체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는 것에 다름 아니다. 생명의 길을 가지 못 한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면 숭고한 일을 위해 분발하게 된다. 그러나 스탈린과 모택동이 만들어낸 피바다에 뛰어들지 않았던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면 오직 파멸할 뿐이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가져서는 안 될, 또한 가질 필요가 전혀 없는 죄책감과 컴플렉스로 포장되어 있다. 악마는 병든 죄책감을 강요하고 생명은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가르친다.  영국을 살려내었던 철의 여인 마가렛 대처는 악마가 강요하는 죄책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회 전체에 몇 세대에 걸쳐 죄책감이 누적되면 그 사회는 금이 갈 수 밖에 없다”수많은 국사학자들, 역사교사들이 한홍구처럼 연해주, 만주 동포들의 피와 고통과 죽음을 찬양한다. 그러나 이는 연민의 대상일 뿐이다. 피, 고통, 죽음 그 자체는 결코 진실성, 진정성을 보증하지 못 한다. 현대 철학의 거장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진실은 피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희생자가 많았다는 것과 진실되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피는 진실을 옹호하는 증인이 될 자격이 없다. 피야 말로 최악의 증인이다.”
https://www.facebook.com/notes/%EB%B1%85%EB%AA%A8/%EC%95%85%EB%A7%88%EB%8A%94-%EC%A3%84%EC%B1%85%EA%B0%90%EC%9D%84-%EA%B0%95%EC%9A%94%ED%95%9C%EB%8B%A4/471093156289364

(인용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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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필요성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


김철홍님은 박성현님처럼 전향하신 분인데 그분이 청소년들의 역사교과서를 읽어보고 쓰신 글을 한 번 가져와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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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말 한국사 교과서의 내용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내가 직접 확인을 해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며칠 전 중고등학교 검인정 한국사 교과서를 구입하기 위해 광화문 교보문고에 갔다.

아쉽게도 검인정 교과서는 모두 출판사에서 다 회수해 가고 없었다. 내가 구할 수 있는 것은 미래엔 출판사에서 간행한 『고등학교 한국사 자습서』(대표저자 한철호)와 비상 출판사에서 발행한 『한국사: 완벽한 자율학습을 위한 완벽한 자율학습서』(저자: 이건홍 외 4인 공저)였다(물론 다른 것들도 있었지만 비싸서 모두 다 구입할 수 없었다).

이 책들은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할 수 있도록 교과서의 내용을 잘 요약, 분석하고 있고, 저자의 친절한 설명이 추가되어 있어 어떤 면에서는 교과서보다 저자의 의도를 더 분명히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심지어 학습진단평가를 위해 문제풀이도 포함되어 있었고, 이 부분이 매우 흥미로웠다.

나는 그 중 책이 많이 사용된다는 미래엔 출판사의 『고등학교 한국사 자습서』 중 근현대사 부분인 186-311쪽의 내용을 그 밤 새벽까지 직접 읽었다. 다 읽고 난 뒤의 소감은 한 마디로 말해 ‘놀라움’이었다. 나는 1981년 서울대 사회학과에 진학하였다. 3학년 때인 83년 8월에 일종의 강제징집제도인 지도휴학을 받고 군대에 갔고, 85년 제대하고 다시 복학하여 88년에 졸업했다. 사실 대학시절 학생운동에 깊이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학내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친구들과 당시 운동권 학생들이 읽던 각종 이념서적들을 읽었다.

마르크스, 레닌, 모택동의 저작들은 물론 러시아, 중국, 베트남, 쿠바혁명사, 마르크스-레닌주의 유물론 철학, 경제사(經濟史), 경제이론인 정치경제학, 종속이론, 사회주의 사상사, 사회주의 예술론, 한국근현대사, 반봉건식민지론, 조선 공산주의 운동사, 사회구성체론 논쟁, 등 오늘 날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무식한(?) 좌파들이 읽지 않는 다양한 좌파 이론들을 공부한 적이 있다.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나에게 성경보다 더 중요한 책이었다. 수 백 페이지에 걸쳐 작은 글씨로 프린트 된 영어로 번역된 자본론을 두 번 통독하면서 나는 영어를 깨우쳤다. 제대한 뒤에 나는 더욱 더 이념서적에 심취했고, 어느 날 나는 공산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학교를 휴학하고 나는 공산주의 이념을 위해 내가 갈 수 있는 길의 끝까지 가려고 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지금 되돌아보면) 그 길에서 다시 돌아왔고 신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신학교 시절에도 나는 이념의 문제와 신앙의 문제를 안고 많은 고민을 했다. 결정적으로 내가 좌파 이념을 버리게 된 것은 미국에 유학 가서 바울신학을 공부하게 되면서다.

바울의 복음은 나를 완전히 사상적으로 전향하게 했고, 복음의 세계관을 선택하게 되었다. 내가 갑자기 나의 전기(autobiography)를 말하는 것은 미래엔 출판사의 『고등학교 한국사 자습서』 중 근현대사 부분인 186-311쪽의 내용을 읽은 뒤의 나의 소감을 보다 더 쉽게 이해하게 하려는 의도이며 다른 뜻은 없다. 그 한국사 자습서에는 놀랍게도 내가 대학교 때 의식화학습에서 공부했던 내용 중 한국근현대사와 조선공산주의 운동사에서 학습했던 내용들이 그대로 요약되어 있었다.

81-82년도에 내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숨어서 좌파서적에서 읽고 학습했던 내용보다 어떤 면에서는 더 잘 정리되어 있는 내용들이 그 동안 일반 고등학교 한국사 시간에 학생들에게 공개적으로 가르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학생운동이 일종의 도제(徒弟)시스템을 사용하여 선배가 후배들에게 그토록 열심히 가르치고 배워서 “의식화된 (좌파) 지성인”으로 만들던 그 과정 중 핵심적이고 기본적인 사항이 이제는 전국의 고등학교에서 공개적으로 교사들에 의해 실시되는 것이다.

내가 초등학교, 중고등학교를 통해 12년 동안 교육받으면서 제대로 들어보지 못한 개념들, 예를 들면 자본주의, 자본가, 지주, 대지주, 독점자본, 도시빈민, 노동력 수탈, 수탈에 의한 계층분해, 민족운동의 주체로서 학생, 농민, 노동자, 사회주의, 노동쟁의, 농민조합, 혁명적 농민, 계급해방을 내세우는 혁명운동, 토지혁명, 봉건잔재의 파괴, 부르조아 민족주의 혁명, 반제항일투쟁, 신간회의 해소(解消), 사회주의 진영의 합법적 공간 상실, 기회주의, 중세봉건사회 부재론, 사회경제사학(史學), 유물사관, 식민사관(植民史觀)의 정체성론, 유심론, 유물론, 계급갈등, 반제국주의 투쟁, 소작투쟁, 쟁의, 계급적 교육, 지주에 대한 투쟁, 계급투쟁, 토지집중, 예속 자본가, 프로 문학, 보천보 전투, 반혁명 세력, 토지국유화, 주요산업의 국유화, 사회주의적 개혁, 통일전선, 노농 대중의 해방, 무장봉기, 무상 의무 교육, 무상몰수 무상분배, 등 사회주의 이론 학습에서 사용되던 용어들이 186-273쪽에서 등장하며 다수는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내가 이런 개념들을 대학시절 의식화 교육에서 사용되는 책들을 통해 배웠다면, 오늘 날에는 본교에 진학하는 학생들을 포함하여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모든 학생들이 수년간 정규교육과정을 통해 이것들을 배우고 있다.

2007년도 미국에서 귀국하여 장신대에서 여름방학 중 하루 4시간씩 수업하는 헬라어 강의를 하는 중에 신대원 학생들이 결석한 적이 있다. 다음 날 결석한 이유를 물으니 광우병 시위를 가기 위해 수업을 빠졌다는 대답이었다.16년간 미국에서 미국산 소고기만 먹다 온 나에게는 광우병 시위 자체도 이상하게 보였고, 미국산 소고기를 먹으면 두뇌 속에 구멍이 ‘송송송’ 생겨 죽게 된다는 언론의 보도는 지금 생각해도 내 인생 최고의 농담(joke)로 기억된다.

내 눈에 그것은 ‘집단적 광기(狂氣)’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더구나 학부도 아니고 신대원 학생들이 이런 비이성적 시위에 참여하는 것은 당시 나에게는 미스터리(mystery)였다.그러나 그 미스터리는 이제 검인정 한국사 자습서를 읽고 쉽게 풀렸다. 학생들은 일본 제국주의시대와 독립운동 역사를 좌파가 역사를 읽는 방식으로 배우고, 거기서 배운 개념으로 해방 이후의 현대사를 이해하고 있다.

해방 후 미군정은 또 다른 제국주의 침략으로 보고, 그래서 대한민국을 여전히 미제국주의의 식민지로 본다. 우리는 여전히 미제국주의와 자본가들의 수탈을 당하고 있고, 여기에서 민중(인민)은 제국주의로부터의 해방의 주체(主体)가 된다.

그 관점에서 보면 미국산 소고기의 문제는 ‘소’의 문제가 아니라, ‘미제국주의’의 문제다. 소를 수입하는 것을 미제국주의의 침략과 수탈의 관점에서 본 것이다. 진정으로 그들이 문제 삼은 것은 광우병에 걸려서 내 두뇌에 구멍이 송송송 뚫리는 것이 아니라, 미제국주의가 소고기 수입을 통해 민중을 계속해서 수탈하는 것이다(나의 분석이 틀리지 않다는 것은 당시 촛불을 든 사람들이 국내의 먹거리 문제 혹은 건강에 문제 있는 식품을 수입하는 것에 관해서는 그 동안 아무도 한 번도 촛불을 들지 않았다는 점에서 증명된다).

현재 사용 중인 검인정 한국사 교과서가 갖고 있는 진정한 문제는 어떤 특정 부분의 정보가 정확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어떤 특정 부분의 정보가 누락된 것도 아니다. 그 책들이 문제가 되는 진정한 이유는 그 책들이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기본적으로 마르크스주의의 역사관이기 때문이다.

내가 위에서 열거한 수많은 단어들, 즉 미래엔 출판사의 『고등학교 한국사 자습서』 중 근현대사 부분인 186-311쪽의 내용에서 나오는 단어들은 중립적인 용어들이 아니다.그 단어들은 이념적으로 그 알맹이가 가득 차 있는 용어들(ideologically loaded terms)이다. 그 단어들은 유물사관(唯物史觀)의 용어들이고, 검인정 한국사 교과서는 교사 개인이 그 역사관에 동의하건 동의하지 않건 상관없이, 마르크스주의 유물사관을 정규학교 과정 속에서 자유롭게 학생들에게 교육시키는 자료가 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유물사관은 인류의 역사가 자본주의를 거쳐 사회주의로 이행하고, 궁극적으로 공산사회에 도달할 것이며, 반드시 도달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 과정은 사회의 토대(basis)인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발전에 따른 불가피한 사회변화이기 때문에 인간의 노력으로 이것을 막을 수도 없으면서, 동시에 공산사회 건설을 이상으로 갖고 있는 사회주의 혁명가들의 의식적이고 적극적이고 희생적인 투쟁에 의해 완성된다.

이론 뒤에는 반드시 행동가들(activists)이 있으며 이들 중에는 이미 남조선 인민해방혁명을 위해 오래 전에 인생을 바친 사람들이 있다.현재의 검인정 한국사 교과서는 바로 이런 공산주의 역사이론을 당연한 것으로 전제한 그 전제 위에서 기록되었다. 그러므로 유관순 열사가 그 책에서 빠진 것이 문제가 아니다. 교과서 전체의 틀, 구조(structure)가 문제다.

그 구조가 전달하고 있는 특정한 정치적 이념이 바로 공산사회 건설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주의 사상이란 점이 문제다. 이 교과서는 사회주의 사상 그 자체를 민중사학(民衆私學)이라는 이름으로 가르치고 있다.그러므로 유관순 열사의 이야기를 그 책에 추가할 것을 요구하여, 비록 그것이 포함된다 해도 여전히 교과서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는다.현재의 검인정 한국사 교과서는 폐기되어야 할 책이지 수정 혹은 개정되어야 할 책이 아니다. 개정은 해결책이 아니고, 폐기하고 새로 쓰는 것만이 현실적으로 유일한 해결책이다.
(중략)
그러나 역사신학교수들이 아무리 눈물로 개정을 호소하고, 그래서 그들이 우리 교수님들에게 관용을 베풀어 이곳, 저곳을 부분적으로 고쳐준다고 해도 별 소용이 없다. 왜냐하면 개정을 거친 그 책은 여전히 유물론적 역사관, 계급투쟁론, 제국주의와의 투쟁과 해방을 강력하게 가르칠 것이기 때문이다.

https://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282351

여기에 갈색의 물질이 있다. 그것은 얼핏 보면 된장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인분(人糞)처럼 보이기도 한다(편의상 이하에서는 인분대신 영어 알파벳 D를 사용하기로 한다).

차 교수는 검인정 역사 교과서는 D가 아니고 된장이라는 것이다. 나의 주장은 그 책들이 된장이 아니고 D라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D이므로 어린 학생들에게 먹이면 안 된다고 주장하고, 차 교수는 이것이 된장이므로 학생들에게 계속 먹이자는 것이다. 차 교수는 나에게 “이 갈색의 물질이 D인지 된장인지 당신이 어떻게 아느냐?”고 묻는다. 그의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간단하다. “왜냐하면 내가 그것을 먹어봤기 때문에 안다”이다.
(중략)
좌파에서 우파로 전향한 나의 현재 심리상태에 관해 차정식 교수는 내가 “자신의 과거 행적을 얼룩지게 한 좌파 마르크스주의 유물론을 더욱 더 신랄하게 씹어대고 가혹하게 공격하지 않으면 과거의 이념적 괴물이 다시 출몰해 자기의 존재에 위해를 가할 것처럼 불안해 보였다”고 적었다. 사상적 전향 때문에 내 심리의 이면에는 “배제의 공포심리도 적잖이 작용하는 것 같다”고 그는 진단한다. 나의 심리적 상태를 분석하는 그의 삼류 심리학에 나는 별로 감흥이 없다.

하지만 그가 나를 “배신자로 낙인찍힌 사람”에 비유한 것은 상당히 흥미롭다. 왜냐하면 차정식 교수는 내가 사상적으로 전향한 것을 [배신]행위에 비유하기 때문이다. 내가 좌파 사상을 버리고 우파로 돌아선 것은 우리 시대에는 [용서받지 못한 죄]를 지은 것이고, 나같은 사람을 가롯 유다와 동급으로 보는 차정식 교수의 관찰은 사실 정확하다. 그는 “정말 이것이 D인지 된장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치고는 매우 예리한 관찰력을 지녔다.

민주통합당 19대 국회의원이었던 임수경 의원이 탈북자 백요셉씨에게 술에 취해 쏟아낸 말,
“개념 없는 탈북자 00가 국회의원인 나한테 함부로 개겨?”
“야 이 탈북자 00들아 대한민국 왔으면 입 닥치고 조용히 살어, 자꾸만 그 북한인권인지 하는 이상한 짓 하지 말고”
“그러다 다친다? 너 몸조심해 이 00야”
등은, 1989년 평양통일대축전에 전대협 대표로 북한을 방문했던 [통일의 꽃] 임수경의 화장하지 않은 민낯을 그대로 잘 보여준다.

조선인민민주의공화국을 버리고 대한민국으로 망명한 탈북자들이 그들의 눈에는 [개념 없는] 배신자다.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은 죄인들이다. 1980년대 [식민지반봉건사회론]을 스스로 폐기하고, 대한민국의 경제를 [중진자본주의]로 새롭게 정의하면서 뉴라이트 운동에 참여한 안병직 교수에게 [사상적 변절자]라는 딱지(label)를 붙이고 공격한 사람들은 누구였나? 그들은 바로 [사상의 자유]를 부르짖는 좌파들이다.“광화문 네거리에서 김일성 만세를 부를 수 있어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말씀)는 좌파들이 좌파에서 우파로 전향한 사람들을 배신자로 비난한다.

https://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283680

(인용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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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 라는 시를 지으신 탈북시인 장진성님이 우리나라 역사교과서를 보신 소감도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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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에 온 지 올해로 7년째다. 서울행 대한항공 비행기가 나를 잉태했고, 첫 걸음마를 짚었던 인천공항이 고향인 셈이다. 나의 아버지는 대한민국을 더 잘 알게 해 준 태극기였고, 내가 썼던 시집은 한국 국민으로서 다시 배운 국어였다. 이렇게 7살이 되니 이젠 제법 한국사 교과서도 찾게 되었다. 아직 7살이어선지 한국사 교과서를 난생 처음 읽게 된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레였다.

북한에선 “김일성민족사”의 세뇌에 진정한 우리 민족사를 배울 수도, 알 수도 없었다. 그래서 처음 보는 우리 민족사는 모든 것이 다 새롭기만 했다.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은 과연 어떤 나라일까? 무엇보다 그 점이 가장 궁금했다. 지나간 먼 왕조시대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는 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현대사를 읽던 나의 7살 동심은 어두워지다 못해 스스로 이런 질문을 하게 됐다.
대한민국은 애당초 건국부터가 잘못되었나요? 박정희대통령은 김정일처럼 사람을 많이 죽였나요? 부자들은 모두 도둑놈들인가요? 대한민국에서 가져야 할 꿈은 도대체 무엇인가요? 잘 사는 이 대한민국은 언제? 누가 주었나요?

그렇다. 한국사라면 자부심의 교과서가 되어야 할텐데 반대로 증오의 교과서같았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초대 건국정부, 근대화혁명정부, 한강의 기적 주역들인 기업인들에 대해 무조건 증오만을 느끼도록 세뇌시키는 것 같았다. 그래서 자유민주주주의 국가 정체성과 그 뿌리가 실종된 이상한 한국사 같았다. 대한민국은 참 나쁜 나라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한국사 교과서엔 또한 아이들이 본받고 싶은 주인공들이 없었다. 전쟁국가인데도 전쟁영웅이 없었고, 경제강국인데도 경제영웅이 없었다. 민주화운동의 역사는 개인과 사건들을 구체적으로 열거한 반면 경제발전에 기여한 기업인들은 아예 이름조차 거론하지 않는 등 한국사가 아니라 운동권 교과서같았다.아니 한국사는 정부, 기업인을 상대로 시민들이 치열한 전쟁을 치른 민중봉기국가, 지금도 그 전쟁을 호소하는 계급투쟁사같았다. 민주화의 자부심과 선진화의 자부심이 다 같이 공존하는 한국사가 되면 마치 반역사가 되는 듯 말이다. 과연 민중데모라고 다 옳았는가? 고속도로를 강행한 군정통치가 무조건 나빴는가? 교과서에 넘쳐야 할 존경과 사랑, 애국과 희생의 부분들은 모두 민주화의 몫으로만 치우쳐 있어 이 교과서를 읽는 내내 나의 7살 동심은 싸움꾼처럼 격렬해졌다. 멋진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 투쟁하는 국민을 만드는 교과서가 된 셈이다.

이렇듯 교과서에 기술될 내용이나 문장구사는 학생들의 감정과 정서도 어느 정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편찬자들은 잊은 듯 했다. 북한 관련 내용을 볼 땐 나는 분했다. 7살이 아니라 거기서 산 30살의 기억과 아픔들이 북받쳤기 때문이다. 항일의 전통으로 시작되어 3대 세습까지 흔들리지 않는 정권, 다만 미국의 압살에 의해 최근 식량난같은 어려움이 발생하고 있다는 이런 기술이 과연 진실인가? 북한의 현재 독재가 한국의 과거 독재에 완전히 묻혀버린 것이 과연 나의 국어로 된 교과서란 말인가?

한국사 교과서를 덮으며 나는 이런 후회를 하게 됐다. 차라리 안 보았을 걸, 한국사를 몰랐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이 더 좋았을 걸...

http://pk.newdaily.co.kr/news/article_s.html?no=77896

(인용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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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길어질 것 같아 나머지는 다음 편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장진성님의 시로 이 글을 끝낼까 합니다.



내 딸을 백 원에 팝니다
                     
                                    시인 장진성

그는 초췌했다
내 딸을 백 원에 팝니다
그 종이를 목에 건 채
어린 딸 옆에 세운 채
시장에 서 있던 그 여인은

그는 벙어리였다
팔리는 딸애와
팔고 있는 모성(母性)을 보며
사람들이 던지는 저주에도
땅바닥만 내려보던 그 여인은

그는 눈물도 없었다
제 엄마가 죽을병에 걸렸다고
고함치며 울음 터지며
딸애가 치마폭에 안길 때도
입술만 파르르 떨고 있던 그 여인은

그는 감사할 줄도 몰랐다
당신 딸이 아니라
모성애를 산다며
한 군인이 백 원을 쥐어주자
그 돈 들고 어디론가 뛰어가던 그 여인은

그는 어머니였다
딸을 판 백 원으로
밀가루빵 사 들고 허둥지둥 달려와
이별하는 딸애의 입술에 넣어주며
용서해라! 통곡하던 그 여인은

활연관통 쪽지 2016-08-09 16:45
아래는 어떤 글에 제가 단 댓글인데 따로 글로 올리려다가 제가 내일 올릴 글과 겹치는 부분이 많을 것 같아서 제 글 아래에 댓글로 답니다.



백년전쟁이라는 거짓영상물을 만들어 이승만을 명예훼손 했던 민족문제연구소조차 그들이 만든 <친일인명사전>에 이승만 이름을 등재시키는데 실패했을 정도로 이승만이 남긴 항일, 반일행적은 수많은 문서,증언으로 남아 뚜렷합니다.

이승만을 친일파로 몰려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시키는 게 제일 효과적인 방법인데 이건 뭐 친일과 연결시킬꺼리를 눈씻고 찾아봐도 없으니..
친일인명사전에 못올려 분통터져하는 그들의 모습이 상상되네요.
그들이 백년전쟁이라도 만들어서 이승만을 어떻게든 친일파로 보이도록 용을 쓴 모습이 애처롭게 보일 정도입니다.

할말 없으니 기껏 한다는 말이 친일파등용 많이 했다?
아래 이승만과 김일성이 각각 등용한 인사들을 비교해놓은 영상을 보시죠.

https://www.youtube.com/watch?v=Y7lEy15n7fk

김일성은 나중에 자기 한사람 남을 때까지 주변을 다 숙청해버렸으니
그중에 당연히 처음 등용했던 친일파들도 숙청했겠죠. 근데 이걸 김일성은 친일파 숙청했는데 이승만은 아니었다 이렇게 왜곡하면 이게 모두가 수긍할만한 타당한 비판일까요?
이승만은 친일파놈들을 일본놈들만큼이나 싫어했습니다.
다만 당시 북한이 남한보다 월등하게 전력이 강한 상태여서
(남북 군사력은 심하게 어긋났다. 북한군은 T-34 소련제 탱크 242대와 170여 대의 전투기로 무장한 반면 국군은 탱크와 전투기는 전무했고 20여 대의 훈련용 연습기와 연락기가 고작이었다.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36161&yy=2016)

북한에서 일으키는 전쟁을 우려하며 간첩,공산주의자들을 경계하는 게 우선이었기 때문에 울며겨자먹기로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정보를 가장 많이 갖고 있던 경찰력을 이용한 것 뿐이죠. 그렇게 친일파처단 제대로 안한다는 욕을 먹으면서도 노력했건만 결국 6.25가 일어났죠..

아래 글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승만 반일 정권
http://sonnet.egloos.com/3867187

KBS의 이승만 일본 망명타진 보도가 거짓임을 밝히는 글
http://www.ilbe.com/6202535509
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258075

방심위, KBS 이승만 정부 망명 보도 ‘중징계’ 확정
http://www.chogabje.com/board/view.asp?C_IDX=63033&C_CC=AZ

반민특위에 관한 진실은 아래 글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http://www.mediapen.com/news/view/128686

노덕술 등 경찰인력이 필요했던 이유
http://sonnet.egloos.com/3871407

남침후 이승만의 3일간 행적
https://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256315

대국민방송 틀어놓고 한강다리폭파했다? 이거 무슨 전가의 보도마냥 이승만죽이기 할때 잘 나오는 레파토리인데 아래 글을 한 번 읽어보시죠.

http://blog.daum.net/bk1981/15315

http://cluster1.cafe.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48Uh&fldid=32bk&datanum=2969&openArticle=true&docid=48Uh32bk296920110907214149

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54212


미국 대통령 입에서 욕이 나오게 만든 한국 대통령
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164290

이승만에 대해 더 많은 진실을 보고 싶은 분은 아래 자료를 일람해 보시기 바랍니다.
http://blog.naver.com/rlshtl/130167566342

이승만대통령도 분명 말년에 실수하고 잘못한 부분이 있습니다.
과가 있으면 있는 그대로 보고 공이 있으면 있는 그대로 봐야 하는데
현재 교과서는 없는 과도 만들어 놓았으니 분명 사실을 왜곡하고 있는거죠.

이승만에 대한 공을 간단히 말하는데 아래 글을 인용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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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은 1863년 노예 해방령을 선포했다.
그러나 백년이 지난 1963년,
흑인들 가운데 투표권을 가진 인구는 7%에 불과했다.

백년이 지나도록 투표권조차 얻지 못했던 불완전한 해방이었다.
링컨은 흑인들에게 경제적인 기반을 제공해주지도 않았고
교육의 기회를 주지도 못했다.

그러나 이승만은 [토지 개혁]으로
농민들에게 자립할 수 있는 경제적인 기반을 마련해줬다.
[교육혁명]으로 문맹을 퇴치했다.

이승만의 개혁으로
반만년 역사상 처음으로 농민들이 땅을 가지고 교육을 받게 됐다.

조선시대 양반만 누릴수 있었던 특권인 [토지와 교육]을
국민에게 나눠줌으로써, 전 국민을 양반이 되게 만든 것이다.

이승만은 인간 해방의 선구자이다.
이런 점을 볼 때 노예를 해방시킨 링컨보다
이승만의 업적이 더 위대하다고 본다.

(아래는 이승만과 관련없지만 함께 인용합니다.)

<인> 강연동영상을 보면,
한국의 언론이 북한의 노동신문을 단어만 바꿔
그대로 베꼈다는 내용이 있는데 무슨 말인가?

<이> 사실이다. 함께 일한 탈북자들이 직접 해준 이야기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것보다 더 충격적인 사실도 있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때
한국에 왔다가 미국행을 택한 탈북자들이 꽤 많다.

그 이유를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언론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데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탈북자들이 국내에 들어와
대표적인 좌파 신문을 보면서 하는 말이 이렇다.
“북한 노동신문이랑 똑같네?”

결국 한국도 북한과 다를 것이 별로 없구나.
이런 생각을 한 탈북자들이 미국행을 택한 것이다.

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192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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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박정희가 지킨 독도, 김대중-노무현이 일본에 빌미 만들어 주다!
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119694



나머지 더 자세한 것은 지금 쓰고 있는 다음글에서 언급하겠습니다.


제가 알게된 정보들은 제가 검색해서 알아낸 것도 있지만 일베를 통해 가장 많이 얻은 것입니다.

일베에는 그들(진보 보수 할 것 없이 부패기득권 지키기 위해 거짓말하는 거짓세력 총칭)이 숨기고 싶어하는 거의 모든 진실,정보들이 그득그득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일베에 가면 죽일놈인 것 처럼 언론에서 오도하는 거죠.
지금이라도 실체가 궁금한 정치인, 언론인 등 그 이름을 일베 검색창에 써 보십시오. 수많은 몰랐던 정보들을 접할 수 있을 겁니다. 대부분 신문기사등 사실에 기반한 것이어서 믿을 수 있는 정보들이 많을 겁니다. 정보의 질은 읽다보면 옥석이 가려집니다.

일베를 유익한 정보를 얻어내는 거대한 정보창고로 활용하든,

거짓세력이 만들어낸 거짓을 진실로 알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일베를 혐오하고 진실에 관심을 가지지 않든,

각자 선택의 문제로 볼 수 있다고 봅니다.

다만
뭔가를 증오하거나 사랑하려면 그에 대한 진실이 뭔지 사실이나 확인해보고 증오하거나 사랑하십시오.
허공에 남이 만들어놓은 거짓 적을 두고 그들이 유도해낸 증오감을 투영시키는 삶은 힘겹고 허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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