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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절(化天節)을 맞이하여

화천절(化天節)을 맞이하여

열린마당  솔방울 솔방울님의 글모음 쪽지 2015-08-07 15:17 5,373
상제님의 화천(어천)에 관한 글을 정리했습니다.
특히 도전(道典)에 수록된 내용 중에는 어천하신 후 기행들이 많이 실리어 있습니다.

[대순전경]

사두용미니라

*말씀하시기를 화천(化天)하실 무렵이었는데 태을주를 문 위에 붙이면 신병(神兵)이 지나다가 도가(道家)라 하여 침범하지 아니하고 물러 가리라 하시니라. 하루는 종도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태을주와 운장주를 내가 시험하였노니 너희들은 많이 읽으라 일찍 김병욱의 화는 태을주로 풀었고 장효순의 난은 운장주로 끌렀노라 태을주는 역률(逆律)을 범하였을지라도 옥문(獄門)이 스스로 열리고 운장주는 살인죄에 걸렸을지라도 옥문이 스스로 열리느니라 하시니라. 하루는 교운을 보리라 하시고 세수물을 대하사 종도들에게 눈을 감고 보라 하시거늘 모두 명하신 대로 하여 보니 문득 큰 바다에 뱀의 머리와 용의 꼬리가 구비치는지라 그대로 아뢰니 가라사대 나의 형체(形體)가 사두용미(蛇頭龍尾)니라 하시니라.

마음이나 변치말라

*무신년에 천사 여러 종도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내가 비록 죽을지라도 너희들이 마음을 변치 않고 믿겠느냐 대하여 가로대 어찌 변할 리가 있사오리까 천사 글 한귀를 외워 주시니 이러하나니라 「무어별시정약월(無語別時情若月) 유기래처신통조(有期來處信通潮)」고부인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없으면 여덟가지 병으로 어떻게 고통하리오 그 중에 단독(丹毒)이 크리니 이제 그 독기를 제하리라 하시고 그 손등에 침을 바르시니라.

화천하시면서

*스무 나흗날 신축 아침에 형렬을 명하사 밀수 한 그릇을 가져오라 하사 마시시고 사시(巳時)에 모든 종도들은 문 밖으로 물러가고 경석이 들어오거늘 흘겨 보시며 가라사대 정가 정가(鄭哥 鄭哥) 글도 무식하고 똑똑지도 못한 것이 무슨 정가냐 하시고 곧 화천(化天)하시니 단군기원 사천이백사십이년 이조(李朝)순종 융희삼년 서력기원 일천구백구년 팔월구일이라 수(壽)는 삼십구세러라.

허망한 일이로다

*여러 종도들이 천사의 시체를 방안에 모시고 문을 닫고 나와서 탄식하여 가로대 허망한 일이로다 대인의 죽음이 어찌 이렇게 아무 이상이 없이 잠자는 것과 같으리오 하니 문득 비가 뿌리며 우뢰가 크게 일어나고 번개가 번쩍이더라.


길화개길실이요 흉화개흉실이라

*천사 화천(化天)하신뒤 에 병마개를 빼어서 펴보니 「길화개길실 흉화개흉실(吉花開吉實 凶花開凶實)」이라는 글과 병세문(病勢文)도 쓰여 있었는데 병세문은 이러하니라. 병유대세(病有大勢) 병유소세(病有小勢) 대병무약大病無藥 소병혹유약小病或有藥) 연(然) 대병지약(大病之藥) 안심안신(安心安身) 소병지약(小病之藥) 사물탕팔십첩(四物湯八十貼)

기 도(祈 禱)
시천주조화정영세물망만사지 지기금지원위대강
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 至氣今至願爲大降


대병출어무도(大病出於無道)
소병출어무도(小病出於無道)
득기유도즉 대병 물약자효 소병 물약자효
得其有道則 大病 勿藥自效 小病 勿藥自效
지기금지사월래 예장至氣今至四月來 禮章 의통(醫統)
망기군자무도忘其君者無道
망기부자무도忘其父者無道
망기사자무도忘其師者無道
세무충세무효세무열 시고 천하개병
世無忠世無孝世無烈 是故 天下皆病


병세(病勢)
유천하지병자 용천하지약 궐병내유
有天下之病者 用天下之藥 厥病乃癒
성부 聖父
성자 원형이정봉천지도술약국 재전주동곡생사판
聖子 元亨利貞奉天地道術藥局 在全州銅谷生死判斷


성신(聖神)
대인대의 무병 大仁大義 無病
삼계복마대제신위원진천존관성제군 三界伏魔大帝神位遠鎭天尊關聖帝君
지천하지세자 유천하지생기 知天下之勢者 有天下之生氣
암천하지세자 유천하지사기 暗天下之勢者 有天下之死氣
동유대성인 왈동학 東有大聖人 曰東學
서유대성인 왈서학 도시교민화민 西有大聖人 曰西學 都是敎民化民
공자노지대사구孔子魯之大司寇
맹자선세제량지군孟子善說齊梁之君
근일일본국문신무신병무도통
近日日本國文神武神竝務道統
조선국상계신중계신하계신 무의무탁 불가불문자 계어인 궁상각치우 성인내작
朝鮮國上計神中計神下計神 無依無托 不可不 文字戒於人 宮商角徵羽 聖人乃作
선천하지직 선천하지업 직자의야 업자통야 성지직 성지업
先天下之職 先天下之業 職者醫也 業者統也 聖之職 聖之業

또 종이에 철도선(鐵道線)을 그려놓고 북쪽에 점을 치사 정읍이라 쓰시고 남쪽에 점치사 사거리라 쓰신 뒤에 그 중앙에 점을 치려다가 그치기를 여러번 하시더니 대흥리를 떠나실 때에 점을 치시며 가라사대 이 점이 되는 때에는 세상이 끝나게 되리라 하시니라.


 


[도전 : 道典]

어천하신 후

*하늘의 해와 달처럼 언제까지나 함께 계실 줄 알았던 상제님께서 뜻밖에 어천하시니 성도들은 경황없이 장례를 치르고 오장에 사무치는 슬픔을 안고 각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이 때 몇몇 성도들이 원평으로 가는 도중에 원평에서 오는 구릿골 사람을 만나 상제님께서 어천하셨다는 소식을 전하니 그 사람이 이르기를 “그게 무슨 말이오? 그대들의 선생께서 방금 장승백이에서 술 잡수시는 것을 내가 보고 왔는데.” 하며 믿지 않는지라. 성도들이 모두 이상히 여기는데 한 성도가 짚이는 바가 있어 다시 구릿골로 돌아가 남의 이목을 피해 초빈을 헤쳐 보니 과연 빈 관만 남아 있더라. 또 다른 한 성도가 전주에 가서 자기의 친구에게 “선생님께서 돌아가셨네.” 하고 말하니 그 친구가 “자네의 선생님이 지금 용머리고개에서 술을 잡숫고 계시는 것을 보고 왔네.” 하며 의아해하더라. (道典 10:77)

어천 후에도 자주 나타나신 상제님

*하루는 전주 종도 최 모(崔某)가 김 무역차 남도(南道)로 가는 길에 광주군 송정(光州郡 松汀)을 지나는데 길가 주막에서 상제님께서 약재를 걸고 계시거늘 한걸음에 달려가 절을 드리고 주안(酒案)을 마련해 올리며 여러 가지 말씀을 여쭌 뒤에 “돌아오는 길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하고 아뢰니라. 그 종도가 일을 서둘러 끝내고 다시 그곳에 가 보니 상제님께서 계시지 않거늘 주막 주인에게 물으니 “며칠 전에 강선생님께서 약포(藥包)와 여러 기구를 운반하여 이 안동네로 옮겨 가셨소.” 하고 말하는지라. 급히 그 마을에 가서 물어보니 사람들이 한결같이 말하기를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하더라. 또 전주에 사는 종도 이도성(李道成)이 구례(求禮), 곡성(谷城)으로 마포(麻布) 무역을 위해 가다가 남원부(南原府) 근처의 큰길가 주막에서 상제님을 뵙고 큰절을 드린 후 주안을 준비하여 올리고 출발하였는데 무역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상제님을 다시 뵙고자 그 주막을 찾았으나 상제님께서는 계시지 아니하더라. 이렇듯 어천하신 이후로도 수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상제님을 뵈었거늘 어떤 사람은 ‘선생님과 더불어 영달리(永達里) 주막에서 술을 마셨다.’ 하고 남원에서는 김병선(金炳善)이 만나 뵈었다 하며 또 갈재 너머 사거리에서 약을 걸고 계신 상제님을 뵈었다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는 전남 영광(靈光) 땅에서 뵙고 왔다는 사람도 있더라. (道典 10:82)

어천하실 것을 천지신명에게 선언하심

*이 날 오후에 상제님께서 몹시 고통스러워하시거늘 약방 마루에 누우셨다가 다시 뜰에 누우시고 마당에 나가 뒹굴며 신음하시고 사립문 밖에까지 나가 누워 괴로워하시더니 한참 뒤에 형렬을 불러 이르시기를 “나를 떠메고 너의 집으로 가자.” 하시어 형렬의 집에 가서 누우셨다가 다시 약방으로 돌아오시니라. 이렇게 네댓 번 왕복하시니 형렬이 심히 지치거늘 경석이 대신하여 두어 번을 더 왕복하니라. 잠시 후 상제님께서 일곱 사람에게 양쪽 팔다리와 허리와 머리를 떠받치게 하시고 “이리 가자.” 하시어 가리키신 곳으로 가면 잠시 뒤에 다시 “저리 가자.” 하시는데 이러기를 여러 차례 하시더니 다시 약방으로 가 누우시니라. 이 때 갑자기 상제님께서 누우신 채 천장으로 일곱 번을 튀어 오르시니라. 생사의 도는 몸의 정기(精氣)에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죽고 살기는 쉬우니 몸에 있는 정기(精氣)를 흩으면 죽고 모으면 사느니라.” 하시고 경석으로 하여금 양지에

全羅北道 古阜郡 優德面 客望里 姜一淳 西神司命
전라북도 고부군 우덕면 객망리 강일순 서신사명


이라 써서 불사르게 하시니라. 또 공신에게 말씀하시기를 “맥 떨어지면 죽으리니 연원(淵源)을 바로잡으라.” 하시니라. (道典 10:45)

흩어져 돌아간 성도들

*증산 상제님께서 어천하실 즈음에 성도들에게 몇 차례 깨우쳐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큰 복을 구하거든 일심(一心)으로 나를 믿고 마음을 잘 닦아 도를 펴는 데 공을 세우고 오직 의로운 마음으로 두 마음을 두지 말고 덕 닦기에 힘써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라.” 하시더니 천만 뜻밖에도 상제님께서 어천하시매 몇몇 성도들이 크게 낙심하여 흩어져 돌아가니라. (道典 10:62)

영신이 뜨셨다

*호연이 상제님을 뵈려고 바깥사랑으로 들어가니 형렬이 “벌써 떠나셨다.” 하고 이르거늘 그래도 가까이 가서 주물러 보며 ‘여기 있는데, 참말일까?’ 하고 용안에 얼굴을 가져다 대니 찬바람만 훌훌 나오더라. 이를 지켜보던 형렬이 안쓰러워 “영신(靈身)이 뜨셨다.” 하고 재차 이르거늘 상제님께서 조화로 하늘에 오르시고 몸만 계시는 줄로 믿었던 호연이 그제야 상제님께서 어천하셨음을 실감하니라. 이 때 공우가 크게 울며 말하기를 “허망한 일이로다. 대인(大人)의 죽음이 어찌 이렇게 아무 이상이 없이 잠자는 것과 같으리오.” 하고 덕찬, 준찬 형제는 “허망하다, 허망하다.” 하며 슬피 울부짖으니라. 상제님께서 어천하시고 나자 잠시 후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해가 뜨고 날이 청명하게 개며 오색 구름이 뜨더니 지붕으로부터 하늘까지 뻗친 영롱한 서기가 이레 동안 계속되니라. (道典 10:61)

이놈들 일어나거라

*다음날 아침, 어천하신 지 이레 만에 출상을 하려는데 형렬이 상여꾼을 얻지 못하게 하고 종도들로 하여금 상여를 메게 하거늘 종도들이 한 번이라도 더 상제님을 가까이 하고 싶어서 대여를 서로 메겠다고 나서니라. 대여 준비를 마치니 형렬이 한 종도에게 “호연이 불러오라.” 하여 호연을 천구(遷柩)하는 과정부터 참관토록 하고 종도 네 사람으로 하여금 상제님의 성체를 대여에 모시도록 지휘하니라. 이에 네 사람이 사랑방으로 가는데 문앞에 이르니 방문이 벌컥 열리며 상제님께서 수의(壽衣)를 입으신 채 걸어 나오시거늘 종도들이 모두 질겁하여 땅바닥에 그대로 엎어져 버리니 상제님께서 “야, 이놈들! 일어나거라.” 하시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시니라. 종도들이 의아해하며 살며시 안에 들어가 재궁(梓宮) 속을 들여다보니 상제님께서는 여전히 누워 계시거늘 가까스로 정신을 수습하여 재궁을 들고 밖으로 나서는데 돌연 재궁 속에서 “무겁다고 마라. 무겁다고 마라, 잉?” 하는 상제님의 음성이 들리는지라. 종도들이 “야, 선생님이 안 돌아가셨다! 살아 계신데 이래서 어쩔거나. 태운장 어른, 나오시오~!” 하며 재궁을 들고 우왕좌왕하매 형렬이 사랑방에서 급히 따라 나오며 “개의치 말고 어서 모셔라.” 하고 이르니라. 이에 어찌할 수 없이 성체를 대여에 모신 뒤에 종도 열여섯 사람이 대여를 메고 발인을 하려고 하니 느닷없이 “나 간다~. 아이고, 내가 또 언제 여길 와서 이럴거나~.” 하는 구슬픈 만가 소리가 울리거늘 처음에는 모두 요령잡이가 하는 소리로 알았더니 자세히 들어 본즉 상제님께서 부르시는 노랫소리더라. 종도들이 마음을 졸이며 ‘정작 안 돌아가신 것을 이러는가?’ 하여 그저 서서 머뭇거리다가 이내 재궁을 내려서 확인해 보니 고요하신 모습 그대로이거늘 마음을 다잡고 다시 대여를 메고 가려는데 또 “무겁다고 마라. 내가 무겁게 하려면 무겁고, 가볍게 하려면 가벼우니 무겁다고 마라.” 하는 노랫소리가 들리는지라. 종도들이 다시 대여를 멈추고 확인을 해 보나 역시 그대로이더라. 이렇듯 대여를 메고 가려고만 하면 살아 계신 듯 조화를 부리시니 출상을 하려다가 멈추기가 수차례요, 아침에 시작한 것이 점심때가 지나서야 겨우 나가게 되니라. (道典 10:70)

약방과 이곳저곳에서

*상제님께서 어천하시고 나서도 약방과 그 주변에서 계속 살아 계신 듯 이적이 일어나니라. 어천하시고 한 달 동안은 형렬만 약방 출입을 하며 끼니마다 상식(上食)을 올려 드리는데 물을 떠다 올리면 물이 엎질러지고, 혹 다른 이가 약방 문을 열면 “이놈!” 하는 고함 소리가 들리니 두려워서 그 누구도 근접하지 못하거늘 동네에서도 큰 소리가 나면 으레 상제님의 음성인 줄로 아니라. 또 마당에서 삭망제(朔望祭)를 지내기 위해 술동이에 표주박을 띄워 놓고 개를 잡아서 칼을 꽂아 상을 차린 다음 조용히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있으면 칼 소리와 고기 드시는 소리가 나고 ‘쪼로롱 쪼로롱’ 하고 술을 떠 드시는 소리와 표주박이 동이에 부딪히는 소리도 나더라. 또 누가 떡을 치고 있으면 느닷없이 “야, 이놈아! 다른 신명도 좀 주워 먹게 헤치면서 쳐라. 잡신이 좀 주워 먹게!” 하시고 호박씨를 널어놓으면 호박씨를 가져다가 까 드시며 “아이구 꼬솝다, 꼬솝다. 나 먹으라고 두었냐?” 하시니 이곳저곳에서 “증산 어른이 여기 계시다.” 하고 소리치거늘 이에 종도들이 ‘선생님께서 다시 살아나신다.’고 더욱 굳게 믿으며 어천하신 지 3년이 지나도록 살아 계실 때와 마찬가지로 약방을 자주 찾고 상제님께서 생시에 “나는 머리카락 하나, 손톱 하나만 있어도 천지신명이 옹호해서 살지 죽는 사람이 아니다.” 하신 말씀을 떠올리며 ‘행여 머리카락 하나라도 나올까.’ 하여 약방 주위를 맴도는 이도 많더라. (道典 10:78)


 


너희들을 살리려고 갔는데

*하루는 형렬이 힘없이 방에 앉아 울며 탄식하기를 “세상에서 우리 선생님은 광인(狂人)이라는 말만 들으셨고, 우리는 미친 사람을 따라다니다가 결국 김(金)씨 문중을 망쳤다는 소리를 들으니 이제 당신께서 어천하신 이후로 이것이 제일 원통하니 어찌 살꼬.” 하며 남부끄러워 크게 울지는 못하고 소리 죽여 울고 있는데 뜻밖에 방 밖에서 큰기침 소리가 나며 “형렬아, 너는 그만하면 대략 알 줄 알았더니 그다지 무식하냐? 너희들을 살리려고 내가 갔는데 탄식이 웬 일이냐.” 하는 상제님의 음성이 들리므로 형렬이 깜짝 놀라 일어나니 상제님께서 방으로 들어오시니라. 형렬이 눈물을 흘리며 배례하고 옆으로 서니 말씀하시기를 “그래, 형렬아. 너는 너희 선생 미쳤다는 것이 그토록 원통하더냐. 수운가사에 ‘여광여취(如狂如醉) 저 양반을 따르기만 따르고 보면 만단설화(萬端說話)한 연후에 소원성취(所願成就) 하련마는 알고 따르기 어려워라. 따르는 자 만복동(萬福童)이요, 못 따르는 자 깜부기 된다.’는 말을 못 들었느냐.” 하시니라. 또 일러 말씀하시기를 “판안 사람 둘러보니 많고 많은 저 사람들 어떤 사람 저러하고 어떤 사람 이러하니, 판안 사람 판안 공부 소용없어 허리띠 졸라매고 뒷문 열고 내다보니 봉황(鳳凰)이 지저귄다. 판안에 그 문서(文書)로 아무리 돌려 보아도 할 수 없어 판밖의 것을 가르치자고 허튼 마음 거머잡고 죽기로 찾았으니 조금도 걱정 마라. 누런 닭이 소리치며 날개 털면 판밖 소식 알리로다. 네가 그렇게 서러워하니 판밖에 있더라도 소식을 전해 주마.” 하시니라. 그 뒤로 얼마간 상제님께서 밤마다 오시어 생존시와 다름없이 여러 가지를 일러 주시니라. (道典 10:81)

어천 후 상제님을 뵌 차경석

*상제님께서 어천하신 뒤 차경석은 천지가 무너진 것 같은 비통함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한편으로는 상제님께서 돌아가신 것을 의심하나 의논할 곳도 없는지라. 차마 처자 형제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다만 상제님을 뵙고 싶으면 구릿골 약방에 가서 약장 앞에 배례를 드리며 그리움을 달래니라. 상제님께서 어천하시고 달포가 지났을 무렵에 경석이 여전히 허망한 심사를 이기지 못하여 대흥리를 서성거리는데 홀연 태인(泰仁) 쪽을 향하여 가시는 상제님의 모습이 보이므로 기쁜 마음에 부지런히 뒤쫓다가 태인 김경학의 집 부근에서 종적을 놓쳐 버리거늘 경석이 경학의 집에 들러서 자초지종을 말하니 경학이 “정말 그러하냐.” 하며 경석을 따라나서니라. 두 사람이 걸음을 재촉하니 마침 태인 돌창이고개를 넘어가시는 상제님의 모습이 보이거늘 한달음에 원평에 당도하여 상제님께서 생시에 자주 다니시던 젖통네 주막으로 들어가니 젖통네가 말하기를 “증산 어른께서 방금 술 석 잔을 잡숫고 ‘전주로 간다.’ 하시며 떠나셨습니다.” 하니라. 이에 두 사람이 부지런히 전주쪽으로 가다가 흔들네 주막에 이르러 주모에게 물으니 “그 어른이 조금 전에 술 석 잔을 드시고 전주로 가셨소.” 하거늘 문득 경석과 경학이 서로 말하기를 “선생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오도록 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무언가 깨닫게 하시기 위함이라.” 하며 성도들에게 연락하여 7월 그믐께 구릿골 형렬의 집에 모이기로 약조하고 각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道典 10:83)

갖은 욕을 당한 내성

*이즈음 ‘내성이 공부하더니 이적이 생긴다.’는 소문이 널리 퍼지거늘 이를 시기한 경석이 하루는 내성의 공부를 방해하려고 이 마을 박씨 청년을 사주하니 박씨 청년이 건달들을 이끌고 내성이 공부하는 방으로 쳐들어와 내성에게 ‘나가라.’며 갖은 욕을 보이되 내성이 꼼짝도 하지 않으매 궁리 끝에 내성이 앉은 자리만 남기고 방구들을 전부 파 놓고 돌아가니라. 그만 살려 주어라. 이 날 밤, 내성이 수도를 하는데 큰 키에 눈이 부리부리한 신장(神將) 둘이 찾아왔거늘 한 신장은 시퍼렇게 날이 선 칼을 들고 또 한 신장은 한 손에는 큰 도끼를, 다른 손에는 ‘박씨 청년’을 백회에서 항문까지 창으로 꿰어 거꾸로 들고 있더라. 신장들이 내성에게 절을 하고는 “이놈을 동해로 보낼까요, 서해로 보낼까요?” 하며 명을 기다리니 내성이 꾸짖으며 “무슨 짓이냐. 몰라서 한 것인데 무슨 죄가 되느냐. 당최 그러지 말라.” 하고 만류하니라. 한편 청년의 집에서는 멀쩡하던 아들이 갑자기 실신하여 새카맣게 타들어 가며 숨이 넘어갈 듯 경련을 일으키는지라. 그 아버지가 짚이는 데가 있어 한밤중에 내성을 찾아와 “선생님, 제 아들놈이 금방 죽게 생겼습니다. 선생님 공부하시는데 방구들을 파더니만 급살을 맞았는지 저렇게 새카맣게 타 죽게 생겼습니다. 부디 용서하시고 제발 살려 주십시오.” 하고 울부짖으며 애원하거늘 내성이 “살려 줄 테니 걱정 마시오.” 하고 안심시키니 그 아버지가 재차 확답을 받고 집으로 뛰어가니라. 이에 내성이 “그만 살려 주어라.” 하니 그제야 신장들이 청년의 몸에서 창을 뽑고 절하고 돌아가거늘 다음날 아침 박씨 부자가 찾아와 백배사죄하고 방구들을 복구하니라. 그 뒤로는 누구도 불평을 하지 않고 내성과 모친에게 친절하더라. (道典 10:93)

성도들의 태을주수행 도수 발동

*이 소문이 회자되어 어천 후에 의지할 데 없던 여러 성도들이 내성의 집을 찾아와 같이 태을주를 읽기 시작하니 이로부터 성도들 사이에 태을주 수행이 널리 퍼져 나가니라. (道典 10:93)


 


첫 어천절 치성에 나타나신 상제님

*상제님께서 하늘 보좌로 떠나신 어천 1주기 치성절을 맞이하여 많은 종도들이 구릿골로 찾아오니라. 종도들이 모여 “아이고, 우리 제자들이 수십 날을 육로로 천 리, 물로 천 리 그렇게 왔는데 선생님은 가뭇없이 안 계시니….” 하며 탄식하더니 하늘을 우러러 큰 소리로 “저희들이 다 모였는데 어찌 모르십니까? 진정 모르십니까?” 하며 부르짖거늘 갑자기 벼락이 치고 하늘이 우그르르 울리며 오색 찬란한 구름이 수를 놓더니 하늘로부터 상제님께서 어천하실 때 누워 계셨던 자리로 오색 서기가 박히더라. 그제야 종도들이 기뻐하며 탄성을 지르거늘 호연이 그 모습을 보고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얘기 좀 하세요.” 하고 애원하니 상제님께서 “뭔 얘기를 하느냐? 시시하니 일부러는 얘기를 못 한다. 네가 하도 원을 하니까 너를 생각해서 이렇게라도 가다오다 해 주지, 내가 누구라고 나타나겠느냐.” 하시고 종도들에게 이르시기를 “신명이 안 들고는 일을 못하는 것이니 너희들이 제를 지내면 천지신명들도 먹고 좋다마는 내가 천하일을 하러 다니는데 그것 먹으려고 내려오겠느냐? 번거롭게 그러지 말고 마음을 진정으로 잘 먹어라.” 하시니라. (道典 10:94)

상제님을 만난 개벽대장 박공우

*상제님께서 어천하신 후 박공우는 허망함과 애통함을 이기지 못하더니 신해(辛亥 : 道紀 41, 1911)년 봄 산기도를 가는 길에 전주장에 들러 경황없이 장터를 돌아다니는데 누가 등뒤에서 “공우, 자네 왔는가!” 하고 등을 치매 돌아보니 천만 뜻밖에도 상제님이시더라. 공우가 반가운 나머지 주저앉아 상제님의 다리를 부여잡고 한없는 서러움에 목놓아 우니 상제님께서 “공우야, 그렇게 울지 말고 저기 가서 술이나 한 잔 하자.” 하시고 주점으로 가시어 술을 사 주시니 공우가 목이 메어 술을 마시지 못하다가 여쭈기를 “무심하게 저희를 버리고 어디를 가셨습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하, 이 사람 별소릴 다 하네. 내가 나중에 올 터인데 무슨 그런 소리를 하는가.” 하시니라. 상제님께서 거듭 술 석 잔을 권하시고 일어서시며 “자네, 어서 볼일 보러 가소. 나는 내 볼일 보러 가야겠네.” 하시거늘 공우가 여쭈기를 “볼일이 다 무엇이옵니까? 장보기를 작파하겠사오니 함께 가시기를 바라나이다.” 하니 “자네하고 같이 가지 못하네.” 하시니라. 이에 공우가 상제님을 놓치지 않으려고 옷자락을 꽉 붙잡으니 어느새 바람처럼 장꾼들 사이로 빠져나가시거늘 공우가 온 장을 찾아 헤매다가 문득 상제님의 뒷모습이 보여 급히 쫓아갔으나 끝내 상제님의 종적을 놓쳐 버리니라. 이에 공우가 구릿골에 가서 초빈을 들춰 보니 성체도 없고 늘 있던 온기도 없거늘 공우가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선생님은 우리들의 눈앞에 숨으셨을 뿐이요 별세하셨다 함은 당치 않다.” 하니라. 이후 박공우 교단에서는 상제님께서 어천하신 날을 ‘둔일(遁日)’이라 부르니라. (道典 10:98)

마음을 잘 지키라

*고창(高敞)에 사는 무부(巫夫)인 재인(才人) 김씨가 상제님을 지성으로 공대한 일이 있더니 기유년 봄에 무슨 일로 죄를 짓고 대구에서 복역하다가 신해년 여름에 출옥하였으나 의복도 남루하고 여비도 없어 돌아갈 길이 막연한지라. 어찌할 바를 몰라 탄식하고 있는데 누가 와서 등을 두드리거늘 고개를 돌려 보니 상제님께서 다정하게 웃으며 서 계시더라. 김씨가 북받치는 설움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니 위로하여 말씀하시기를 “마음을 잘 지키면 앞일이 열리리라.” 하시고 음식을 사 주시며 옷도 사서 입히시고 여비까지 주어 돌아가게 하시니라. 달포가 지난 후에 그 사람이 대흥리에 와서 상제님을 뵈려고 계신 곳을 물으니 “어천하신 지 수 년이 되었다.” 하거늘 그 사람이 믿지 않고 말하기를 “반드시 은혜를 갚아야겠다.” 하며 계시는 곳을 알려 달라고 조르니라. 이렇듯 어천하신 지 몇 년이 흐른 뒤에도 각처에서 지면 있는 이들이 직접 상제님을 상봉한 사실이 드물지 않으니 고부 살포정이 주점에서 상제님께 술을 대접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임피 군둔리(軍屯里) 김성화(金聖化)의 아들 윤칠(允七)은 상제님께서 자기 집에 친히 다녀가셨다 하고 또 전주 감옥에서 출옥하여 집으로 돌아오던 정읍에 사는 재인(才人) 신(申)씨에게는 상제님께서 술과 개장국을 사 주신 일도 있다 하며 모악산 대원사의 박금곡(朴錦谷) 주지에게도 십여 차례나 찾아오셨다 하니라. (道典 10:103)

내 공부 시간만 뺏긴다

*상제님 어천 후에도 이갑룡이 마이산에서 탑을 쌓는 고행을 계속하며 하루도 거르지 않고 미륵부처님께 억조창생의 구제를 일심으로 기원하니라. 이 때 갑룡의 기행이 널리 알려져 시국을 물으러 오는 사람들이 줄을 잇거늘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동문서답을 하여 돌려보내므로 가족과 제자들이 “대답을 좀 해 주시지 그러셨습니까?” 하니 그 때마다 퉁명스레 “예끼, 이놈들아! 그런 소리 말아라. 내가 내 속에 있는 얘기를 하면 공부 시간 뺏긴다. 내 기도 시간 뺏긴다.” 하니라. (道典 10:112)

인류에게 닥칠 큰 재앙을 예고함

*하루는 한 제자가 정감록에 대해 물으니 “그거 다 쓸데없는 소리다. 허사다.” 하니라. 갑룡이 그 가족과 제자들에게 종종 말하기를 “앞으로 엄청난 재앙이 온다. 사람들이 삼대 쓰러지듯 한다. 십릿길에 사람 하나 볼 듯 말 듯하게 그렇게 인종이 귀해진다.” 하고 이어 “그 때는 천심 가진 사람만이 살아남는다. 선(仙)의 씨앗만 남아 요순세계가 온다. 용화세계, 미륵 세상이 온다.” 하니라. 또 자주 후손들에게 치악산과 월출산에 쌓은 돌탑 이야기를 하며 “너희들도 한번 가 봐라.” 하고 후손들을 데리고 전주 관왕묘에 다니면서 천고문을 읽고 기도하며 상제님 성도들과 친분을 두고 지내다가 98세를 일기로 천명을 다하니라. (道典 10:112)

금산사로 찾아간 성도들

*7월 그믐께 차경석, 김경학, 김광찬, 박공우가 김형렬을 방문하고 장래 일을 의논할 때 경석이 말하기를 “선생님께서 당신이 곧 미륵불이라 말씀하셨고, 또 어천하실 때 ‘금산사로 들어가리라.’ 하셨으니 우리가 이제 미륵전(彌勒殿)에 참배하여 당신을 대한 듯이 정성을 들여 취할 길을 생각하면 반드시 선생님의 감화를 받아 깨달음이 있으리라.” 하며 미륵전 치성을 주창하거늘 성도들이 모두 이를 옳게 여겨 치성을 모시기로 하니라. 경학이 소 한 마리를 준비하고 나머지 치성 제물은 다른 성도들이 준비하여 금산사에 들어가니 이 때 한 늙은 신중이 돌무지개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환영하며 말하기를 “어젯밤에 금산사 여러 불타와 오백 나한과 호위신장들이 일제히 돌무지개문 밖에 나와서 거룩한 행차를 맞아들이는데 그 행차 뒤에 그대들이 따라오는 꿈을 꾸었으므로 이제 나와서 기다리는데 그대들이 오는 것을 보게 되니 어찌 기이한 일이 아니리오.” 하더니 다시 경학을 가리키며 말하기를 “그대들의 앞에 서서 수염이 복스럽게 난 도인이 걸어 왔는데 바로 이분이오.” 하니라. 일행이 미륵전에 들어가 참배하고 종이에 ‘옥황상제지위(玉皇上帝之位)’라고 써서 미륵불상 몸에 붙이고 경학의 진행으로 치성을 올린 뒤에 그 종이 위패를 떼어 안고 금산사 경내의 사실(私室)에 들어가 벽에 모시고 각기 정심하여 상제님을 사모하며 기도하니라. 이 때 형렬이 문득 신안이 열리거늘 대장전(大藏殿)에 들어가 석가불에게 장래일을 물으니 석가불이 책을 들고 입을 열어 가르치려 할 즈음에 상제님께서 완연한 미륵불의 형상으로 들어오시어 책을 빼앗고 입을 막으시더라. 이에 형렬이 목이 메어 “스승과 제자된 사이에 알면서도 이렇게 무심할 수 있습니까?” 하니 상제님께서 시 한 수를 보여 주시고 홀연히 사라지시니 이러하니라.

魚糧水積三千界요 雁路雲開九萬天이라
어량수적삼천계 안로운개구만천
無語別時情若月이언마는 有期來處信通潮라
무어별시정약월 유기래처신통조

어량(魚糧)은 물 속 삼천 세계에 쌓여 있고
기러기 길은 구름 개어 하늘 구만리로다.
말없이 이별할 때의 정은 으스름 달빛처럼 애련한 것이언만
다시 올 기약 있어 믿는 마음은 조수처럼 어김이 없을진저.


형렬이 할 수 없이 물러나와 일행에게 사유를 말한 후에 공부를 파하고 돌아와 생각해 보니 이 날이 바로 상제님께서 ‘환궁하리라.’ 하신 8월 초하루이더라. (道典 1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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